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의 뉴스 읽기] "음란물 카르텔, 양진호는 몸통 중 하나… 어둠의 세력 더 있다"

박은주 논설위원
입력 2018.12.06 03:12

양진호 구속에도 불안한 여성들

박은주 논설위원

"2000년대 널리 퍼진 웹하드라는 게 대단히 수준 높은 기술력을 요하는 게 아니었어요. 유명대 출신이 아니어도 이 업계에서 성공한 사람이 많은 이유죠. 음란물에 진보, 보수가 어디 있겠어요. 이 일이 원래 '어둠의 자식들'인데. 그렇지만 유흥업·조폭과 진보 출신이 업계를 나눠 먹었다는 얘기가 있는 건 사실이에요." 정보통신부 산하기관에 오래 몸담았던 이는 여러차례 거절 끝에 몇 명의 이름을 거론했다.

지난 10월 말,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이라는 사람이 직원을 폭행하는 영상이 공개됐을 때, 많은 이는 그저 '갑질 졸부' 하나가 나왔다고 생각했다. 사건은 의외로 커졌다. '양진호가 웹하드 업체를 차명으로 소유하면서 일반인들 성행위 영상을 올려왔다'는 여성 단체 주장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양진호는 결국 구속됐다. 그런데도 여성들은 "양진호라는 '꼬리'의 갑질 사건만 떠들썩하게 처리할 것이다. 음란물 카르텔은 깨지지 않을것"이라고 걱정하고 있다. 그가 꼬리라면, 대체 '몸통'은 누구일까.

◇유포하는 자, 감시하는 자 '한 패'였다

"남자 친구와 찍은 성관계 영상이 인터넷에 돌아다닌다"며 한 여성이 민간 단체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한사성)'에 도움을 청했다. 이들이 인터넷을 뒤져보니, 파일이 무려 600건 돌아다니고 있었다. 포르노 사이트는 물론 특히 '웹하드'를 통해 대거 전파됐다. 이런 영상은 '일반인 영상'이라는 뜻의 은어를 달고, 호기심을 자극한다. 심지어 영상 유포 때문에 자살한 여성의 영상에는 '유작'이라는 꼬리표까지 붙는다.

웹하드는 개인이 저장 장치를 구매할 필요 없이 '공중 저장고'를 이용하는 이치다. 이 업태가 생길 때부터 각종 저작권 침해 영화, 음악 등과 몰카, 성인 방송, 녹화 영상 등 불법 음란 영상이 마구 올라왔다. 사회문제가 됐다. 일부 업체는 저작권 협약 등 자정 활동을 하면서, 뒤로는 '저작권자'가 없는 불법 영상을 찾아 올렸다. 특히나 '일반인 영상'은 클릭 수가 연출된 포르노에 비해 10배가량 많아 비싼 광고가 붙는다.

불법 영상은 개인이 올리기도 하지만, 널리 유포하는 건 '헤비 업로더(직업적으로 영상을 올리는 사람)'들이다. 이 업계의 '거물들' 중 한 명인 양진호의 회사는 이런 사람들에게 뒷돈을 주거나, 직원을 독려해 올리는 방식을 써온 것으로 의심받는다. '몇 달 만에 6000만원을 벌었다'는 전설적 헤비 업로더도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민간인' 성관계 영상이 가장 빨리 유포되고, 가장 많이 보는 나라가 한국"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국 여성의 실제 성관계 영상을 부르는 '코리안 홈메이드 포르노'라는 영어 단어까지 생겼다. 한사성은 "헤비 업로더, 웹하드 업체, 그리고 그들을 감시할 필터링 업체까지 카르텔로 묶여서 돌아가는 체계적 산업 구조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렵다"고 말한다.

◇정책자들은 기술에, 사람에게 속는다

이 지경이 된 데는 이유가 있다. 우선, 어떤 사람들은 '그런 세상'이 존재하는 줄도 모른다. 주로 중장년층이고, 이 사회 정책 결정권자들이다. 초등학생이 '옆집 누나' 영상을 보고 있는데 "성인이 보는 포르노 영화를 어찌 막나" 하고 있다. 둘째는 플랫폼의 이동. 음란물 사이트, 웹하드에 대한 압박이 커지자, 동영상 SNS인 '텀블러', 텔레그램 메신저로 플랫폼을 갈아탄 공급자가 많다.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IT에 대한 무지

지난해 7월, 문재인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음란물을 실시간으로 감지해 자동으로 차단하는 인공지능(AI) 기술이 개발됐다는 기사를 봤다. 98%의 적중률을 보였다는데 이런 신기술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얼마 후, 이 업체 경영자가 진보 매체와 인터뷰했다. "대통령이 이걸 안다는 사실에 나 역시도 놀랐다. 사실 업계 관계자가 아니면 알기 힘든 기술"이라고 대통령을 추켜세웠다. 그는 양진호가 실소유주였던 '뮤레카' 경영진이었다.

이 상황을 두고 여러 분석이 나온다. "대통령이 여성 몰카 추방에 앞장서면서 지난해 여성가족부가 국가 예산으로 필터링 기술을 개발한다고 발표했다. 웹하드 업계의 로비를 받은 이들이 '뮤레카가 이미 좋은 신기술을 갖고 있는데, 왜 정부가 이중으로 돈을 들이냐'는 여론을 형성했다. 사실 그 기술이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다. 업계가 공적 자금까지 빨아먹으려 한 건 아닌지 의심이 든다."

"웹하드 업체들이 통제할 수 없는 필터링 기술이 개발될까 봐 일부러 '뮤레카 기술 마케팅'을 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감옥살이만 전문으로 하는 '전과 25범' 웹하드 업체 사장도 있다"라는 설명이다.

◇"진보가 웹하드 업계 뒤 봐준다"는 의심

"웹하드가 '현금 장사'라 보수 쪽 인물이 들어오려고 했는데, 왕따당해서 실패했다는 얘기가 있어요." "이상한 게요, 이 문제를 파다 보면 자꾸 진보 쪽 이름이 나와요." 일부 IT 전문가와 여성 단체는 웹하드 업계의 뒷배 주체로 '진보 진영'을 의심한다. 웹하드 업체가 필터링 업체와 업무 제휴를 하면 '자율 규제' 대상이다. 정부 간섭을 안 받는다는 얘기다. 관련 법을 정비한 것이 운동권 출신 의원이었다. 운동권 거물이 웹하드 업체 '1세대'였다는 점도 음모론을 키우는 대목이다. '양진호 사람'이었던 김모씨를 두고도 말이 나온다. "김씨가 과거 노동계 인맥을 이용해 정·관계, 법조계 로비를 했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그가 검찰 수사를 받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웹하드 업계 이익을 대변하는 한국디지털네트워크협회(DCNA)에도 여권과 밀접한 인물이 있다는 주장이 끊이질 않는다. 과거 이 단체 사무국장, 협회장을 지낸 이모씨는 지난 6·13 지방선거 때 민주당 광역단체장 선거 캠프에서 일했다. "7~8명으로 압축되는 국내 웹하드 업체 50곳 실소유주 중에 운동권 출신 인사가 있다"는 증언도 꾸준히 나온다. 당사자들은 "음란물 유통에는 관련이 없다"고 했다.

일부에서는 "양진호가 감옥에 가도, 다른 웹하드 업체와 필터링 업계 영업에는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필터링 업체는 '원죄' 많은 웹하드 업계의 수명을 연장하는 '인공 심장' 같은 것이었다. 이 업체들이 범죄의 한 축이었다는 게 증명되면, 웹하드 업계는 '사망 선고'를 받아야 한다. "우리 사회 힘 있는 집단이 결코 이걸 방치할 리 없다"는 게 여성들의 의심이다. 이게 과연 호들갑이나 기우에 불과한 것일까. 국가가 답할 차례다.

스마트폰이 일상인 세대… 유치원생도 음란물에 노출

스마트폰을 '배터리 먹고 사는 친구'로 인식하고 자라온 영상 세대들은 '몰카' '리벤지 포르노' 등 각종 음란물에도 빨리 노출된다.

"과거에는 불량 학생들이 음란물을 학교에 갖고 와 퍼뜨렸죠. 지금은 똑똑한 학생일수록 음란물 접촉이 빠릅니다. 스마트폰으로 검색해서 원하는 영상을 손에 넣는 적극적 활동이기 때문입니다. 외국 포르노물보다 훨씬 현실감 있는 영상을 손에 넣은 아이들은 친구들과 공유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초등 고학년 중 '그런 영상을 본 적이 없다'는 아이가 있을 수는 있습니다. 대단한 절제력을 가진 아이, 아니면 '왕따'일 확률이 있습니다. 물론 여학생들도 그런 영상을 보고요."

각종 인터넷 중독 현상을 연구해온 어기준 한국컴퓨터생활연구소장은 "심지어 유치원생까지 이런 영상을 보고, 어린이집 낮잠 시간에 여아의 몸에 올라가 행위를 흉내 내다 상담을 받게 된 아이도 있었다"고 했다.

음란물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지만, 최근 들불처럼 번진 '한국 여성 성관계 영상'은 '추종 욕구'를 더 강하게 자극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영상을 올리는 남성에게 "작가님 존경한다" "형님 멋지다" 같은 칭송이 따라붙는다. 중학생들이 어른 흉내를 내며 이런 영상을 찍기도 하는데, 연령대는 점점 더 낮아지고 있다. 찍는 행위를 100% 막기란 불가능하다는 게 대체적 의견이다. 성 인지 교육 등 다양한 접근법은 물론, 웹하드 규제 등 '원점 타격'하는 것이 그나마 현실적으로 '대량 확산'을 막는 길이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하고 있다.


조선일보 A3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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