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나는 새 떨어뜨리다 파리 날리는 신세… 벼랑 끝 文정부 정보맨들

권승준 기자 김아사 기자
입력 2019.01.05 03:00

[주말의 수사반장] 사정기관·대기업 정보맨의 세계

정보는 힘이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에서 근무하던 김태우씨는 6급(수사관) 신분이었지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을 수시로 만났다. 그가 올리는 보고서 한 장의 힘은 컸다. 누군가의 공직 생활을 끝낼 수도, 처절한 수사로 이어질 수도 있는 보고서다. 임기가 3년 남은 정권의 각종 의혹 폭로를 이어나갈 수 있는 이유도 그가 여러 정보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뿐 아니라 검찰이나 경찰, 감사원, 국세청 등 사정기관, 대기업 등도 이런 식의 정보 활동을 한다. 공직자 등의 뒷조사를 하고 비위(非違) 정보를 모은다. 기업 담당자들은 입법이나 정책 과정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활동을 한다. 그룹 오너가 관련된 일도 빠질 수 없다. 오너 리스크가 있는 기업일수록 대관(對官) 업무에 힘을 싣는다.

시작도 끝도 사람이다. '얘기가 되는 사람을 만나야 얘기되는 정보를 접할 수 있다'는 게 정보맨들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이다. 휴민트(인적 정보)를 다지는 일에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쉽게 사람을 바꾸지 않는다. 검찰이든 경찰이든 어느 업무보다 베테랑들의 활약이 많은 분야다.

최고 정보맨은 누구

2016년 검찰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조사할 때의 일이다. 삼성, 현대, SK, 롯데, LG, CJ 등 대기업 총수들이 모조리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애초 조사를 피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총수 입장에서 신경이 쓰이는 것은 검찰청 포토라인에 설 때 찍힐 사진이다. 이런 사진이 한번 찍히면 국내를 비롯해 외신에도 두고두고 인용돼 평판에 흠이 갈 일이다. 그런데 어느 총수의 얼굴은 대문짝만 하게 보도되고, 어느 총수는 사진 한 장 나오지 않았다. 여기에도 정보맨들의 활약이 있었다. 사전에 좋은 출석 순서를 선점했고, 조사를 받는 검찰청 내부 통로를 훤히 꿴 탓에 청사를 오고 나갈 때 기자들을 따돌릴 수 있었던 것. 한 대기업 정보 관계자는 "실력 있는 정보맨들은 출석 시기, 검찰 내부 구조와 기자 동선 등을 고려해 총수 조사를 대비했다"며 "정보맨들 간 눈치 싸움도 치열했다"고 했다.

최순실 국정농단은 여러 면에서 정보맨들의 실력을 점검할 수 있는 장이었다. 최의 존재를 파악한 이가 누구였느냐는 것이 정보 업계에서도 화제였다. 삼성은 과거 '삼정원(삼성+국정원)'이라고 불렸을 정도로 최고 정보력을 자랑했다. 2017년 해체되기 전까지 미래전략실이 컨트롤 타워가 돼 그 아래 기획팀이 정보 업무를 담당했다. 삼성은 수뇌부가 최씨의 측근이던 박원오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와 교류했고, 승마협회를 통해 정유라를 지원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까지 된 것은 비선 실세인 최의 존재와 힘을 너무나 잘 파악하고 있던 삼성의 앞선 정보력 때문이었다는 역설이 있을 정도다.

한화는 최씨 사건의 도화선이 된 '정윤회 문건' 일부를 입수했다. 2014년 한화 S&C에서 정보 일을 하던 진모 차장은 서울지방경찰청 정보분실 소속 한모 경위로부터 유출된 청와대 문건을 입수한 사실이 드러났다. 서울중앙지검은 그해 12월 한화 S&C를 압수 수색했다. 한화 그룹은 커뮤니케이션위원회에서 대외협력 기능을 담당한다. 서초동의 한 정보맨은 "오너 일가가 여러 차례 수사 대상이 된 전력 탓에, 정보맨들에 대한 대우가 좋다"고 했다.

법률사무소 김앤장이 2014년 최순실의 동생 최순천씨의 사위 A씨를 고용한 것도 정보 업계에선 빼놓지 않는 얘기다. A씨는 2010년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사법 연수원 수료 이듬해에 김앤장에 스카우트됐다. 문제는 A씨의 연수원 성적이 하위권이었다는 것. 한 법조계 관계자는 "연수원 성적도 빼어나지 않은 데다 연차도 얼마 되지 않아 이례적이라는 말이 많았다"고 했다. 2014년은 최순실씨의 입김이 절정에 달하던 때다.

문재인 정부 들어 검찰·경찰·국정원은 정보 기능을 약화했다. 국정원은 국내 정보 업무를 담당하던 경제팀을 없앴고 검찰은 동향 등 일반 정보는 다루지 않고 수사 정보만 다루게끔 했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대검찰청, 국정원 청사, 경찰청 정보분실. / 연합뉴스·뉴스1
무너진 정보 시장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정보 시장은 큰 변화를 겪었다. 3대 축이라 불리던 삼성, 국정원, 검찰의 조직이 쪼그라든 것이다. 삼성은 최순실씨 국정농단 사건 후 정보 업무 컨트롤 타워인 미래전략실을 해체했다. 정보맨들은 각자의 계열사로 인사 발령을 받았고, 현재는 삼성물산 대외전략실을 중심으로 업무를 이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의 경우 서훈 국정원장이 취임하자마자 2차장 산하에서 국내 정보 업무를 담당하던 경제팀을 없앴다. 국정원 국내 담당 직원들은 각 기관뿐 아니라 서울 등 주요 도시의 지역 단위로 촘촘하게 뿌려져 다양한 첩보 수집 및 분석을 담당했다. 수백 명의 직원들이 몇십 년간 해오던 업무가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검찰 역시 대검찰청 범죄정보기획관실 1과와 2과가 정보와 범죄 정보를 나눠 수집했지만, 이들을 모두 일선 지검으로 돌려보내고 이름을 수사정보정책관실로 바꿨다. 동향 등 일반 정보는 다루지 않고 수사에 국한된 정보만 다루게 기능을 약화했다.

경찰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10년 이상 경찰 정보 파트에서 근무한 B경감은 "경찰 생활 대부분을 정보 업무에 투신했는데 이번 정부 들어서 사실상 실업자가 됐다"고 했다. 지난 6개월간 아침에 출근해서 얼굴도장 찍고 정보맨들끼리 푸념을 늘어놓았을 뿐 찾는 사람이 없다는 것. B 경감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서울 시내 일선 경찰서에서 20년 가까이 대학과 시민단체 관련 정보 수집 업무를 했던 C 경위는 작년 초 담당 업무가 아예 사라지고 경무과로 발령이 났다. 그는 "50세 넘은 사람에게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업무를 맡기는 건 조직에서 사실상 사망 선고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청은 지난달 17일 서울 한남동에 있던 정보국 산하 정보분실 사무실을 없앴다. 정보분실에서 근무하던 정보경찰들은 미근동 경찰청사 별관으로 출근 중이다. 대부분 국회나 국내 기업 및 언론사 등 국내 각종 기관의 첩보 수집 담당이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사정기관들의 국내 정보 파트들이 폐지되거나 축소되는 추세에 경찰도 발맞추면서 정보분실 기능 대부분이 유명무실해졌다. 경찰은 이달 안에 정보국 조직을 개편하면서 국내 정보 파트를 대대적으로 개편할 예정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각 정부 부처의 동향 및 비위 첩보 등을 수집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소수의 정보 경찰만 따로 남겨서 '외근과'를 만들고 나머지 국내 정보 담당은 모두 없애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국내와 해외 간 정보 경계가 희미해지는 상황에서 무조건 국내 첩보 수집을 금지하는 것은 문제라는 비판도 나온다. 국정원 해외 정보 파트에 근무했던 한 직원은 "산업스파이를 잡는 일은 대개 산업 안보 담당 직원과 국내 파트 직원이 협업했다"며 "국내 첩보 수집 업무로 만들어진 다양한 정보 네트워크가 간첩이나 산업스파이를 잡는 데 활용될 수 있는데 모조리 없앤 것은 문제가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 B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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