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국토부의 '세금 갑질'

장상진 산업1부 차장
입력 2019.01.11 03:14
장상진 산업1부 차장

'고가(高價) 부동산 공시 가격의 형평성을 개선할 계획'(1월 4일)→ '고가 부동산만을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니다'(1월 5일)→'이번에는 고가 부동산 공시 가격을 적극적으로 올릴 계획'(1월 7일).

감정평가사의 표준지 공시지가(公示地價) 조사·평가 과정에 국토교통부가 개입해서 고가 부동산 공시 가격의 과속 인상을 감정평가사에게 강요했다는 본지 보도가 나간 뒤 국토부가 연일 입장을 바꾸고 있다.

법적으로 국토부는 민간 전문가인 감정평가사들이 산출한 공시지가에 대해 사후(事後) 통제권만 갖고 있다. 사후에 심사해 재조사를 시키거나 감정평가사를 교체하는 것이다. 지침을 강요할 권한은 없다. 더욱이 특정 대상만 겨냥해 다른 잣대를 적용하는 것은 '통계 조작'이고 '위헌(違憲)'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그런 문제점을 지적하자 국토부는 지난 5일 일단 부인하더니 이틀 만에 태도를 바꿨다. 고가 부동산 공시 가격을 '이번에는' '적극적으로' 올리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공시 가격은 재산세를 비롯한 세금 산정의 기초 자료다. 그러더니 여론전까지 시작했다. "전체 95%인 대다수 중저가 단독주택 공시 가격 상승률은 높지 않다."(1월 9일)

국토부 어느 고위 공무원의 말투를 빌리자면 '5% 부자로부터는 세금을 더 받아내지만, 나머지는 큰 해당 사항 없으니 신경들 끄시라'는 것이다. 그 고위 공무원은 본지 지적에 대해 이런 말도 했다고 한다. "세금은 정부가 정한다."

하지만 틀렸다. 문명국가에서 세금을 부과하는 기본 원칙은 '대표 없이 과세 없다'라는 조세법률주의다. 그 대표들의 집합체는 국토부가 아니라 국회다. 이 말을 한 해당 공무원은 다음 총선에 출마 의사를 굳힌 상태다. 국회의 역할도 제대로 모르는 그가 왜 의원이 되려는 걸까.

그러면서도 잘못한 줄은 아는지 당국자들은 '흔적 없애기'에 열심이다. 1월 4일 본지의 첫 보도 후 추가 취재를 위해 몇몇 감정평가사들을 상대로 다시 취재를 했더니 "개인 의견을 밝히지 말라는 정부의 엄명이 떨어졌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국토부가 공시지가 평가 협의체 소속 감정평가사들을 통해 모든 평가사에게 함구령(緘口令)을 내렸다는 것이다. 이 지시 역시 "평당 1억원 이상 토지만 골라 한 번에 100%씩 올려라"고 했던 것처럼 구두(口頭)로만 내려졌다.

국토부 측으로부터 '회의 내용에 관해 누구와 통화했고 어떤 얘기를 했느냐'는 추궁을 받은 평가사들도 있다. 한 평가사는 "미안하지만 기자와 대화한 카톡방을 없애겠다"고도 했다. 감정평가사는 민간인이지만 국토부의 통제권 안에 있는 을(乙)의 입장이다. 청와대의 '휴대폰 임의 제출'이 떠올랐을 것이다. "갑질은 적폐"(문재인 대통령·작년 4월 18일)라던 정부의 '세금 갑질'이다.



조선일보 A30면
미래탐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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