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게 살자 말하지만, 늘 실천하긴 어렵지요"

영월=김한수 종교전문기자
입력 2019.01.11 03:02

달라이 라마의 제자로 인도서 31년간 수행한 청전 스님

"딱 맞춰 오셨네요."

지난 8일 오전 강원 영월 무릉도원면의 한 야산 기슭. 차에서 내리는데 오른쪽 야산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청전(66) 스님. 1987년부터 31년 6개월 동안 인도 다람살라에서 달라이 라마를 모시고 수행해온 그는 지난 12월 귀국해 이곳에서 불교 사진가 전제우씨와 함께 수행하고 있다. 그는 그 사이 야산의 잡목과 낙엽을 걷어내고 산책길을 만들었다. 40분 걸리는 이 길을 걷고 내려오는 중이었다.

2015년 만해실천대상 수상 때 그는 "오랜만에 검진했더니 영양실조에 골다공증이라더라"고 했다. 지금은 혈색이 좋았다. 그는 "밥은 '쿠쿠 보살(전기밥솥)'이 해주고, 난방은 '귀뚜라미 거사(보일러)'가 다 해주니 이렇게 편할 수 없다"며 웃었다. 그가 손으로 갈아 내려주는 커피를 마시며 인도 이야기를 들었다.

직접 갈아 내린 커피를 따르는 청전 스님 모습은 생전의 법정 스님을 닮았다. 그는 “송광사로 출가해 법정 스님과도 인연이 많았다”고 했다. /김한수 기자

청전 스님은 '영적(靈的) 방랑자'다. 교사(전주교대), 사제(광주가톨릭대)의 꿈을 꾸다가 스물넷에 송광사로 출가했다. 전국의 선원(禪院)을 다니며 참선 수행 하던 중 1987년 인도로 훌쩍 떠났다. 거기서 오쇼 라즈니시와 이슬람 성직자까지 수행자를 무수히 찾아다녔다. 그러던 중 달라이 라마와 마더 테레사를 만났다. 그는 두 사람을 만난 순간 "정신이 확 열리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이후 인도에 정착해 달라이 라마의 제자가 됐다.

인도 생활 틈틈이 히말라야 기슭 라다크를 찾았다. 1년의 절반 이상은 눈이 꽁꽁 얼어 교통도 두절되는 오지(奧地). 여름에 길이 뚫리면 돋보기 안경, 신발, 시계, 손톱깎이, 영양제를 짊어지고 라다크 곳곳을 돌았다. 한 번에 33박34일씩 걸리고, 해발 3000~4000m 고개를 계속 넘어야 하는 길이다. '산타 스님'이라고도 불렸다. 귀국 후에도 라다크 마을에 생필품 배달하는 일은 계속되도록 조치했다.

청전 스님은 "내 종교는 인간"이라고 했다. 간디가 '진리가 내 종교'라 했고, 달라이 라마가 '내 종교는 친절'이라고 정의했다면 자신은 '인간'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는 뜻이다. 그는 "수행은 남을 위해 사는 것이며,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하는 것"이라고 했다. "마더 테레사의 삶에서 성경을 읽을 수 있고, 달라이 라마에게서 부처님의 삶을 느낄 수 있다.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면 부처님처럼, 예수님처럼 몸으로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언젠가 큰 행사장에서 달라이 라마가 뒤에 서 있는 노파를 앞으로 불렀다. 그리고는 "당신이 새벽마다 우유차를 놓고 나를 위해 기도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감사인사를 건넸다. 한번은 청전 스님이 "종교의 폐단도 많다. 종교가 필요 없는 것 아닌가?"라고 당돌하게 물었다. 달라이 라마의 대답은 "아기들이 급할 때 '엄마!'라고 찾지 않는가. 그게 종교다. 진리를 추구하지만 오류도 있다"는 것이었다. 청전 스님은 "달라이 라마는 가식이나 위선이 없다.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최고의 자비심이 바로 수행이라는 것을 삶으로 보여줬다"며 "24시간 스승의 시선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큰 행복이었다"고 했다.

그는 종교는 매너리즘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어떤 종교든 성직자의 향기는 청빈과 청정입니다. 제 법문은 초등학생 수준입니다. 항상 '착하게 살자'고 말하거든요.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건 어린아이도 알지만, 백 살을 살아도 실천하기 어렵습니다." 스님은 "31년 인도 생활과 그때 만난 사람들이 가장 큰 공부"라고 했다. 앞으로 그 공부를 서서히 풀어놓을 생각이다.


조선일보 A21면
베르나르 뷔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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