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더가 온다] ① “물과 금 중 무엇이 더 중요할까?” 나는 ‘본질’을 파는 가방장수

김은영 기자
입력 2019.01.10 06:00
최근 스타트업 업계에는 남다른 큐레이션으로 주류 시장에 진입한 청년 창업자들이 주목받고 있다. 그들은 어떻게 금맥을 발견했을까? 넘치는 정보와 재화 속에서 우수한 콘텐츠를 선별해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 리더, ‘큐레이더(Curader=Curation+Leader)’. 방황 속에서도 도전과 지속을 꿈꾸는 청춘들에게 길잡이가 되어 줄 이 시대의 큐레이더들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로우로우 이의현 대표
본질에 충실한 가방, 홍보 없이 한 달 만에 완판
장인과 협업으로 업의 가치 찾고, 스토리텔링으로 팬덤 확보해

이의현 대표는 ‘일일일생(一日一生)’이라는 한자가 들어간 로우로우 모자를 쓰고 나왔다. 오늘 하루를 한평생처럼 사는 것이 그의 좌우명이다./로우로우 제공
2017년 11월 어느 날 일본 도쿄 이케부쿠로의 한 대학교, 한국의 젊은 사업가가 강단에 올라 ‘브랜드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강연을 시작했다. 청중 가운데엔 가나이 마사아키 무인양품 회장도 있었다. 사실 이 자리는 무인양품이 매년 여는 ‘양품 콘퍼런스’로, 회장을 비롯한 매니저급 임원들이 참석했다. 연 매출 3조원에 달하는 글로벌 기업은 이 청년에게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걸까?

로우로우(RAWROW) 창업가 이의현(38) 대표의 일화다. 패션업체 MD로 일하던 이 대표는 2011년 로우로우를 창업했다. 자본금 2000만원으로 가방 300개를 만들어 벼룩시장에서 10개를 팔고,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 편집숍에서 한 달 만에 남은 290개를 팔았다. 브랜드 인지도도, 홍보도 없이 오직 ‘가방’ 하나로 승부를 본 그의 배짱에 패션계가 뒤집어졌다. 그로부터 7년 뒤 로우로우는 연 매출 80억원의 생활잡화 브랜드로 성장했다.

브랜드명 로우로우는 ‘날 것, 본질, 도리’ 등을 뜻하는 영단어 Raw와 ‘열(列)’을 의미하는 Row를 합쳐 만들었다. 해석하면 ‘본질의 반복’, 사물의 본연에 집중한다는 뜻이다.

◇ RAW.1 : 가방의 본질만 살렸다

7일 서울 마포구 상수동 본사에서 이의현 대표를 만났다. "로우로우의 본질은 무엇인가요?" 기자의 질문에 이 대표는 되물었다. "물과 금 중 무엇이 더 중요할까요?" 당연하게 존재하지만, 없어선 안되는 물처럼. ‘꼭’ 필요한 일상용품을 만드는 것이 바로 로우로우의 본질이다.

이 대표가 처음 만든 가방도 "가방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됐다. 그는 무슨 일을 하든 개념 정리부터 하는 습관이 있다. "가방의 본질을 ‘드는 것, 담는 것, 보호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문제를 풀어갔어요. 가벼운 캔버스 원단에 왁스 칠을 해 튼튼하게 하고, 잡기 편하게 손잡이를 키웠죠. 또 가방 속 내용물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밝은 색 안감을 썼어요."

로우로우의 첫 가방 ‘R백 112’. 군더더기 없이 기능만 담은 디자인이 특징이다. 뒤로 메는 백팩이지만 들고 다닐 수 있도록 손잡이를 키웠다./로우로우
그렇게 여덟 번의 샘플 제작을 거쳐 첫 가방이 탄생했다. 가격은 10만 원대, 이름 없는 신생 브랜드 가방치고 비싼 가격이었지만, 사람들은 흔쾌히 가방을 사 갔다. 1년 동안 3만 개를 팔았고, 지금까지도 로우로우의 스테디셀러로 인기를 끈다.

신발 제작 과정도 비슷했다. 신발의 본질을 ‘가볍고, 통풍이 잘되고, 발을 보호하는 것’이라 정의하고, 우유 팩 한 개보다 가벼운 200g짜리 스니커즈를 만들었다. ‘가방다운 가방’, ‘신발다운 신발’에 고객들은 열광했고, 로우로우는 더 ‘본질’에 집착하게 됐다.

◇ RAW.2 : 우린 매일 협업한다. ‘장인’과 함께

로우로우의 협업은 남다르다. "협업하면 대개 유명인이나 큰 회사를 먼저 떠올립니다. 사실 협업이란 게 나의 재능과 다른 사람의 재능을 합쳐 시너지를 내는 거잖아요. 그런 거라면 우린 이미 하고 있었죠. 우리가 상품을 디자인하면, 숙련된 봉제 장인들이 제품을 만드니까요. 생각해보니 그런 분들의 노고를 아무도 조명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김원학 사장님과 협업했어요."

김원학 씨는 서울 면목동에서 30년 넘게 가방을 만들어온 협력업체 대표다. 한 달에 3000개씩 가방을 만들었으니, 국민의 25%가 그의 가방을 멨을 거라는 게 이 대표의 설명. 로우로우는 가방에 장인의 이름을 새겼다. 마치 컴퓨터에 인텔 CPU로고를 새기듯. 그리고 그의 이야기를 고객에게 알렸다. 처음엔 "이 사람이 누구야?"라며 의문을 품던 이들도 곧 "아~"하고 고객을 끄덕였다.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32년 동안 티타늄에 미친 장인이 만들었습니다.” 안경 ‘R아이’를 출시한 로우로우는 브랜드 대신 함께 협업한 제조업체를 띄웠다./로우로우 제공
안경 역시 대한하이텍이라는 제조업체를 앞세웠다. 결과는 대성공. 첫 출고 48시간 만에 준비한 물량이 매진됐다. 이런 방식은 ‘존경 마케팅’, ‘장인 마케팅’이라는 이름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이처럼 새로운 것을 찾기보다, 가치를 지키는 것이 로우로우가 추구하는 본질이다. 많은 브랜드가 백화점이나 가로수길 같은 상권에서 기회를 찾지만, 이 대표는 재래시장에 장사의 원형(Raw)이 있다고 본다. "‘고객님, 이 가방은 OO원이시구요~’하는 백화점의 극존칭 서비스에 거부감이 듭니다. 그냥 좋은 물건 내놓고 ‘이거 한 번 잡숴봐. 저거 싱싱하니 가져가’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로우로우는 서울 광장시장에서 직영 매장을 운영한다.

◇ RAW.3 : 솔직한 스토리텔링, 강해지는 ‘팬덤’

인스타그램에서 #myrawrow를 검색하면 200여 개의 게시물이 검색된다. 백팩, 크로스백, 지갑, 신발, 안경 등 자신이 가진 로우로우 제품을 자랑하는 게시물로 이가운데엔 열 개, 많게는 26개의 제품을 수집한 이도 있다. 광고나 연예인 협찬을 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놀라운 결과다. 가나이 마사아키 무인양품 회장이 로우로우에 주목한 것도 바로 이 ‘팬심’이다.

인스타그램에서 #myrawrow 를 검색하면 로우로우의 열혈 팬들을 만날 수 있다. 이들은 ‘친구 같다’ ‘덕질(팬활동)할 맛이 난다’며 영업 판매원을 자청한다./인스타그램
팝스타 못지않은 팬덤을 만든 비결은 있는 그대로(Raw)를 보여주는 것. 이 대표는 "우리가 브랜딩을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부족하고 어설퍼도 솔직한 모습을 보여줬다. 제품 만드는 과정도 전부 공개했다. 그것이 스토리텔링이 되어 공감을 산 것 같다"고 했다.

실제로 로우로우는 처음 벼룩시장에서 가방을 사준 건축학도 민우를 위해 ‘민우 가방’을, 아이를 출산한 직원을 위해 ‘기저귀 가방’을 만들었다. 그런가 하면 빅이슈 판매사원을 위한 조끼를 만들고, 배달의 민족 배달원을 위해 동전과 카드 단말기가 들어가는 라이더 가방을 제작했다. 사용자를 향한 진심과 친근한 스토리에 고객들의 ‘덕후력’은 더 커졌다. 어쩌면 다음 가방의 주인공은 내가 될지 모른다는 기대와 함께.

이 대표는 스스로를 가방장수라고 소개한다. 지난해 10월에는 여행용 가방을 출시했는데, 한 달 만에 준비한 물량을 다 팔았다. 여행용 가방은 사출 방식으로 제작되기 때문에, 많은 시간과 투자가 필요했다. 그런데도 도전한 이유는 몇몇 업체가 독점한 시장 구조를 깨뜨리고 싶어서다.

"기왕이면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지금껏 우리는 수용자 입장이었지, 공급자 역할을 별로 안 했잖아요. 패션업계만 봐도 OEM·ODM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업체들이 수두룩한데 말이죠. 이젠 창조자의 입장에서 우리의 자부심을 담아 가치 있는 일을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그것이 우리 세대의 도리(Raw)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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