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 혁신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나

최유식 중국전문기자
입력 2019.01.10 03:14

日 기업 넘어선 우리 원동력은 높은 생산성과 임금 경쟁력
낮은 이익률에 최저임금 급등… 연구개발 통한 혁신 가능한가

최유식 중국전문기자

일본 연구 기관들은 도시바, 마쓰시다 같은 일본 대표 전자(電子) 기업들이 한국 삼성전자와 LG전자에 추월당한 시기를 2000년대 초반으로 본다. 1990년대 내내 가파르게 성장한 한국 기업들이 IMF 외환 위기 직후인 2000년대 초반 일본 기업들을 따돌리는 데 성공했고, 이후 줄곧 우위를 내주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이 이런 판단을 내린 기준은 '생산성'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인건비에 과감한 투자까지 더해 생산성 측면에서 일본 기업들을 넘어섰다는 것이다. 일본이 특히 주목한 것은 한국 중소기업의 경쟁력이다. 문부과학성 과학기술·학술정책연구소가 2016년 펴낸 한·일 제조업 비교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1994년부터 2010년까지 한국 중소기업 근로자들은 실질 임금이 거의 2배 가까이로 올랐는데도, 임금 경쟁력 측면에서 일본을 앞섰다. 일본 중소기업의 임금 수준은 대기업의 70~90% 수준인 반면, 한국 중소기업은 60~80% 선을 유지했다는 것이다. 이런 경쟁력을 바탕으로 값싸고 질(質) 좋은 중간재를 공급한 것이 한국 대기업들에 큰 도움이 됐던 것으로 분석했다.

하지만 일본 전자 기업들을 앞지른 이런 '승리 공식'은 수년 전부터 크게 흔들리고 있다. 더 낮은 임금 경쟁력과 생산성으로 무장한 중국 기업들이 우리를 빠른 속도로 추격해 오고 있는 탓이다.

한 나라의 경제성장률은 노동인구와 노동생산성에 좌우된다. 노동인구가 늘거나 노동생산성이 올라가야 경제성장률이 높아진다. 한·중·일 3국은 저출산·고령화 속에 모두 노동 가능 인구가 감소하는 시기에 접어들어, 이제는 노동생산성을 얼마나 끌어올리느냐가 성장률 유지의 관건이다.

시진핑 집권기의 중국 공산당과 정부가 공급 측면 구조 개혁과 '중국 제조 2025' 프로젝트를 통해 대대적 산업 구조조정과 기술 진흥(振興)에 나서고 있는데, 그 핵심 타깃은 '생산성'이다. 낙후한 과잉 생산 시설을 도태시키고, 부가가치 높은 첨단 과학기술 분야의 기업을 육성해 생산성을 대폭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중국은 2008년 급진적 노동계약법을 도입한 이후 임금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2012년부터는 노동인구까지 감소하면서 해마다 10% 이상 임금이 오른다. 이런 상황에서 수출 경쟁력을 잃지 않고 6%대 이상의 성장률을 유지하려면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것 외에는 다른 방안이 없다.

심지어 인프라 건설도 생산성 향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작년 개통한 강주아오(港珠澳) 대교는 웨강아오(광둥성과 홍콩, 마카오) 일대의 금융 서비스 경쟁력을 미국 뉴욕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베이징 근교에는 과학기술 신도시 슝안(雄安) 신구를 건설 중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연말연초에 걸쳐 중소기업인들을 상대로 신기술·신산업 육성과 제조 혁신 등을 강조했다. 하지만 최저임금 대폭 인상과 주휴수당 법제화 같은 정부 정책은 오히려 중소기업 경쟁력의 기반을 뿌리부터 흔들고 있다. 한국은행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중소 제조업체의 작년 3분기 순이익률은 2.9%로, 제조업 분야 대기업 순이익률(10.3%)에 크게 뒤졌다. 100원 벌어 기껏 2.9원을 남기는 셈이다.

기업이 혁신을 하려면 연구개발 투자가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적정 이윤을 내야 한다. 턱없이 낮은 이익률에 인건비 부담까지 가중되면 무슨 돈으로 혁신을 하나. 경제학 금언(金言)에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는 말이 있다. 이 정부는 혁신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으로 생각하는 걸까. 그렇다면 자가당착(自家撞着)도 그런 자가당착이 없다.



조선일보 A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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