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만 나올 것 같은 美 SF에 한국 김치·존댓말도 등장하죠

백수진 기자
입력 2018.12.06 03:01

2년 연속 '휴고상' 후보에 오른 한국계 미국인 이윤하 작가
"딸과 함께 '커피프린스' 보며 한국어 배우고 있어요"

"서양 여우들은 사람을 홀리지 않아요. 제 소설은 한국 여우의 영향을 받았죠. 한국 전래동화 속 여우는 믿을 만하지 못하고, 사람을 속이는 동물로 나오잖아요."

장편 '구미호 전략'과 '까마귀 책략'으로 지난해와 올해 2년 연속 휴고상 후보에 오른 한국계 미국인 이윤하(39·사진) 작가가 내한했다. 휴고상은 공상과학소설(SF) 분야의 최고 영예로 'SF계 노벨상'이라 불린다. 5일 대전 카이스트에서 'SF 문학 속 신화와 수학'을 주제로 강연한 이윤하는 "미국 SF에서 한국 문화는 드러난 적이 없어 내 소설에 한국적인 배경을 끌어오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미국 텍사스 출신으로 한국인 부모를 뒀다. 의사 아버지를 따라 유년 시절의 절반은 텍사스에서, 절반은 서울에서 보냈다. 그는 "정체성은 미국인에 더 가깝다"면서 "부모님은 내가 한 가지 언어를 능통하게 하길 바랐고 서양식 교육을 선택했다"고 했다. "서울에서 택시를 타면 한국인 외모로 어눌하게 한국말을 하니까 기사 아저씨한테 혼나곤 했어요. 이제야 딸과 한국 드라마 '커피 프린스'를 보면서 한국어를 조금씩 배우고 있습니다."

코넬대에서 수학을 전공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작가를 꿈꿨고, 역사를 전공하려 했지만 굶지 않기 위해 생각을 바꿨다"고 했다. "처음엔 수학이 싫었어요. 그런데 건축물이나 프랙털 구조(작은 부분이 전체와 비슷한 형태로 끝없이 되풀이되는 구조)들을 보면서 수학이 시각적으로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깨달았죠. 그동안 '수학이 예쁠 수도 있다'고는 아무도 안 알려줬거든요."

소설도 수학 지식을 바탕으로 장대한 서사가 펼쳐진다. 장편 '구미호 전략'은 우주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전쟁 이야기다. 무기는 역법(曆法). 달력을 바꾸면 물리학 법칙도 바뀌고, 사용 가능한 무기와 군사 전략도 변한다는 설정이다. "문화권에 따라 숫자 세는 법이 다르다는 사실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대부분 양손 손가락을 사용해 '10'을 기본 단위로 하지만, 발가락까지 합쳐서 20을 기본 단위로 하기도 하고 손가락 사이사이 공간을 세서 8을 기본으로 하는 지역도 있어요."

백인들만 등장할 것 같은 SF에 한국 문화가 어우러진다. 소설에서 사용하는 '미래 언어'도 존댓말이 있고 단·복수 구별이 없는 한국어와 닮았다. "SF 속 우주선에서는 죄다 감자와 빵만 먹는 게 불만이었어요. 저는 비빔밥을 먹고 자랐기 때문에 내 소설에선 우주선에서 김치를 먹게 했어요. 매운 피클이라고 표현했지만 모두 김치라는 걸 눈치챘겠죠."


조선일보 A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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