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은 3·1운동의 또다른 '수레바퀴'였다

유석재 기자
입력 2019.01.09 03:01

[3·1운동, 임시정부 100년 - 1부] [우리가 잘 몰랐던 이야기] [2] 대한독립여자선언서
여성의 尙武 정신을 담은 문서
'누구의 처' '누구의 어머니' 아닌 이름 석 자를 당당히 밝혀 서명

"의리의 전신 갑주를 입고 신력의 방패와 열성의 비수를 잡고 유진 무퇴하는 신을 신고 일심으로 일어나면… 우리는 아무 주저할 것 없으며 두려할 것도 없도다… 동포 동포시여 대한 독립 만만세."

1983년 11월, 도산 안창호의 장녀 안수산의 미국 로스앤젤레스 집에서 문서 한 장이 발견됐다. 한지 위에 순한글로 1291자, 도도한 문체와 질풍노도의 기백이 넘치는 이 문서 제목은 '대한독립여자선언서(大韓獨立女子宣言書)'. 3·1운동을 전후해 국내외에서 선포한 독립선언서 수십 종 중에서 여성 목소리로만 이뤄진 것이었다.

◇"여성의 힘으로 민족 독립 이뤄야"

선언서 작성 시기는 3·1운동이 일어나기 직전인 1919년 2월. 박용옥 전 성신여대 교수는 이 선언서를 우리 동포가 많이 이주한 간도 땅 지린(吉林)에서 기독교계 젊은 여성들이 썼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여성이 독립운동 주체로 우뚝 서겠다는 의지를 표현했다는 것이다.

"겁나의(오래된) 구습을 파괴하고 용감한 정신을 분발하라." 선언서에서 돋보이는 것은 상무(尙武) 정신이었다. 남자와 동등한 국민 된 여성도 성력(誠力)을 다하면 민족 독립의 뜻을 이룰 수 있으며, 여성의 힘은 용기와 고매한 지식을 가진 남성 영웅호걸을 능가할 수 있다고 외쳤다.

김인종, 김숙경, 김옥경, 고순경, 김숙원, 최영자, 박봉희…. 선언서에 서명한 여성들은 과거 그들의 어머니와 할머니처럼 '누구의 처' '누구의 어머니'로 등장하지 않고 제 이름 석 자를 당당히 밝혔다. 근대 교육의 세례를 받기 시작해 '개인'으로 우뚝 선 여성들이 거대한 독립운동의 일익을 담당하겠다고 밝힌 이 선언서는 이후 미주 등의 여성 독립운동 단체를 고무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수레바퀴는 혼자 달리지 못한다"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찾은 시민들이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사진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여러분! 국가의 대사를 남자들만이 하겠다는 겁니까? 수레바퀴는 혼자 달리지 못합니다." 1919년 2월 6일 일본 도쿄의 조선인 유학생들이 2·8 독립선언서를 준비하며 웅변대회를 열었을 때, 여학생이 소외되는 듯한 분위기에서 여성 친목회 회원 황에스터(1892~1971)가 분연히 일어나서 한 말이다. 유관순은 3·1운동 당시 보기 드문 여성 독립운동가가 아니었다. 3·1운동은 민족운동 전선의 남녀 성차(性差)를 비로소 극복한 일대 사건이었다. 이름 없는 숱한 여성들이 전국에서 만세 시위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1919년 3월 1일 서울 거리에서 만세를 부르며 행진하는 여성들 사진이 있다. 일본 오사카아사히신문에 실린 이 사진에선 어두운 색 한복을 입은 여성들이 비장한 표정으로 대로를 걷고 있다. 박환 수원대 교수는 "이 옷은 당시 교복으로, 사진 속 여성들은 학생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상하이 대한적십자회가 1921년 발행한 사진첩에는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는 죄목으로 포승에 묶인 채 일경에게 끌려가는 두 여성의 사진이 있다. 그들에게서 위축된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다.

◇"망각 속에서 꺼내야 할 이름들"

여성들이 만세 운동을 계획하고 주도한 대표적 지역 중 한 곳이 호남이다. 광주 수피아여학교(3월 10일), 전주 기전여학교(3월 13일), 목포 정명여학교(4월 8일) 등 여학교 학생들이 만세 운동의 선봉에 나섰다. 수피아여학교의 만세 운동에는 2·8 독립선언에 참여했던 김마리아(1892~1944)가 은밀하게 교사인 언니 김함라에게 독립선언서를 전해 주고, 교사 박애순이 학생들에게 독립 의식을 고취하는 등 여성 교사들의 역할이 컸다.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눠주며 시위를 벌이던 여학생들은 무장한 일본군 기마 헌병대가 시위대를 체포하기 시작하자 "우리 발로 경찰서에 가겠다"고 외치며 경찰서 앞마당에서 독립 만세를 외치는 기개를 보였다. 그날 체포된 100여 명 중에서 80여 명이 구속됐다.

하지만 3·1운동의 '수레바퀴' 중 하나였던 여성 독립운동가는 상당수 잊혔다. 지난해 8월까지 독립운동가 포상을 받은 1만5052명 중 여성은 외국인 4명을 포함해 325명, 전체의 2.1%에 그쳤다. 사단법인 대한민국역사문화원은 지난해 국가보훈처의 의뢰로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발굴한 결과 모두 202명을 새로 찾아냈는데, 이들 중 3·1운동 관련자는 35명이었다. 이정은 대한민국역사문화원장은 "독립운동은 여성의 참여 없이는 지속 불가능했다"며 "독립운동의 길을 걸었던 여성들의 삶을 망각 속에서 꺼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A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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