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의 서양고전산책] 2000년 만에 詩人 추방령을 취소한 로마 시의회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
입력 2018.12.06 03:10

로마 황제 손녀를 비방한 혐의로 추방된
시인 오비디우스에 대해 최근 로마 시의회 復權 결정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
작년 12월 이탈리아 로마시 시의회(市議會)는 각별한 사안을 다루었다. 서기 17년에 사망한 시인(詩人) 오비디우스의 추방령을 취소하는 것이었다. 로마제국을 확립한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그를 '위험한 시인'으로 지목해 추방한 것은 서기 8년의 일이었다. 오비디우스는 "어떤 시와 실수 때문에 추방당했다"고 푸념했는데, 그 시(詩)의 제목은 '사랑의 기술'이었다. '인생이 재미없는 건 사랑할 줄 몰라서니 맘껏 사랑하시라. 사랑의 기쁨을 누리려면 기술이 필요하니 이 책을 읽으시라.' 이런 내용의 시가 문제가 돼 그가 추방당한 데는 사실 복잡한 정치적 사정이 얽혀 있었다.

법과 권력으로 로마의 미풍양속을 확립하려 했던 아우구스투스에게 사생활이 복잡한 손녀 율리아는 내내 걸림돌이었다. 그런데다 그녀의 남편 아이밀리우스와 그 일당이 반역의 정치적 음모를 꾸미자 황제는 노발대발했다. 그 와중에 오비디우스는 사랑의 노래로 율리아의 욕망에 불을 지폈을 뿐만 아니라 괘씸한 정치적 음모에도 가담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그 때문에 그는 흑해 연안 토미스(지금의 루마니아 콘스탄차)로 추방된 것이다.

하지만 추방되기 직전에 오비디우스는 불후의 명작으로 꼽히는 '변신 이야기'를 내놓았다. 그것은 무질서한 '카오스'에서 시작해서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군림하던 시대까지를 노래한 대서사시였다. 그의 시는 추방의 화(禍)를 면하려고 봉헌한 '아우구스투스 찬양'처럼 보이기도 했다. 천상(天上)의 유피테르가 지상(地上)의 아우구스투스를 통해 '카오스(혼돈)에서 코스모스(질서)'를 확립하는 데에서 세계의 역사가 완결된다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우구스투스의 결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오비디우스의 시는 단순한 황제 찬양이 아니었다. 그의 시에서 신(神)들은 우주의 질서와 정의의 수호자라기보다는 아우구스투스가 표방하던 미풍양속(美風良俗)을 해치는 주범(主犯)처럼 나타나고 있어서다. 시에 등장한 하늘의 지배자 유피테르, 바다의 왕 넵투누스, 태양의 신 아폴로가 모두 그렇다. 이들은 인간 세계를 향해 거침없이 폭력을 행사하며 유린하고 무도하게 욕망을 채운다. 그것은 한 번 읽고 넘겨버릴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당대 권력의 폭력과 위선을 고발하는 날 선 은유와도 같았다.

일러스트=이철원

베를 잘 짜는 아라크네의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아라크네의 솜씨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고, 사람들의 칭찬이 자자했다. 그러자 지혜의 여신인 미네르바의 심기가 불편했다. 결국 둘 사이에 베 짜기 시합이 벌어졌다. 미네르바가 간접적으로 신에게 도전하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아라크네는 남신(男神)들이 여인들을 폭력적으로 취하는 장면들을 폭로하듯 수놓았다. 그 당돌함에 화가 난 미네르바는 아라크네의 베를 찢고 그녀를 거미로 만들었다. 이런 내용을 담은 '변신 이야기'를 아우구스투스가 읽었다면 아라크네의 베에 수놓아진 그림을 본 미네르바처럼 몹시 불편했을 것이다.

오비디우스는 또 다른 주인공 악타이온과 비슷한 처지였다. 사냥꾼 악타이온은 목욕하던 디아나 여신의 알몸을 우연히 보았다. 들킨 여신은 '감히 인간 따위가 내 몸을'하며 노여워했고 그에게 저주를 퍼부으며 물을 뿌렸다. 놀란 악타이온은 사슴으로 변했고, 자신의 사냥개 50여 마리에게 쫓기다 찢겨 죽었다. 악타이온처럼 오비디우스도 뜻하지 않게 아우구스투스 가문의 치부(恥部)를 보았다가 혹독한 추방을 당한 게 아닐까?

미네르바와 디아나는 물론 '변신 이야기'에 등장하는 모든 신은 인간들에게 거칠고 잔혹했다. 어쩌면 오비디우스는 아우구스투스가 건설한 '평화의 로마(Pax Romana)'에 숨겨진 당대의 혼란과 폭력성을 신화에 담아 고발하면서 진정한 질서를 새롭게 촉구한 것인지도 모른다. 불행하게도 오비디우스는 끝내 로마로 돌아오지 못하고 유배지에서 죽음을 맞았다.

그로부터 2000년 뒤에야 로마 시의회는 '오비디우스의 추방령이 부당했다'며 복권(復權)을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예술가의 표현의 자유는 억압되어서는 안 된다는 천명이었다.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는 여전히 현재적이다. 그 속에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도 야수만도 못한 짓을 서슴지 않는 우리 시대의 '갑질'들이 횡포를 부리는 폭력적인 신들의 모습으로 적나라하게 비쳐 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A3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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