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그 많던 스키장 인파 다 어디로 갔을까

이혜운 기자
입력 2019.01.05 03:00
크리스마스이브인 지난달 24일 강원도 춘천에 있는 스키장 ‘엘리시안 강촌’의 모습(왼쪽). 예년 이맘때면 사람들로 빽빽하던 슬로프와 리프트가 텅 비었다. 오른쪽 사진은 크리스마스 당일을 맞아 붐비는 실내 스포츠 체험 시설 ‘스포츠 몬스터’. / 김영근씨 제공·스포츠몬스터
#1. 매년 겨울 시즌마다 스키를 즐기는 김영근(43·사업)씨는 크리스마스 이브인 지난 24일 평소처럼 강원도 춘천에 있는 스키장 '엘리시안 강촌'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보통 때면 사람 때문에 눈이 안 보일 지경이던 슬로프가 텅텅 빈 것. 줄을 서서 기다리던 리프트도 바로 탈 수 있을 정도였다. 새해 첫날인 올해 1월 1일 연휴에도 스키장을 다녀왔다는 김씨는 "기다리지 않고 마음껏 스키를 즐길 수 있어서 좋긴 하지만, 그 많던 사람들이 다 어디 갔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2. 서울대학교 스포츠진흥원은 매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했던 '스키보드캠프'를 올해엔 신청자 수 미달로 취소했다. 2008년만 해도 신청자가 너무 많아 접수 현장에서 학생과 조교가 충돌을 빚을 정도였다. 스키장 관계자는 "최근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스키보드캠프는 거의 사라졌다"고 말했다.

일본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東野圭吾)'의 소설 '연애의 행방'에는 '겔렌데(산의 경사지) 마법'이라는 말이 나온다. 스키장에서는 사랑에 빠지기 쉽다는 법칙이다. 설원(雪原)의 분위기가 단점을 가려주고 장점은 부각시켜주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고글과 마스크를 쓰고 스키복을 입으면 누구나 멋져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요즘 20~30대들에겐 이 법칙이 멈춰버린 듯하다. 국내 스키 인구가 젊은 층을 중심으로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스키장경영협회에 따르면, 국내 스키장 이용 고객은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가 결정된 2011~2012 시즌에 686만3112명으로 고점(高點)을 찍고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2014~2015년 시즌에는 511만6399명으로 2004~2005년 시즌(540만8459명)보다도 낮다. 현재 한국스키장경영협회에서는 2015년 이후 이용객 현황 자료를 추산하고 있지 않지만 업계에서는 2016년 490만5856명으로 더 떨어진 이후 매년 10%씩 감소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지난해 평창 동계올림픽까지 열린 나라에서 왜 스키 인구는 계속 감소하는 것일까.

먼저, VR(가상현실)방·스포츠몬스터·인터넷 게임 같은 실내 스포츠 인구의 증가. 특히 올해 겨울 날씨가 평년보다 춥거나, 미세 먼지가 심해 실외 스포츠를 즐기기 부적합했다는 해석도 있다. 실내 스포츠 체험 센터인 '스포츠몬스터'는 "지난해 크리스마스 연휴엔 전년보다 이용객이 10% 늘었다"고 말했다.

평소 스키장 시즌권을 구매해놓고 스키를 즐기던 20~30대 남성들이 골프 등 다른 스포츠로 많이 이동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대한골프협회(KGA)와 경희대학교 골프산업연구소가 지난해 11월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2017년 국내 골프 활동 인구는 761만명이다. 이는 10년 전인 275만명보다 3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이 같은 상승세를 주도한 건 20~30대 남성들이다. 특히 골프를 배울 의향이 있는 20대 잠재 골프 인구도 4명 중 1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겨울이면 해외에서 골프를 치는 인구도 2017년 211만명으로 2007년 67만명보다 3배 가까이 증가했다.

소득 양극화가 심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국내 스키장이 활성화되려면 중산층이 탄탄해야 하는데, 소득 양극화가 심해지자 해외로 여행을 가는 사람들과 집에만 있는 사람들로 여가를 보내는 풍속도가 양분됐다는 것이다. 모두투어에 따르면 지난 12월 해외 항공권 판매는 3.4% 증가했다.

이런 현상은 이웃 나라 일본에서는 이미 선행됐다. 버블 경제가 무너지면서 스키 인구의 기본 토대가 사라져버린 것. 일본 경제지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에 따르면, 일본 동북 6현(미야기·후쿠시마·야마가타·이와테·아키타·아오모리) 스키장 이용 고객은 2017년 3520만명, 수입은 65억엔(약 685억원)으로 10년 전과 비교해 각각 30% 이상 줄었다. 그러나 2015년부터는 스키장별로 감소세가 더디거나 반전된 곳들이 나타나고 있다. 방일(訪日) 관광객 증가 때문이다. 특히, 최근 외국인 관광객 대상으로 스키장을 재단장한 이와테(岩手)현은 지난 2년 방문객 수가 12%, 수입은 18% 늘어났다. 신문은 "일본 동북 스키장들이 (외국인 관광객 취향에 맞게) 압설을 하지 않은 푹신한 신설을 만들거나 나무 사이를 가로지르는 코스들을 늘리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며 "초보자가 많은 아시아 관광객을 잡기 위해 스키장 일부를 쇼핑 구역으로 개조해 가전이나 미용, 시계 등을 파는 공간으로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B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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