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득한 후배 판사 심판대에 선 두 전직 대법관

오경묵 기자
입력 2018.12.06 13:38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연루된 혐의를 받는 박병대(61·사법연수원 12기), 고영한(63·11기) 전 대법관이 6일 영장실질심사 법정에 섰다. 두 사람은 피의자 신분으로 법정에 서 '범죄 혐의'를 놓고 까마득한 후배 판사의 심판을 받게 됐다.

/그래픽=박길우
◇16기수 후배 앞에 피의자로 선 두 전직 대법관
박 전 대법관은 이날 오전 10시 30분부터 서울중앙지법 서관 319호 법정에서 임민성(47·28기) 영장전담 부장판사 심리로 영장심사를 받았다. 박 전 대법관은 1999년 2월부터 1년 반가량 사법연수원 교수로 근무했다. 임 부장판사는 박 전 대법관이 사법연수원에 부임하기 직전인 1999년 1월 사법연수원을 수료했다. 스승과 제자로 만났을법한 차이다.

고 전 대법관의 영장실질심사는 서관 321호에서 명재권(51·27기) 영장전담 부장판사 심리로 열렸다. 명 부장판사는 1998년 수원지검 검사로 법조계에 발을 들였다. 당시 고 전 대법관은 서울지법 의정부지원(현 의정부지법) 부장판사였다. 명 부장판사가 판사로 전직한 2009년에는 고 전 대법관은 고법 부장판사급인 서울중앙지법 파산수석부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두 전직 대법관은 영장심사를 받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며 아무런 말도 남기지 않았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최고위직 법관을 지낸 분들이 피의자 신분으로 법원에 들어오는 데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며 "법원이 처한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했다.

두 전직 대법관은 영장실질심사를 마치면 서울구치소로 자리를 옮겨 수의를 입고서 후배 판사의 영장심사 결과를 기다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영장심사를 받았던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도 서울구치소에서 영장심사 결과를 기다렸다. 박·고 전 대법관에 대한 영장 발부 여부는 이르면 이날 밤늦게 결정된다.

◇임종헌→박병대·고영한→양승태 연결고리의 '핵심'
검찰은 양승태(70·사법연수원 2기)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부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조직적인 범죄 행위'로 보고 있다. 이날 영장실질심사를 받은 두 전직 대법관은 양 대법원장 재임 중 법원행정처장을 지냈다. 앞서 구속된 임종헌(59·16기)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상급자다. 검찰은 두 전직 대법관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해 임 전 차장에게 지시하거나 보고받는 등 개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임 전 차장의 공소장에 박 전 대법관은 30번, 고 전 대법관은 17번 범행을 공모한 것으로 적시돼있다.

박 전 대법관은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옛 통진당 의원 지위확인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댓글 사건 등 각종 재판에 부당하게 개입한 혐의를 받는다. 헌법재판소에서 파견근무하는 판사에게 헌재 내부 정보를 수집하도록 지시한 혐의와 각급 법원 공보관실 운영비로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도 받는다.

고 전 대법관은 '부산 스폰서 판사' 사건 당시 부산고등법원장에게 압력을 넣는 등 의혹을 무마하는 데 관여한 혐의를 받는다. 이른바 '정운호 게이트' 사건 당시 수사정보를 빼내고 영장 재판의 방향을 지시한 혐의도 있다. 두 전직 대법관은 이른바 '판사 블랙리스트' 문건을 만들도록 지시하고, 개별 법관들에게 이에 따라 인사상 불이익을 준 혐의도 받고 있다.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구속된다면 양 전 대법원장을 향한 검찰의 수사가 더욱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 한 원로 변호사는 "대법관은 어느 나라나 그 사회의 마지막 보루같은 역할을 해왔다. 죄를 지었다면 벌을 받는게 마땅하겠지만 그와 별개로 참 참담한 상황"이라며 "법치를 바로세우는 과정의 진통이 아니라 법치가 무너지는 계기가 될까봐 우려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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