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설렁탕은 불투명한 중년의 맛… 땀 흘리는 어른이 되고 한 그릇을 비웠다

정동현
입력 2019.01.05 03:00

[정동현의 pick] 설렁탕 편

서울 용강동 '마포옥'

설렁탕은 어려운 음식이었다. 맑지도 빨갛지도 않은 하얀 국물은,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중년의 얼굴처럼 모호했다. 맛을 보면 개운하지도 시원하지도 않았다. 부산 살 적에는 설렁탕을 먹을 수 있는 곳조차 많지 않았다. 가끔 남포동에 있는 '서울깍두기'에 가면 나의 부모는 감격도 슬픔도 아닌 씁쓸한 표정으로 하얀 국물을 떠 마셨다. 1945년 처음 문을 열었다는 이 집의 깍두기와 김치를 먹으면서, 아버지는 "이게 서울 김치야"라고 말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아버지는 이따금 해장으로 먹었던 설렁탕 이야기를 했다. 서울 밤거리를 쏘다니며 친구들과 웃고 떠드는 아버지의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아버지는 보통 시장에서 장사를 하다 밤늦게 돌아왔다. 여유 있는 여가도, 흥청망청 써버리는 유흥의 흔적도 아버지의 얼굴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 아버지가 젊은 시절 먹었던 설렁탕은 그 근원이 어찌 되었든 서울의 음식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소설 '운수 좋은 날'에 나오는 그 따끈한 한 그릇도 설렁탕이었고 그 배경은 당시 경성이었다. 실상 유명한 거의 모든 설렁탕집은 서울에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서울 아닌 곳에서 설렁탕을 먹을 만한 집을 찾는다면 경기도 분당 '감미옥'을 꼽을 수 있다. 24시간 문을 열고 손님을 기다리는 이곳은 보통 단품만 취급하는 서울의 설렁탕집과 다르게 메뉴가 꽤 다양하다. 주차장도 넓다. 전형적인 신도시 식당이다. 밥도 흰 쌀밥이 아니라 그때그때 돌솥에 지어 나오는 흑미밥이다. 소면을 먼저 건져 먹고 잡내 하나 없이 멀끔한 국물을 마신다. 종업원들은 카트에 무거운 그릇을 실은 채 바삐 밀고 다닌다. 먹다보면 이곳이 분당이란 사실이 새삼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대표메뉴 중 하나인 차돌탕. 차돌박이를 통으로 삶아 큰 칼로 서걱서걱 잘라낸 것(왼쪽 사진)을 올려서 낸다. 차돌탕뿐 아니라 고소한 맛이 극대화된 마포옥 설렁탕의 뜨끈한 국물도 찬바람 불면 생각나는 음식이다.이미지 크게보기
서울 용강동 마포옥의 대표메뉴 중 하나인 차돌탕. 차돌박이를 통으로 삶아 큰 칼로 서걱서걱 잘라낸 것(왼쪽 사진)을 올려서 낸다. 차돌탕뿐 아니라 고소한 맛이 극대화된 마포옥 설렁탕의 뜨끈한 국물도 찬바람 불면 생각나는 음식이다. /김종연 영상미디어기자
경부고속도로에 올라타 한남대교를 건너 서울의 중심, 명동에 이르면 새벽 6시부터 문을 여는 '미성옥'이 있다. 시끄럽지도 부산스럽지도 않은 이 집은 크게 이름값 떨친 적 없이 묵묵히 탕을 끓이고 또 끓일 뿐이다. 종업원들의 움직임에는 낭비도, 무례의 뉘앙스도 없다. 주문이 들어가면 명을 받든 과묵한 충신처럼 신속히 주문을 넣고 남는 시간에는 테이블을 정리한다. 늘 말끔히 정리되고 닦인 후추·소금통을 보면 먹지 않아도 맛이 느껴진다. 과유불급, 맛은 진하지만 무겁지 않다. 포마드를 발라 머리를 빗어넘긴 신사처럼 첫맛은 깔끔하고 뒷맛에는 여운이 감돈다. 감히 서울의 맛이라 할 만하다.

명동에서 자리를 털고 일어나 나루터가 있던 마포에 가면 1949년 문을 연 '마포옥'이 있다. 2층에 자리를 잡은 이 집도 손님들의 평균연령이 한참 높다. 마포옥은 설렁탕을 세분하여 여러 메뉴로 나눴다. 가장 대표되는 '양지설렁탕'을 먹어보면 혀에 올라타는 맛의 무게가 제일 먼저 다가온다. 한 해 몇 번 안 되는 좋은 날, 위장에 기름칠을 할 기세로 먹던 육중한 탕국이다. 숟가락질할 때마다 건져지는 넉넉한 살코기에 잔치상처럼 호화로운 국물이 뒤따른다. 이보다 더한 것은 '차돌탕'이다. 차돌박이를 통으로 삶아 큰 칼로 서걱서걱 썰어내어 담아낸 이 탕은 감사한 어른에게 올리고 싶은 음식이다. 먹다보면 국물 한 방울 남기기 아쉬울 정도다. 한 그릇을 말끔히 비우고 이마에 땀이 맺히면 설렁탕이란 음식이 조금은 가늠되는 듯싶다. 어릴 적 설렁탕이 어려웠던 이유는 그 하얗고 불투명한 국물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밤을 뿌옇게 지새우고, 뼈를 갈아낼 정도로 땀을 흘리고, 그래서 결국 그 국물을 마실 수밖에 없는 하루를 잘 몰랐다. 아마, 지금도, 여전히.
조선일보 B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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