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리포트] 트럼프가 정상회담장을 박차고 나올 수 있을까

입력 2019.01.11 03:15 수정 2019.01.11 04:19

北, 비핵화 고수하는 美 관리 대신 '기분파' 트럼프 상대로 협상 노려
北·中은 단합 과시하며 '작전' 짜… '신년 통화' 없는 韓·美 정상과 대비

강인선 워싱턴 지국장

미국이 공해상의 항공모함에서 2차 미·북 정상회담을 하는 방안을 검토했다고 한다. 결론은 '어렵다'였다. 그림은 좋을 것 같은데 실현 가능하지가 않더라는 것이다.

미 항공모함의 위치를 북한에 가까운 공해상으로 정하면 장거리 항공편이 마땅치 않은 북한 처지에선 고려해볼 만한 방안이었을 것이다. 극적 효과를 중시하는 트럼프에게 항공모함은 최고의 무대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직후 미·소는 몰타에서 선상(船上) 회담을 했다. 2003년 이라크 전쟁 때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항공모함에서 주요 전투 종결 선언 퍼포먼스를 했다. 배를 활용해 정치적 효과를 극대화한 사례였다. 핵무기는 있으나 멀리 갈 비행기는 없는 북한을 위해 이런 방안까지 고민한 것은 미·북 정상회담을 최고의 이벤트로 만들어야 한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부담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2차 미·북 정상회담이 가시권 안으로 들어오면서 시기와 장소에 대한 소문은 무성한데 정작 미국의 게임 플랜이 무엇인지는 명확지 않다. 미국 관리나 워싱턴 전문가들은 2차 정상회담을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트럼프 대통령이 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라고들 한다. 북한이 비핵화를 위해 한 발도 움직이지 않는 상황에서 그나마 해볼 것은 정상회담밖에 없으니 정상회담이라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네 번의 미·북 고위급 회담에선 이렇다 할 진전이 없었다. 북한의 협상 작전은 동창리 미사일 시험장과 풍계리 핵실험장, 영변 핵 시설 폐기 등 비핵화 본질과는 거리가 먼 자잘한 물건들을 들고 와서 제재 완화라는 알짜배기 큰 선물과 바꾸는 것이었다. '핵 신고서'와 '사찰'을 주장하는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말이 통할 리 없었다.

회담이 공전하는 동안 폼페이오와 북한 김영철이 서로 싫어한다는 소문만 극심해졌다. 북한은 비핵화 원론을 고수하는 미국 관리들을 우회해 '기분파' 트럼프만을 상대로 협상하는 방안을 끈질기게 추구해왔다. 2차 정상회담은 북한이 원하는 바로 그 무대이다.

이 무대의 가장 큰 위험 부담은 트럼프의 예측 불가능성이다. 요즘 트럼프는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 예산을 얻어내기 위해 연방정부 셧다운까지 감수하면서 민주당과 대치하고 있다. 국가 비상사태 선포마저 카드로 쓸 태세다. 트럼프는 민주당 지도부가 국경 장벽 건설 예산을 내놓으라는 자신의 요구를 거절하자 시간 낭비하지 않겠다며 협상장을 박차고 나갔다. 절박하게 원하는 것이 있을 때 트럼프는 이렇게 한다. 하지만 북한을 대할 때는 다르다. 그런 결기도 위기감도 없다. 트럼프는 또 한 번의 정상회담을 하고 싶어하지만 비핵화 실현을 위해 자리를 박차고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싱가포르에서 한·미 연합 군사훈련 중단을 선언해버렸던 것처럼 예상치 못한 카드를 던질지 모른다. 영구적인 한·미 연합 훈련 중단일지, 주한 미군 감축이나 철군일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논리도 필요 없다. 원하면 하는 것이다. 최근 트럼프의 느닷없는 시리아 철군 결정에서 봤듯 트럼프의 외교 전략은 간단하다. "승리라고 선언하고 철수하라"이다. 미국의 쇠퇴하는 리더십도 영향을 끼친다. 이전 같은 힘을 유지할 수 없게 되면서 큰 희생이 필요한 국제 문제를 피하고 말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든다.

북·중은 떠들썩한 신년 모임에 생일잔치까지 하면서 단합을 과시하고 작전을 짜는데, 한·미 대통령들은 새해 들어 열흘이 지나도록 전화 한 통 못했다. 한·미 양국 대통령 모두 김정은과는 연하장까지 교환했다는 걸 감안하면 이 공백이 더 무겁게 느껴진다.



조선일보 A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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