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번개 로고 붙으면 값이 서너배 뜁니다

도쿄=최보윤 기자
입력 2018.12.12 03:01

스트리트 패션의 제왕 후지와라 히로시

패션 거리로 소문난 도쿄 하라주쿠를 걷다 보니 '번개' 무늬 달린 점퍼와 가방을 든 이들이 곳곳에서 보였다. "후지와라상(さん)!" 20대 남녀가 몰려와 사진 한번 같이 찍자며 매달린 주인공은 후지와라 히로시(54). 1990년대 스트리트 패션 유행을 주도한 '하라주쿠의 대부(代父)'라는 남자다. 뉴욕타임스는 2000년대 초반 그를 '스트리트 패션의 신(神)'이라 소개했고, 포브스 등은 현재 스트리트 패션계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치는 이로 후지와라를 꼽았다.

그가 디자인한 번개 로고 하나만 달리면 제품 가격이 서너 배로 뛴다. 나이키, 롤렉스, 루이비통, 몽클레르, 바카라, 태그호이어 같은 유명 브랜드는 물론 기타리스트 에릭 클랩턴과 무라카미 다카시, 카우스 같은 아티스트와도 협업했다. 그는 요즘 글로벌 브랜드에서도 시도하는 드롭(drop·소량의 물건을 짧은 시간에 내놓는 것) 방식을 이미 20년 전 시도해 패션 업계를 놀라게 했다.

후지와라는 "나는 디자이너가 아닌 방해꾼(disturber)"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가장 일상적이라 생각하는 것이 변화를 줄 대상입니다. 편한 것은 패션이 아닙니다. 사람을 어딘가 불편하게 만들고 도전하게 해야 패션이지요. 솔직히 말해 나는 디자인 스케치도 단 한 번 해보지 않았습니다. 대신 사람들 생각을 디자인하는 콘셉트 디자인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9월 일본 유명 게임인 ‘포켓몬’과 협업한 ‘선더볼트 프로젝트’ 제품 중 하나인 까만 피카추를 안고 바라보는 후지와라 히로시. /후지와라 히로시 인스타그램
'일상을 독특하게 만든다'는 콘셉트가 담긴 그의 공간 프로젝트도 화제다. 수영장을 패션 매장으로 바꾼 더 풀 아오야마(2014), 주차장을 패션 매장으로 바꾼 더 파킹 긴자(2016), 편의점 모양이지만 패션 매장인 더 콘비니(2018) 등 손대는 대로 명소로 바꿔버렸다.

후지와라 히로시의 공식 직함은 음악 프로듀서다. 1980년대에 일본에 처음 힙합 뮤직을 전파한 유명 DJ 출신이다. 그룹 '빅뱅'의 지드래곤하고도 쉽게 친해진 이유다. 하지만 그에겐 '프래그먼트'라는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패션 디자이너라는 호칭이 더 많이 따라붙는다. "어린 시절 제게 일본은 너무 좁게 느껴졌습니다. 런던의 펑크 음악에 빠졌고, 20대 때 런던과 뉴욕을 누볐지요. 무일푼이었지만 좋아하는 음악이 있어 배고프지 않았습니다."

유명 팝아티스트 카우스와 후지와라 히로시가 협업해 선보인 티셔츠(왼쪽). 도쿄 긴자 소니파크 지하에 있는 편의점 콘셉트 숍 ‘더 콘비니’ 내부. 편의점 냉장고 같지만 음료수 캔 포장 안에 티셔츠 등이 들어 있다. /오리지널페이크·최보윤 기자

영국 록밴드 섹스 피스톨스를 만들고 키운 맬컴 매클래런, 스타일리스트였던 디자이너 비비안 웨스트우드를 비롯해 현재 최고의 스트리트 브랜드 중 하나로 꼽히는 스투시의 창업자 숀 스투시와도 친하다. "결과적으로 보기에 당대 대가들과 어울린 것처럼 보이지만, 그 당시에만 해도 그들은 '마이너리티'에서 톱이었지요. 마이너들끼리 어울리는 건 어렵지 않았어요. 사람들은 가끔 우리의 어려웠던 중간 과정은 생각하지 않고 유명인의 현재 위치만 부러워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가 '차세대 패션'이라 꼽는 건 바로 음식이다. 모든 것이 온라인과 디지털로 대체되는 요즘, 음식만이 오로지 경험으로 느낄 수 있는 인간성 보존 창구라고 했다. "디자인, 패션, 건축, 음악을 바탕으로 미각 시각 촉각 후각 등 모든 감각을 키워줄 수 있는 오페라 같은 것이 바로 식당이지요. '맛봐라, 느껴라, 들어라' 이것이 당신의 감각을 키워줄 키워드입니다."


조선일보 A23면
미래탐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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