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임’ 마두로 “美 제국주의 질서 거부”…고립되는 베네수엘라

이선목 기자
입력 2019.01.11 12:16 수정 2019.01.11 13:31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국내외의 거센 질타를 받으며 10일(현지 시각) 두 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그는 수많은 인파가 모인 취임식에서 "베네수엘라는 미국 제국주의가 주도한 세계 전쟁의 중심에 있다"며 "미국의 제국주의·패권주의적 질서에 따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외부의 비판을 국가 독립성을 침해하는 ‘외세의 압박’으로 치부한 것이다.

마두로 대통령은 6년 임기의 두 번째 정권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엄청난 공세를 받아왔다. 마두로 정권의 독재를 문제삼고 있는 미국과 유럽 등을 비롯해 중남미 주변국까지 그의 재임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은 취임식 당일 "독재자 마두로의 두번째 임기는 ‘가짜’"라고 비난했다. 이같은 상황에서도 마두로 대통령은 여전히 강경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어 앞으로 베네수엘라는 더 깊은 외교적 고립 상태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이날 마두로 대통령의 취임식은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의 대법원에서 열렸다. 마두로 대통령은 베네수엘라 국기를 흔드는 지지자들의 환호를 받으며 취임식장에 들어섰다. 베네수엘라 국기 색깔인 빨강과 파랑, 노랑 띠를 두르고 단상에 선 그는 자신의 두 번째 임기에 대해 "조국의 평화를 위한 단계"라며 "조국의 독립과 번영을 위해 일하겠다"고 말했다.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2019년 1월 10일 열린 취임식에 참석하고 있다. /유튜브
마두로 대통령은 자신의 두 번째 임기를 비판하는 국제사회의 비판을 의식한 듯 "베네수엘라는 미국과 그 위성 국가들이 일으킨 세계 전쟁의 중심에 있다. 그들은 정상적인 취임식을 세계의 전쟁터로 바꾸려고 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제국주의와 패권주의적 질서에 따라 지배되는 것을 거부하는 새로운 세계 질서가 부상하고 있다"며 "그것은 세계 국민과 정부들을 향한 우리 혁명의 결집된 외침"이라고도 했다.

마두로 대통령은 지난해 5월 치러진 조기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대선 과정에서 부정선거가 있었다고 비판해왔다. 마두로 정부가 경제난을 겪고 있는 유권자들에게 식료품을 지급하겠다며 표를 매수하는 등 불법 선거를 자행했다는 것이다.

마두로 정부의 포퓰리즘 정책이 베네수엘라의 경제를 위기에 빠뜨렸다는 지적도 계속됐다. 지난해 베네수엘라 물가상승률은 130만%에 달했다. 식량난과 생필품 부족에 시달린 국민들은 나라를 떠나고 있다. 지난해 유엔(UN) 조사 결과에 따르면 경제 파탄으로 베네수엘라를 떠난 국민은 300만명에 이른다.

그러나 마두로 대통령은 외부로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그는 베네수엘라의 경제 위기가 미국 등의 제재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마두로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도 "다른 나라처럼 베네수엘라에도 문제가 있지만, 그건 외세의 개입 없이 베네수엘라 국민이 해결해야 할 문제"라며 "중남미의 정치적 권력이 오염됐다"고 말했다.

결국 마두로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는 국내외의 거센 비난과 외교적 고립 속에서 시작됐다. 마두로 정부 내에서도 혼란스러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현직 베네수엘라 국방장관은 지난달 마두로에게 퇴진을 건의하고,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사임할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크리스티안 세르파 베네수엘라 대법관은 마두로 대통령의 재임에 반대해 미국으로 망명했다.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 주민들이 2018년 8월 4일 물 부족 사태에 항의하는 가두 시위를 벌이고 있다. 경제 파탄 상태인 베네수엘라 국민은 살인적인 인플레이션과 생필품과 식량 부족으로 고통받고 있다. /EPA 연합뉴스
마두로를 독재자로 규정하고 베네수엘라에 전방위적 제재를 가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압박도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펜스 미 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독재자 마두로의 취임은 ‘가짜’"라고 비난했다. 펜스 부통령은 "미국은 도난당한 선거의 불법적인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다"며 "우리는 베네수엘라에서 자유와 민주주의가 승리할 때까지 마두로 부패 정권에 대항할 것"이라고도 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도 이날 성명을 내고 마두로 대통령이 권력을 강탈했다고 맹공했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은 트위터에 "마두로 독재정권의 불법 재임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는 부패한 정권에 대한 압력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유럽연합(EU)도 마두로 정권에 대한 공세를 예고했다. 페데리카 모게리니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이날 마두로 대통령은 비민주적인 선거로 얻은 새로운 권력을 시작했다"며 "EU는 베네수엘라의 상황을 면밀하게 감시할 것이고, 민주적 제도와 법치, 인권 등에 더 큰 피해를 입히는 행보에 적절한 조치로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베네수엘라 주변국들도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앞서 베네수엘라 이웃국인 중남미 12개국과 캐나다는 지난주 마두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 국가는 마두로 대통령의 두 번째 정부의 합법성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했다.

파라과이는 마두로 대통령의 취임식이 진행되는 동안 베네수엘라와의 단교를 선언했다. 페루는 마두로 대통령과 베네수엘라 정부 관료들의 입국을 금지하고 자국 외교관을 소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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