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깡보라, 금빛 하이킥 날릴거야

정병선 기자
입력 2019.01.11 03:49

[밀레니엄 베이비가 뜬다] [6] 거침없는 태권소녀 강보라

여자 태권도 49㎏급 국내 일인자인 강보라(19·성주여고 3)의 별명은 '깡보라'다. 태권도 대표선수 중 근성과 배짱이 남달라서다. 그걸 잘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지난해 11월 아랍에미리트(UAE) 월드 태권도 그랑프리 파이널 여자 단체전. 49kg급 강보라는 67kg이 넘는 헤비급 코트디부아르 선수와의 경기서 왼발을 들고 선제공격에 나서다 상대 오른발 돌려차기에 맞아 턱뼈가 깨졌다. 체급 상관없이 치른 이벤트 경기였다.

"순간 정신이 없었어요. 나 때문에 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바로 일어섰어요. 그런데 심판이 이가 안 보인다고 해 만져보니 턱뼈가 깨지면서 잇몸이 갈라진 거예요."

심판은 바로 경기를 중단시켰고, 강보라는 응급실로 실려가 턱뼈 접합 수술을 했다. 그런데도 2주 후 강보라는 중국 우시에서 열린 월드 태권도 그랜드슬램 챔피언스시리즈에 출전했다. 그 모습을 바라본 태권도 관계자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경기하다 턱뼈가 부러져도, 상대 선수가 남자 최강자여도 ‘깡보라’는 물러서지 않는다. 특출한 ‘강심장’ 덕에 지치지 않고 발을 돌릴 수 있다. 도쿄올림픽 금메달을 꿈꾸는 여자 태권도 49㎏급 1인자 강보라가 발차기 시범을 하는 모습. /고운호 기자
2018년 강보라는 무섭게 고공 질주했다. 지난해 2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2016년 리우올림픽 우승자인 김소희를 제치고 최연소 국가대표가 된 데 이어 5월 아시아선수권에서 세계 1위인 태국의 웅파타나키트 패니팍을 제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아시안게임 대표 선발전 때도 세계 대회 우승자 심재영을 꺾고 태극 도복을 입었다. 거칠 것 없어 보이던 그의 상승세는 아시안게임 8강전 때 패니팍에게 패하면서 주춤했다.

"이길 수 있던 상대였는데…. 지금도 그때 왜 그렇게 못했는지 화가 나요. 다시 붙으면 이길 자신 있어요."

아시안게임을 떠올리면서 눈시울을 붉히던 강보라는 "국제대회 경험이 부족해서인지 이상하게 다른 때보다 더 긴장해 실력 발휘를 못 한 것 같다"고 했다.

강보라는 합계 '27단 태권도 가족'이다. 아버지 강호동(45)씨가 7단, 어머니 이일문(47)씨는 4단이다. 또 자신을 포함해 청소년 대표인 여동생 미르(17)와 쌍둥이 남동생 대한, 민국(13)이가 모두 4단의 실력자다. 네 살 때부터 택견과 태권도를 배운 그는 "아빠가 태권도의 뿌리는 택견이라며 택견 기술을 먼저 배우도록 했다"며 "특기인 좁은 공간에서 발차기와 몸싸움이 바로 그 응용 동작"이라고 했다.

강보라(4단)와 아버지 강호동(7단) 코치, 청소년대표인 동생 미르(4단)가 나란히 선 모습. /고운호 기자
강보라는 이 주무기를 바탕으로 경기 내내 '닥공(닥치고 공격)'을 펼친다. 그 공격적 스타일 때문에 강보라는 '여자 이대훈'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강보라는 실제 아시안게임 3연패(連覇)를 달성한 이대훈의 스파링파트너로 연습 대진을 펼치기도 한다. 강보라가 쉴 새 없이 상대방을 몰아붙일 수 있는 바탕에는 남다른 '스포츠 심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인은 1분에 심방이 70~80회 박동하지만, 강보라는 40~50번 정도다. 마라톤 영웅 황영조와 이봉주가 38회, 전 축구선수 박지성이 40회인데 강보라의 심장도 그에 못지않다. 심장이 최대치에 이르렀다가 정상으로 회복하는 시간이 빨라 과격한 운동을 해도 호흡 곤란 같은 증상이 거의 없다. 강보라는 대표팀 언니들과 러닝머신에서 시속 18km를 10분 이상 뛰어도 끄떡없다고 한다.

아시안게임 실패를 겪은 강보라는 그때보다 더 큰 꿈을 꾼다. 2월 국가대표 선발전을 통과한 다음 5월 세계선수권대회를 시작으로 2020년 도쿄올림픽, 그랑프리파이널, 그랜드슬램파이널, 아시안게임 정상에 연이어 오르는, '통합 그랜드슬램' 달성이다.

"올해가 황금돼지띠라면서요. 출전하는 대회마다 금메달을 따 '여자 이대훈' '성주참외보라'라는 별명보다 '황금보라'라는 별명을 얻고 싶어요. 금메달 따면 머리 염색도 해보고 싶고, 부산도 가보고 싶고, 하고 싶은 게 많아요. 참. 대훈 오빠! 새해 됐는데 우리 또 한번 붙어봐야죠?"


조선일보 A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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