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혜진의 영화를 맛보다] 그 뜨끈한 위로를 들으며 포도맛 사탕을 떠올렸다

송혜진 기자
입력 2018.12.25 03:00

"니 추어탕 묵어봤나?"

"니 추어탕 묵어봤나? 미꾸라지 좀 튀겨줄까?"

애써 울음을 참고 있는데, 뜻밖에도 웃음이 먼저 김밥 옆구리 뜯어지듯 터졌다. 영화 속 추어탕 주인 장후남(김선영)이 지은(김시아)을 보자마자 건넨 이 한마디 때문이다. 웃기 시작했는데 이번엔 눈물이 뺨으로 굴러 떨어졌다. 목울대까지 차올랐던 울음이 끄억끄억 튀어나왔다. 영화 '미쓰백'(감독 이지원) 때문이다.

'미쓰백'은 올해 내가 놓친 가장 아픈 영화다. 이 영화가 개봉했던 게 지난 10월. 왼쪽 발목 인대가 끊어지는 바람에 영화 시사회와 개봉일을 놓치고 집에 주저앉아 있을 때였다. 영화가 무척이나 섬세하게 완성됐고, 배우 한지민과 아역 배우 김시아가 서로를 보듬는 과정을 시리게 완성했더라는 소문이 들렸지만 직접 확인할 길이 없었다. 그렇게 한두 달이 지난 뒤에야 영화와 마주했다. 첫 장면부터 뼈가 시리고 명치가 뜨거웠다.

영화 속 지은이만큼은 아니지만 어릴 적 엄마에게 자주 맞았다. 동화 속 계모 캐릭터를 연상시킬 필요는 없다. 다만 젊은 나이에 결혼과 육아의 무게를 견뎌낼 마음의 근육이 당시의 엄마에겐 없었을 거라고 어른이 되고 나서 짐작할 뿐이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살갗으론 아니다. 학교에 가면 이런 내 속사정을 알고 조용히 포도맛 사탕 하나를 내미는 친구가 있었다. "이거 먹으면 아픈 게 금방 잊힌대."

멍투성이로 가게에 온 지은이를 처음 본 장후남은 사실 묻고픈 말이 많았을 것이다. "니 괜찮나?" "이를 우얄꼬" 같은 말. 장후남은 그러나 "니 추어탕 묵어봤나?"라는 말부터 건넨다. 그 칼칼하고 뜨끈한 위로를 들으며 난 포도맛 사탕을 떠올렸다. 반창고나 약보다 때론 달큰한 맛, 맵싸한 맛이 그렇게 우릴 구원한다.

오랜만에 용두동 추어탕집에 갔다. 제피가루를 듬뿍 뿌리고 다진 파를 잔뜩 넣은 국물을 목으로 밀어 넣었다. 영화 속 지은이는 추어탕 국물을 먹으며 새파랗게 얼었던 두려움이 녹아내리는 걸 느꼈을까. 국물이 얼큰한 줄만 알았더니 웬걸, 뒷맛이 뜻밖에도 사탕처럼 달큰했다.


조선일보 A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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