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그림으로 번역한 문학

정상혁 기자
입력 2018.12.06 03:01

'표인'으로 韓·中·日 무협 돌풍… 조선족 만화가 허선철씨

"만화는 일종의 문학이다."

조선족 만화가 허선철(34·작은 사진)씨는 말했고, 이것이 그가 펴낸 무협만화 '표인'의 흥행 이유로 해석되곤 한다. 최근 국내 출간된 이 만화는 중국에서만 지난 4월 발매 이후 30만부가 팔렸고 일본과 한국으로 수출되며 무협 돌풍의 중심에 섰다. "대사 하나, 무언(無言)의 연출에도 문학성이 필요하다. 가볍게 읽히고 곧 잊히는 만화도 많으나, 국경과 세월의 장벽을 초월하는 만화는 반드시 그렇다." 일본에서는 "중국 만화가 세계로 나아갈 희망을 봤다"는 극찬이 나왔고, 한국 무협만화 거장 문정후 역시 "이제 한·중·일 만화 언어가 큰 위화감이 없을 정도"라고 호평했다.

한국문학 번역가인 그에게 만화는 그림으로 번역한 문학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소설가 김애란의 단편 '성탄특선'을 번역해 2007년 한국문학번역원 중국어권 신인상을 받았다. "번역가 지인의 권유로 공모에 참여했다. 평소 한국 소설을 좋아했다. 특히 김애란은 데뷔작부터 챙겨 읽었다. 세대가 비슷해 공감이 컸다." 수나라 중원을 배경으로 정체불명의 고용 칼잡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그의 만화 역시 중언부언 없이 명료한 은유로 흡인한다. 허씨는 "충신을 도륙하는 수양제를 짐승을 찢어 삼키는 호랑이로, 이성을 잃은 그의 손아귀를 용으로 표현한 장면"을 그의 만화에 문학성이 발현된 단적인 예로 꼽았다.

무협만화 ‘표인’의 한 장면. 떠돌이 협객이 정체불명의 인물을 호송하며 겪는 모험담이다. /ⓒ2018 Biao ren, Xianzhe Xu(ULAB Co., Ltd.)

'표인'은 데뷔작이다. "원래 칭다오의 광고회사를 다녔다. 여느 20대처럼 깊은 회의감이 찾아왔고, 일생을 걸 직업을 고민하게 됐다." 사표를 냈다. 만화광이었던 그는 정규 미술 교육 없이 4년간 독학으로 만화에 매달렸다. "주인공 '도마'는 자유로운 남자다. 자유야말로 내 지향점 중 하나일 것이다. 불현듯 삿갓이 카우보이 모자와 비슷하게 느껴졌고, 동양의 무협과 서양의 서부극을 접목하게 됐다." 소셜미디어를 떠돌던 그의 만화는 입소문을 타고 정식 연재로 이어졌고, 지금은 어시스턴트 3명을 두고 작업한다. "중국에서 게임·드라마로 제작되고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화도 진행할 계획이다."

중국 옌볜 출신으로 한국어에 익숙한 그에게 한국 만화는 하나의 사표(師表)였다. "이두호 '임꺽정', 이현세 '공포의 외인구단' 같은 선 굵은 작품을 주로 읽었다. 무협만화 '열혈강호' '용비불패'뿐 아니라 한국 웹툰도 1세대 작가부터 챙겨봤다. 중국 만화 산업은 이제 시작이라고 본다. 인간적인, 깊이 있는 만화로 문화 장벽을 뛰어넘고 싶다."


조선일보 A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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