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원합니다, 책방지기 꿈꾸는 청춘을

곽아람 기자
입력 2018.12.05 03:01

- 동네서점 창업기, 잔잔한 인기
초기 자본 적게 드는 독립서점… 젊은 층의 창업 아이템으로 각광

'난 준비되지 않은 책방지기였다. 그런데 운영하다 보니 재미가 붙었고, 책임감도 전 회사에 다닐 때보다 많이 느끼게 되었고, 잘하고 싶은 마음도 소진되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서울 창전동에서 책방 '이후북스'를 운영하는 황부농(36)씨는 지난 5월 낸 책 '굶어죽지 않으면 다행인 이후북스 책방일기'에 이렇게 썼다. 멀티플렉스 영사 기사로 일하던 황씨가 직장을 그만두고 신촌에 10평(33㎡) 규모의 서점을 연 건 2016년 3월. 그는 "내 공간을 하나 꾸리고 싶었고, 책을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레 서점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책방을 열면서 매일의 소회를 일기로 썼고, 그 일기가 담긴 블로그가 출판사 편집자 눈에 띄었다. 독자 반응도 좋다. 황씨의 책을 낸 알마출판사 박승기 편집자는 "책방에 대한 저자의 고집, 신념 등이 독자들 마음을 움직여 2쇄를 찍었다"고 했다.

서울 창전동 이후북스에서 황부농씨가 창업 과정을 담은 자신의 책을 들고 서 있는 모습(왼쪽). 이미지 크게보기
서울 창전동 이후북스에서 황부농씨가 창업 과정을 담은 자신의 책을 들고 서 있는 모습(왼쪽). 동네 책방이 늘면서 서점 주인들이 펴낸 책방 이야기도 사랑받고 있다. 가운데는 퇴사 후 서울 합정동에 책방을 낸 김소영 전 MBC 아나운서. 오른쪽 사진은 손님에게 책을 처방 중인 정지혜(왼쪽) 사적인서점 대표. 현재는 이전을 앞두고 잠시 쉬는 중이다. /남강호 기자·위즈덤하우스·유유
동네 서점 주인들의 창업기가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고 있다. 책 좋아하는 청춘들이 '회사를 그만둔다→서점을 연다→서점 이야기로 책을 낸다'는 '제2의 인생' 공식을 꿈꾸며 꾸준히 책방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에 따르면 2017년 전국 독립 서점 수는 301곳. 서점을 겸하는 북카페 수까지 합치면 더 많을 것으로 출판계는 예상한다. 출판평론가 한미화씨는 "책방이 생각보다 초기 자본이 많이 들지 않는 데다, 자기 좋아하는 건 하고 보는 요즘 청춘의 특성과 퇴사 열풍이 겹쳐 독립 책방이 꾸준히 늘고 있다"면서 "서점 대표가 하나의 브랜드인 동네 서점 특성상 수익 창출을 위해 글 쓰거나 강의하면서 시너지를 만드는데, 그 결과 책방 창업기가 많이 나오는 것 같다"고 했다.

'책을 전하는 방식에는 여러 모습이 있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가장 자신 있는 방식은 독자와 눈을 맞추고 한 권의 책을 직접 전하는 것이었다. 지금이야말로 용기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정지혜(30) 사적인서점 대표는 자신만의 책방을 내기 위한 결심의 순간을 이렇게 썼다. 그가 펴낸 '사적인 서점이지만 공공연하게 한 사람만을 위한 서점'에는 읽어본 책이 아니면 팔지 않겠다는 결심, 손님 개개인을 위한 맞춤형 책 서비스인 '책 처방'을 하기까지의 여정이 담겼다. 이 색다름이 출판사의 흥미를 끌었다. 조성웅 유유 대표는 "손님에게 '책 처방'을 해주는 사적인서점의 행보가 독특하게 느껴졌다"고 했다.

이 밖에 지난해 퇴사 후 서울 합정동에 '당인리책발전소'를 연 김소영(31) 전 MBC 아나운서의 '진작 할 걸 그랬어'(위즈덤하우스), 제주도에서 '책방 무사'를 운영하는 가수 요조(37)의 '오늘도, 무사'(북노마드), 김종현(35) 퇴근길책한잔 대표의 '한 번 까불어 보겠습니다'(달) 등이 올해 서점가에 쏟아졌다.

창업기를 넘어서 폐업기도 나왔다. 서울 염리동에서 여행책방 '일단 멈춤'을 운영했던 송은정(32)씨의 '오늘 책방을 닫았습니다'(효형출판). "2016년 8월 31일 수요일, 여행책방 일단멈춤이 문을 닫았다. …나는 실패한 것일까." 2년간 운영한 서점의 폐업을 알리는 담담한 문장으로 시작하는 책은 "막상 공간을 열고 보니 무엇 하나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는 저자의 고백과 함께 낭만을 걷어낸 1인 자영업자로서의 민낯을 보여준다. 한 출판인은 "독립 서점과 거래해 보면 처음엔 의욕적이나 차차 주문이 줄어든다. 겉으로는 멋져 보이지만 매달 월세 걱정에 잠 못 이루는 요즘 청춘들의 서글픈 창업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면서 "2년의 건물 보증금 기간이 끝나고 나면 문 닫는 일이 허다하다. 현재 독립 책방의 증가는 일종의 과도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A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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