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 칼럼] 오만한 권력에 불복종할 권리

입력 2019.01.11 03:17

야당 시절 文 대통령이 불복종 운동을 선언했다
오만한 권력에 국민이 "No"를 외쳐달라 했다… 이 정부가 똑같은 말을 되돌려 받게 됐다

박정훈 논설실장
신재민 전 기재부 사무관 사건의 본질은, 공무원이 정권 아닌 국민 편에 설 의무다. 그것은 그가 쓴 글에 잘 표현돼 있다.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 옳지 않은 것은 옳지 않다고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행동이었다. 나도 부당한 지시가 떨어지면 거부해야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바뀐 정권도 결국 똑같았다"고 그는 썼다. 민영화된 기업 인사에 개입하고 입맛 맞는 인물을 관영 신문 사장에 앉혔다. 그는 "국가 채무를 줄이고 싶었다"고도 썼다. 세금이 더 걷혔다면 빚부터 갚아야 마땅했다. 그런데 거꾸로 부채를 늘리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수백억원의 이자 손실을 자초하다니 국정 농단에 다름없었다. 그는 말단 사무관의 위치에서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저항했다. 그의 고발은 국민 이익을 해치는 행정에 대한 불복종이었다. 관료 사회의 침묵 카르텔에 대한 저항이었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주인이다. 정권은 국민을 위해 복무할 의무를 진다. 이 지당한 말을 꺼내는 것은 지금 그에 역행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일자리를 없애고, 가난한 사람을 더 가난하게 하고, 서민 경제를 침체로 몰아넣고 있다. 눈가림 정책에 세금을 마구 낭비하며 미래 세대의 지갑을 착취하고 있다. 약자들의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와도 귀를 틀어막고 정책 폭주를 치닫는다. 국민을 위해야 할 정부가 국민을 못살게 구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자해(自害) 정부를 민주 정부라고 할 수 있나.

국민을 해롭게 하는 정권은 선거로 심판한다. 그런데 선거를 기다릴 수 없을 만큼 급하면 어떡해야 하나. 지금이 그런 상황이다. 정권 임기는 3년 넘게 남았는데 국민의 이익 침해는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2년 새 55% 오른 최저임금이 영세 고용주와 저소득 노동자 모두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 일자리 사정은 외환 위기 때만큼 악화되고 청년들 고용 기회는 사라져 가고 있다. 일방적인 탈원전 드라이브는 에너지 안보 체계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 이 모두가 당장 국민 이익을 해치는 눈앞의 위협이다. 3년 뒤 선거 때까지 참고 기다리기엔 너무도 급박하다.

국민은 국가 시책과 법제도를 따라야 한다. 그러나 따르지 않을 권리가 인정될 때가 있다. 정부 정책이 정당성을 잃고 국민 기본권을 침해할 경우다. 먹고사는 생존권을 위협하고 국가 미래를 망치는 정부에 대해선 국민이 "노(No)"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시민 불복종이고, 더 나아가면 저항권이다. 불복종하고 저항할 권리는 헌법 이론이 인정하는 자연권이다. 동시에 민주 국민의 의무이기도 하다. 인권 운동가 마틴 루서 킹은 "부당한 법에 불복종할 도덕적 의무"를 촉구했다. 옳지 않은 정책과 제도에 눈감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소상공인연합회가 최저임금 정책에 대한 불복종 운동을 선언했다. 정부 방침을 어기는 근로계약서 양식을 만들어 현장에 보급하기로 했다. 덜 받고라도 일하고 싶은 근로자의 동의 아래 최저임금법 위반 운동을 펼치겠다는 것이다. 적발되면 형사처벌을 받는다. 그러나 최저임금을 다 주면 장사가 망한다. 2년 새 55% 인상은 망하라는 얘기나 다름없다. 소상공인들은 "나를 잡아가라"고 하고 있다. 굶어 죽느니 차라리 처벌 위험을 감수하겠다는 것이다.

실정법 위반이 미화될 수는 없다. 그러나 소상공인들에게 "악법도 법"이라고 하기엔 상황이 너무도 심각하다. 수많은 영세 기업과 자영업자들이 폐업 위기에 몰렸다. 저소득층 근로자들이 일자리에서 쫓겨나고 있다. 생업과 일자리는 이들에게 먹고사는 생존의 문제다. 서민들의 생존권이 정부에 의해 위협당하고 있다. 약자를 보호해야 할 정부가 도리어 약자들 밥그릇을 깨트리고 있다. 먹고살기 위해 저항하는 소상공인들을 누가 비난할 수 있는가.

정부가 일시적으로 정책 판단을 잘못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실패임이 드러났는데도 잘못된 정책을 고집한다면 오기이고 독선이다. 아무리 부당하다고 외쳐도 꿈쩍 않는 정부를 국민 편이라고 할 수는 없다. 현실에 귀 막고 폭주하는 정부 앞에서 국민이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다. 불복종하는 것이다. 탈원전이 에너지 백년대계를 망치고 있는데 그냥 보고 있을 건가. 국가 재정을 고갈시키는 세금 낭비 포퓰리즘을 방관할 것인가. 불통과 권력 남용, 적폐 청산을 빙자한 정치 보복을 눈감아줘도 되나.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회견을 보고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었다. 그토록 아우성치고 비명을 질렀는데도 대통령은 달라질 생각이 없어 보였다. 국민에 귀 막은 정권은 불복종으로 맞서야 한다고 했던 게 야당 시절 문 대통령이었다. 국정교과서 사태가 터지자 "권력의 오만과 불통에 대해 국민께서 불복종 운동에 나서 달라"고 호소했다. 이제 자신이 한 말을 똑같이 되돌려 받을 처지가 됐다.
조선일보 A30면
네이버구독하기

오늘의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