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보엠'의 미미로 찾아온 러시아 수퍼 소프라노

김경은 기자
입력 2018.12.05 03:01

이번이 네 번째 미미
조용히 등장했다가 조용히 사라지는 그 고요함을 노래로…

"지난해에만 다섯 작품을 했어요. 봄에 베로나에서 '캐플렛가(家)와 몬테규가'의 줄리엣을 불렀고, '청교도'에 투입돼 광기에 사로잡힌 엘비라를 연기했죠. 한여름, 아비뇽에서 마주한 작품은 '천일의 앤'을 주인공으로 한 사극 '안나 볼레나'. 가을에 바르셀로나에서 '랭스로의 여행'을 하고, '마농'으로 겨울을 났어요. 아니나 다를까 사고를 냈죠. 엘비라의 변주곡을 부르는 데에서 줄리에타의 카덴차를 내뱉었으니. 아, 망했다!"

다달이 다른 대륙을 돌며 배역에 몰입하는 이리나 룽구. "노래로 감동을 줄 수만 있다면 폭풍우에도 비틀대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장련성 객원기자
풍성한 밤색 머리칼을 절레절레 흔들며 이리나 룽구(Lungu·38)가 멋쩍게 웃었다. 숨기고 싶기 마련인 '실수'를 만난 지 10분도 안 돼 툭 터놓는 그는 옛 소련 몰도바에서 태어나 치열한 경쟁을 뚫고 톱(top)이 된 러시아의 수퍼 소프라노. 까다로운 기교와 폭넓은 음역대가 있어야 가능한 벨 칸토 작품들을 두루 해내며 뉴욕 메트로폴리탄, 밀라노 라 스칼라, 런던 로열 오페라하우스 등 세계 최고 무대를 휩쓸었다. 플라시도 도밍고, 레오 누치와 듀엣 공연도 할 예정인 그가 이달 서울을 적신다. 국립오페라단이 연말을 맞아 내놓은 푸치니 오페라 '라 보엠'에서 가난한 처녀 미미를 맡았다. "이번이 네 번째 미미"라는 그는 "처음부터 나와 죽이 맞는 인물은 아니었지만 조용히 등장했다가 조용히 사라져간다는 점에서 한결같은 아름다움이 있다. 그 고요함을 노래로 표현할 것"이라고 했다.

오페라라는 장르가 있는지도 몰랐던 그가 자신의 젊음을 오페라로 불사르게 된 계기는 록밴드 퀸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가 만들어줬다. "바르셀로나올림픽을 앞두고 기념 노래를 부르는 머큐리를 보려고 TV를 틀었는데, 옆에서 함께 노래하는 여인을 보고 첫눈에 반했지요." 전설의 소프라노 몽세라 카바예였다.

2003년 라 스칼라에서 리카르도 무티가 지휘하는 '모세와 파라오'의 아나이스로 데뷔했다. 2006년 로린 마젤이 지휘하는 '라 트라비아타'에서 비올레타를 제대로 소화하면서 날개를 달았다. "성악가가 무대에서 제어할 수 있는 건 자신의 목소리와 연기뿐. 그래서 끊임없이 자신의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해야 해요. 배역을 맡을 때마다 원전과 음반을 깊이 공부하지 않으면 역할을 마주하기 힘들죠."

그는 "다른 사람의 충고나 비판을 거슬려 하게 될까 봐 두렵다"고도 했다. 지금도 틈날 때마다 은사를 찾아가 서너 시간씩 레슨 받는 이유다. 룽구는 "세상 모든 인간 군상(群像)을 내 목소리와 연기로 그려내는 게 일생의 목표"라며 "아직도 남은 역할이 많은 지금이 좋다"고 했다.

라 보엠=6~9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조선일보 A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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