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매립지서 꽃피운 '아트 서커스'

몬트리올(캐나다)=양승주 기자
입력 2018.12.05 03:01 수정 2018.12.05 18:00

'태양의 서커스' 캐나다 본사 르포

캐나다 몬트리올 시내에서 차로 20분쯤 달리자 눈 덮인 나무들 가득한 거대 공원이 나타났다. 세계 최고의 아트 서커스로 불리는 '태양의 서커스' 본사가 위치한 생미셸 지역. 공원 안엔 1500여명 직원이 상주하는 건물을 비롯해 단원 숙소와 국립 서커스 학교, 서커스 전용 원형 공연장 등 4개 건물이 모여 있었다. 올해 국내 공연계 최고 흥행작인 '쿠자'를 만들어낸, '서커스 시티'였다.

국내에서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태양의 서커스‘쿠자’공연 중 하나인‘컨토션’. 곡예사 세 명이 극적인 유연성과 균형 감각을 뽐낸다. /마스트엔터테인먼트
지난달 3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서 막을 올린 '쿠자'는 개막 3주 만에 예매 관객 12만 명을 돌파했다. 순진한 소년 '이노센트'가 괴짜 마술사가 만든 세상을 여행한다는 줄거리인 '쿠자'는 완벽에 가까운 곡예와 화려한 볼거리로 전 세계 관람객을 다시 한 번 사로잡았다. 태양의 서커스가 만든 15번째 작품. 거리 예술가 기 랄리베르테(59)가 1984년 창단한 태양의 서커스는 세계 450여개 도시에서 2억 명에 가까운 관객을 끌어모으며 역사상 가장 성공한 공연 사업이 됐다.

◇세계 최고의 공연 만드는 단원과 장인들

트레이닝 스튜디오에선 중국 공연을 앞둔 단원들이 끈을 이용한 공중 묘기 연습에 한창이었다. 농담을 주고받다가도 한 명이 공중으로 떠오르면 팽팽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50여국에서 온 단원들은 이곳에서 매일 기술과 연기 지도를 받는다. 홍보 담당 쥐스틴 뒤푸르는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비롯한 세계 최고 기량의 단원들을 선발하지만, 표정 연기와 쇼맨십 등 공연에 필요한 모든 것을 새로 가르쳐야 무대에 설 수 있다"고 했다.

의상실·소품실 등이 모여 있는 워크숍 건물은 마치 거대한 산업단지를 방불케 했다. 수십 명의 직원이 헤드폰을 끼고 재봉틀 앞에서 의상 작업에 몰두했다. 태양의 서커스는 한 공연당 의상 100~200벌, 모자와 가발, 신발 등을 포함하면 1000개 가까운 제품이 투입된다. 몇몇 기성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직원들이 직접 만든다. 바네사 라퐁드 '쿠자' 의상 담당 매니저는 "의상 제작 과정이 까다로워 캐나다 전역에서 가장 뛰어난 장인들을 선발한다"며 "태양의 서커스 의상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직원들에겐 엄청난 자부심"이라고 말했다.

◇쓰레기 매립지에서 서커스의 산실로

'서커스 시티'의 기원은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태양의 서커스가 전 세계에서 흥행하자 랄리베르테는 생미셸에 본사 건물을 짓기로 결정했다. 석회석 채석장이었던 생미셸은 광산업이 쇠퇴한 1980년대 이후 몬트리올 전역의 쓰레기를 매립하는 곳이 됐다.

태양의 서커스 본사가 있는 캐나다 몬트리올 생미셸 지역의 과거(왼쪽)와 현재. /라 토후
아낙 쿠튀르 지역관계팀장은 "직원들 반대를 무릅쓰고 랄리베르테가 이 지역을 고집한 건 변화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다"고 했다. "그는 아코디언 연주와 불 먹는 묘기를 하며 거리를 떠돌던 자신이 그러했듯, 서커스를 통해 많은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키고 싶어 했어요. 태양의 서커스를 통해 '몬트리올의 쓰레기장'이라는 생미셸의 이미지를 완전히 바꾸고 싶어 했죠."

2004년엔 '라 토후'라는 사회적 기업을 만들었다. 라 토후는 서커스 전용 공연장을 지어 매년 90여개 서커스 공연과 400여개의 행사를 유치, 2004년 이후 15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을 끌어들였다. 수익은 생미셸 지역 공원화 사업과 주민들의 문화·일자리 사업에 투자한다. 학교를 중퇴한 청년들을 우선 고용하는 일자리 프로그램이 특히 유명하다. 라 토후의 스테판 라부아 감독은 "이 지역 청년들은 불투명한 미래와 열등감에 시달리던 그들의 부모 세대와 완전히 다르다"며 "태양의 서커스가 이들에게 심어준 것은 '나도, 우리 지역도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A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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