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숯불 뚝배기, 위장을 뜨겁게 훑어내리는 시원함이란…

정동현
입력 2018.12.01 03:00

[정동현의 pickㅣ된장찌개 편] 서울 양평동 '또순이네'

숯불 위에서 펄펄 끓는 ‘또순이네’ 된장찌개는 용암처럼 김을 내뿜는다. 봄날의 냉이는 없던 애국심도 끌어내는 원초적 매력이 있다./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고기를 구워먹으면 된장찌개가 딸려 오는 시대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조상의 지혜는 틀리는 법이 없다. 5000원도 안 되는 된장찌개에 들어간 건더기는 사진을 공개하지 않는 소개팅처럼 수상할 뿐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싼 된장찌개가 시장을 장악했다. 동시에 돈 내고 사먹을 만한 된장찌개는 드물어졌다. 사람들은 된장찌개에 여간해서 돈을 쓰지 않는다. 어느새 커피 한 잔 값도 안 되는 된장찌개만이 횡행하는 나라가 됐다.

시장의 힘은 무섭다. 제값을 받지 못하니 된장찌개를 잘한다는 집도 사라졌다. 이래 놓고 된장찌개가 한국 발효 전통의 정수니, 대표 음식이니 자화자찬에 화가 나기는커녕 자괴감이 든다. 그러나 컬링 대표팀처럼 척박한 환경에서 홀로 오뚝이처럼 일어나는 한국적 특수성엔 된장찌개도 예외가 없다.

값만 따지면 서울에서 으뜸이다. 그렇다고 호텔처럼 인테리어가 끝내주지도 않는다. 식당보다는 옛 시골 토방에 가깝다. 더구나 점심 시간이면 좁은 테이블에 앉아 어깨를 부딪히며 이름 모를 누군가와 겸상해야 한다. 된장찌개 한 그릇에 치러야 하는 값이 1만원인 이곳은 서울 중구 다동 '산불등심'이다. 값을 보면 볼멘소리 나올 법하다. 하지만 일단 맛을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보통 순식간에 후루룩 끓여 내는 여느 집과 달리 이곳 된장찌개는 은근한 불에서 오래 익힌 종류다.

저녁에는 등심도 팔지만 점심 메뉴는 하나뿐이다. 앉자마자 반찬이 깔린다. 간간한 생선조림과 담담한 달걀찜을 야금야금 먹다 보면 인원수대로 뚝배기가 놓인다. 된장찌개 한 숟가락 푹 담아 입에 넣으면 처음 느껴지는 것은 온도다. 뜨겁지가 않다. 대충 따져보면 섭씨 80도 언저리다. 덕분에 바쁜 점심 시간 된장찌개 식히느라 기다릴 필요가 없다. 맛이 열기에 왜곡되지 않고 정확하게 느껴진다. 서양의 스튜처럼 농도가 짙고 달다. 아낌없이 넣은 소고기와 푹 익어 숟가락이 푹푹 들어가는 무, 그리고 손가락 마디 크기로 양껏 썰어 넣은 파가 맛의 비결이다. 무엇보다 많은 양을 한꺼번에 오래 끓이니 일반 가정집에서는 그 맛을 따라 하기 힘들다. 어쩌겠나. 비싸다는 불평이 나오더라도 대체 불가능한 맛이요, 된장찌개다.

한강 다리를 건너 영등포구 양평동으로 가면 된장찌개로 건물을 올린 집이 있다. 옥호는 '또순이네'. 잡맛 하나 없이 간간이 양념한 토시살을 숯불에 구워 먹는 인파를 보면 저 한강 너머까지 하얀 연기가 퍼질 것 같다. 그만큼 큰 가게다. 그 큰 건물에 사람이 가득 몰린다. 이 육중한 식당은 뜨거운 된장찌개를 내놓는데 그 방식이 화끈하다 못해 경외심을 갖게 한다. 주방 이모는 펄펄 끓는 된장찌개 뚝배기를 맨손으로 잡아 숯불 위에 그대로 올려놓는다. 하얗게 빛나는 숯불 위에 올라간 뚝배기, 그리고 용암처럼 김을 내뿜는 된장찌개. 이게 끝이 아니다. 여름에는 부추, 봄에는 냉이를 한 움큼 넣어 끓여준다. 특히 봄날의 냉이에는 없던 애국심도 끌어내는 원초적 매력이 있다. 국물을 훌훌 불어가며 먹어보면 단맛은 적고 위장을 뜨겁게 훑어내리는 시원함과 붉은 흙을 닮은 구수한 정취는 크다. 짭짤한 고추장아찌 한 입 먹고 밥을 비벼 먹는다. 입가심으로 구수한 차를 한 잔 마신다. 어차피 갈 곳은 아파트요 빌딩이지만,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절대는 실개천'을 절로 흥얼거리게 된다. 잘 끓인 된장찌개가 이렇게 무섭다.

조선일보 B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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