'준비된 대법원장' 양승태..."비극의 시작은 '상고법원' 집착"

오경묵 기자
입력 2019.01.11 20:00
2011년 9월 대법원장 후보 시절 양승태 전 대법원장. 당시 인사청문회는 특별한 논란없이 조용하게 치러졌다./ 조인원 기자
42년 법관생활 내내 엘리트 코스만 밟았다. 재판실무와 사법행정에 모두 탁월한 법관 중의 법관으로 불렸다. 헌정 사상 전직 대법원장으로는 처음 검찰에 소환된 양승태(71·사법연수원 2기) 전 대법원장은 판사로서 이런 평가를 받아왔다. 일선 재판부와 법원행정처를 오가며 요직을 두루 거쳐 법리와 재판실무, 사법행정 어느 것 하나 빠질 게 없는 판사였다.

2011년 대법원장으로 취임할 때만 해도 '준비된 대법원장'이라는 말을 듣던 그가 11일 피의자석에 앉아 사법연수원 30기수 가량 후배인 검사 질문에 답하고 있다. 그의 추락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대법원장 재임 기간 동안 상고법원 도입 등 '업적'을 남기기 위해 무리했다는 게 법원 내부의 시각이다.

부산 출신의 양 전 대법원장은 경남고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서울대 법대에 입학, 1970년 졸업과 함께 12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이후 군법무관을 거쳐 1975년 서울민사지법 판사로 임관했다. 이후 법원행정처 송무심의관과 송무국장·사법연수원 교수 등 요직을 거쳤다.

민법학계 대부로 평가받는 고(故) 곽윤직 서울대 법대 교수가 판사 제자들을 중심으로 꾸린 민사판례연구회(민판연)의 회원이기도 했다. 이용훈 전 대법원장과 대법관을 지낸 김황식 국무총리, 김재형·김소영·김용덕 전 대법관 등이 이 모임 출신인데, 법원 내 대표적인 엘리트들의 모임이다.

IMF 금융위기 이후에는 서울중앙지법 초대 파산수석부장을 맡아 급증한 법정관리 기업 처리를 도맡았다. 부실기업을 M&A(인수합병) 방식으로 회생하는 방법을 찾아 부도 직전의 기아자동차를 살려냈다. 2001년 서울지법 북부지원장 시절에는 호주제(戶主制)에 대한 위헌심판제청을 해 주목받았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선정한 ‘여성권익 디딤돌’로 뽑혀 한 때 진보적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2003년 '차기 대법관 0순위'로 꼽히는 법원행정처 차장으로 임명되고는 법관인사제도 개혁에 앞장서기도 했다. 2년 뒤 그는 무난하게 대법관 자리에 올랐다. 대법관 시절엔 용산화재참사를 일으킨 철거민에게 중형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하고, 남북공동선언 실천연대를 이적단체로 규정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주도하기도 했다.

2011년 8월 이명박 정권 말기에 대법원장이 됐다. 그는 취임식에서 "너무 늦기 전에 재판 제도와 절차, 심급구조, 법원조직, 인사제도 등 기존의 사법제도에 관해 깊이 있는 검토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했다. 상고법원이 필요하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정치권은 물론 법원 내부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자 양 전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는 상고법원 추진과 반대에 대한 대응에 총력을 기울였다. 법원행정처 근무 경험이 있는 관계자들은 "이때부터가 양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 간부들이 무리수를 두기 시작한 때"라고 했다. 검찰이 의심하고 있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핵심도 대부분 상고법원 추진과 관련된 것들이다.

이날 오전 양 전 대법원장은 검찰 출석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어 "법관들을 믿어달라고 간절히 호소하고 싶다. 절대 다수의 법관들은 국민들에게 헌신하는 마음으로 사명감을 갖고 성실하게 봉직하고 있음을 굽어 살펴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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