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상훈 칼럼] 내로남불 청와대에 사무실마다 '춘풍추상'이라니

입력 2019.01.10 03:17

남에겐 봄바람처럼 대하고 자신에겐 가혹하게 하라는 '춘풍추상' 벽에 걸어놓고
행동은 정반대 내로남불… 낯 두꺼운 사람들인가, 무서운 사람들인가

양상훈 주필

노영민 새 대통령 비서실장이 처음으로 한 말이 춘풍추상(春風秋霜)이었다. "청와대 비서실을 둘러보니 방마다 춘풍추상 액자가 걸려 있었다"며 "그런 생각으로 일하자"고 했다. 신영복이 쓴 글을 문재인 대통령이 비서실에 돌렸다고 한다. 춘풍추상은 '다른 사람은 봄바람처럼 대하고, 나 스스로에겐 서릿발처럼 엄하게'라는 뜻이다.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정반대의 정신이다. 내로남불과 위선이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정권이 사무실마다 춘풍추상을 걸어놓고 있다니 청와대 누구 말대로 유전자가 다른 사람들 같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사무실에 뜻은 좋지만 지키기는 어려운 경구를 걸어놓기는 하지만 청와대 춘풍추상처럼 현실이 반대인 경우는 보기 어렵다.

지난번 칼럼에서 정권의 내로남불을 아는 대로 찾아 열거했더니 많은 분이 '더 있다'며 케이스를 보내주셨다. 칼럼에 쓴 것도 20여 건인데 새로 알려주신 것도 수십 건이었다. 다시 들어도 혀를 차게 되는 것이 적지 않았다. 위선도 이 정도면 정말 '역대급'이다. 특히 많은 분이 분노한 사례는 이 정권이 고른 대법관, 헌법재판관이 자신도 위장 전입을 해놓고 다른 위장 전입자에게는 징역형을 내린 경우였다. '내게는 봄바람같이, 너희에겐 서릿발처럼'이다. 그 대법관은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받고 취임사에서 사법부가 신뢰를 잃어 위기라고 일장 연설을 했다. 보통 사람은 얼굴이 화끈거려 이러지 못한다.

남의 잘못은 있는 것 없는 것 다 뒤져 가혹하게 짓밟으면서 제 잘못은 덮고 뭉개는 사람들이 의자 뒤 벽에 '남에게는 봄바람처럼, 나에겐 가혹하게'를 좌우명으로 걸어놓고 태연하게 앉아 있다. 얼굴이 두꺼운 사람들인가, 무서운 사람들인가.

이 정권이 적폐 수사 한다면서 사실상 죽인 사람이 4명이다. 자살이라고 하지만 타살이다. 방산업체 수사에 연루된 기업 임원이 자살했는데 비리는 나오지도 않았고 엉뚱하게 분식 회계로 걸었다. 국정원에 파견됐던 검사, 변호사는 국정원 압수 수색 때 다른 곳으로 안내했다는 혐의를 받다 자살했다. 2주일 전 청와대 민정수석실 압수 수색도 사무실에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했다. 국가 보안 시설은 통상 이렇게 압수 수색을 한다. 남에게는 목숨을 끊게 할 정도로 모질게 하면서 자기들끼리는 봄바람처럼 한다.

고 이재수 장군은 기무사령관 시절 세월호 유족을 사찰했다고 수사를 받았다. 문 대통령이 직접 수사를 지시했다. 세월호 구조에 군이 많이 동원돼 기무사가 활동했으나 요원들에게 '추모 분위기 저해 행위 차단' '사찰 논란 없도록 무분별 행동 금지'를 지시했다. 검찰은 영장에서 이런 부분은 모두 뺐다고 한다. 구속영장이 기각됐지만 일부러 수갑을 채워 망신을 주고 아들 원룸과 친구 사무실까지 압수 수색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압박에 얼마나 큰 부담을 느꼈겠나. 결국 자살을 택했다.

몇 년 전 일로 안 되면 10년 전 일을 뒤진다. 구속 영장이 기각되면 별건 조사로 들어간다. 김관진 전 안보실장은 여섯 가지 다른 혐의로 검찰, 감사원, 청와대 조사를 받았다. 수사가 아니라 '사람 사냥'이다. 이재수 자살 사흘 뒤에 문 대통령은 '인권이 최우선'이라고 연설했다. '수갑 채우기를 최우선'으로 하다가 사람이 자살까지 했는데 '인권이 최우선'이라고 한다. 청와대 사무실에 걸려 있는 춘풍추상도 이런 역설일 것이다.

세월호와 아무 상관 없는 이재수 장군 아들은 압수 수색을 당하는데, 대통령 아들은 그 이름만 부르면 면죄부가 나온다. 청와대가 민간 기업 인사에 개입한 것은 '가상한 일'이고, 민간인들 성향을 조사한 것은 '모르는 일'이고, 비위 첩보를 제 친구에게 알려준 것은 '알아보니 무혐의더라'라고 한다. 전 정부 먹칠을 위해 나랏빚을 일부러 늘리라고 한 것은 '다른 곳에 물어보라'고 한다. 공무원 휴대폰 압수해 사생활 캔 것도, 34세 두 달 변호사가 청와대 행정관이 된 것도, 그가 육참총장과 카페서 장성 인사를 논의한 것도 뭐가 문제냐고 한다. 청와대 내부를 폭로한 김태우는 '6급 주사 따위' 취급을 하고, 육참총장 만난 자기편 5급 행정관은 '수석이든 5급이든 다 대통령의 비서'라고 한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나에게는 봄바람이다.

원로 정치인 한 분은 현 정권의 내로남불에 대해 "이들은 말을 책임으로 하지 않고 멋으로 한다"고 했다. 말을 하면 지켜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연기(演技)처럼 한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분도 진심으로 우리 국민으로 섬기겠습니다. 저는 감히 약속드립니다. 2017년 5월 10일은 진정한 국민 통합이 시작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라고 했다. 알다시피 실제 벌어진 일은 그 정반대로, 취임사는 결과적으로 멋진 연기에 불과했다. 지금 청와대 춘풍추상은 그런 연기의 소도구로 벽마다 걸려 있는 셈이다.



조선일보 A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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