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빚 못 갚는 중소기업·자영업자·서민들로 붐비는 법원

입력 2018.12.14 03:18
빚에 몰린 기업·개인이 마지막으로 찾는 회생(回生) 법원들이 붐비고 있다고 한다. 채무를 조정해 주거나 아니면 파산 절차를 밟게 하는 법원이 바빠진 것은 경기 침체와 불황의 골이 깊어졌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회생 절차 건수는 2016년 이후 줄어들다 올 들어 증가세로 반전해 10월까지 작년 같은 기간보다 8% 늘었다. 회사를 살릴 가능성이 없다는 판정이 내려진 법인 파산은 668건으로 최근 7년 새 최다였다. 개인 회생 신청도 2014년 이후 줄던 것이 올 들어 다시 10% 넘게 늘었다.

22년간 운영한 회사를 살려달라고 회생 신청을 한 중소 건설사 대표는 회생 법원에서 "죽기 살기로 키운 회사인데 어떻게든 살리겠다"고 눈시울을 붉혔지만 회생 결정을 받지는 못했다. 경기 침체로 공사 미수금이 140억원으로 불어나고, 커지는 인건비·자재비 부담을 견디지 못했다. 10년 넘게 일한 직원 33명 중 27명을 내보냈지만, 회사 문을 다시 열기 어려울 수도 있다. 보험 영업사원으로 일하던 30대는 경기 침체로 보험 해약자가 늘어나면서 7000만원 빚을 지고 월급 170만원짜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면서 재기할 기회를 달라고 했다. 전세 대출, 생활비 대출로 불어난 1억5000만원 빚을 감당할 길이 없다는 30대 컴퓨터 수리기사, 갓난아기를 업고 온 20대 등이 법정을 가득 채우고 있다.

올해 1~7월 중 폐업한 자영업자가 83만명에 달한다. 연간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100만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올 상반기 중 창업한 프랜차이즈 본사보다 폐업한 곳이 많았다. 30여 년 만에 처음이다. 프랜차이즈 가맹점은 23만개가 넘고, 140만명의 일자리다. 본사가 줄어들면 퇴직자들의 마지막 디딤돌 역할을 해온 프랜차이즈 가맹점들은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서울 강남이나 경기도 판교·분당 등 노른자위 상권에서도 권리금을 포기하고 가게를 접겠다는 자영업자들이 늘고 있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식당 종업원과 편의점 아르바이트 같은 노동 약자들이 일자리에서 밀려났다. 인건비 부담을 못 견뎌 종업원과 알바를 내보낸 자영업자들이 "주 52시간 시대에 우리는 주 100시간 노동하며 살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20년 전 외환 위기 때는 대기업들이 먼저 무너졌는데 지금은 중소기업, 자영업자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몇몇 수출 대기업이 호황을 누리는 것을 보고 대통령은 "거시 지표는 견고한데 민생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여당 대표는 "지금까지 공직 생활하면서 경제가 잘 돌아간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거의 없다"고 했다. 엄살 부리지 말라는 것이다. 수출 대기업의 호조 덕분에 경제 성장률이 2%대 중반을 유지하고 있지만 서민 경제는 외환 위기 때보다 더 힘들다는 비명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 비명을 듣지 못하거나 안 들으면 정부가 아니다.


조선일보 A3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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