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달성 소구레, 담양 암뽕, 통영 시락… 지역마다 별별국밥 다있네

대구·담양·통영·천안=강정미 기자
입력 2018.12.01 03:00

대한민국 국밥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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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모락모락 나는 뜨끈한 국밥 한 그릇이면 추위와 시름도 잊는다. 경남 통영 서호시장 사람들의 허기와 한기를 달래주던 ‘원조시락국’의 시락국밥(왼쪽)과 대구만의 얼큰시원한 맛을 느낄 수 있는 ‘국일따로국밥’의 따로국밥./이신영·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하얀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밥의 온기가 간절해지는 계절이다. 겨울이면 유난히 더 생각나는 한국인의 솔(soul)푸드, 국밥을 찾아 전국 구석구석을 누볐다. 부산 '돼지국밥', 전주 '콩나물국밥'처럼 전국구 스타는 아니지만 지역마다 오랜 세월 색다른 재료와 레시피로 사랑받는 다양한 국밥이 기다린다. '아무튼, 주말'과 함께 떠나는 대한민국 국밥로드!

소구레? 암뽕? 이색 재료 별별국밥

"국밥 하나 주이소." 대구 달성군 현풍장에서 국밥은 곧 '소구레국밥'으로 통한다. 시장 한쪽 골목엔 소구레국밥 파는 식당이 모여 있다. 매달 5일과 10일, 오일장 서는 날이면 가장 붐비는 곳이 국밥 골목이다. 소구레는 수구레의 경상도 사투리. 소의 가죽과 살코기 사이의 아교질을 말한다. 고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비계도 아닌 부위지만 콜라겐이 많아 쫄깃하고 씹을수록 고소한 게 별미다. 소 한 마리당 2㎏ 정도 나오는데 질기고 손질하기 힘들어 버려지던 부위이기도 했다. 1980년대까지 우시장이 있던 현풍장에선 수구레를 비교적 쉽고 저렴하게 구할 수 있었다. 소구레국밥은 장날 주머니 사정 가벼운 사람도 부담없이 먹을 수 있는 든든한 한 끼였다.

대구 달성군 ‘현대식당’의 소구레국밥.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현풍장을 찾은 날 현대식당에선 수구레 손질이 한창이었다. 수십㎏의 수구레를 손으로 씻고 자르는 과정이 반복됐다. 현풍장에서 40년간 국밥 장사를 해온 이상선(76)씨는 "수구레는 손질을 잘못하면 질겨지고 누린내가 나서 여러 번 씻어서 깨끗이 손질해야 한다"고 했다. 손질 끝난 수구레는 가마솥에 선지와 콩나물, 파, 고춧가루 등을 넣고 푹 끓인다. '소구레국밥' 한 그릇을 주문했다. 얼핏 선지국밥, 소고기국밥과 비슷한 것 같지만 수구레의 존재감은 남달랐다. 쫀득쫀득. 씹을수록 고소하고 부드럽다.

전남 담양 ‘전통창평국밥’의 암뽕순대국밥. /강정미 기자
전남 담양 창평시장엔 국밥거리가 있다. 이곳에서 국밥은 곧 '내장국밥'이다. 도축장이 있던 시장에선 구하기 쉬운 돼지 부산물로 국밥을 만들곤 했다. 돼지 내장 중에서도 별미로 꼽히는 게 있으니 '새끼보'다. 암퇘지의 자궁인데 애기보라고도 한다. 전라남도에선 새끼보로 순대를 만들어 먹었는데 '암뽕순대'다. 새끼보로 순대를 만들기란 쉽지 않다. 실제론 암퇘지 막창으로 순대를 만들고 새끼보 수육과 함께 먹는다. 막창으로 만든 암뽕순대는 쫄깃한 식감이 으뜸. 꼬들꼬들하면서 특유의 콤콤한 냄새가 남아 있는 새끼보 수육은 호불호가 나뉘는 편이다. 전라도에서 순대는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게 진리다.

국밥거리에서 2대째 영업 중인 전통창평국밥에서 '암뽕순대국밥'과 '새끼보국밥'을 맛봤다. 매일 아침 돼지뼈와 멸치, 다시마 등을 넣어 육수를 만든다는 맑고 시원한 국물이 내장 특유의 냄새와 기름기를 잡는다.

시장 명물이 된 국밥

경남 통영 서호시장의 하루는 이른 새벽 시작한다. 오전 2시부터 배에서 생선을 내리고 장사를 시작하는 어시장 사람들의 아침을 든든하게 채워준 건 '시락국밥'이다. 시락국은 시래깃국의 경상도 사투리. 통영에선 장어나 잡어로 육수를 내고 시래깃국을 끓인다. 생선이 흔한 곳이니 특별하다 할 것 없지만 누구보다 하루를 일찍 시작한 어시장 사람들의 허기와 한기를 달래는 데엔 시락국밥만 한 게 없었다. 서울에서 온 직장인 최진리(32)씨는 "소매물도 가는 길에 아침을 먹으러 왔는데 시장의 활기도 느끼고 저렴하지만 푸짐하게 한 끼를 즐겼다"고 했다.

원조시락국은 서호시장 시락국밥집 중에서도 원조 격이다. 50년이 넘도록 메뉴는 '시락국밥' 하나. 장어 머리와 뼈로 낸 육수로 시락국을 끓인다. 손님끼리 마주 보고 앉는 바 형식 테이블 중앙에 김치, 멸치볶음, 콩자반, 파래무침 등 10여 가지 반찬이 뷔페식으로 진열돼 있다. 장재순(65) 대표는 "가게가 좁으니 최대한 사람이 많이 앉을 수 있도록 아이디어를 냈고 반찬도 입맛 따라 푸짐하게 골라 먹을 수 있도록 만든 것"이라고 했다.

천안 병천장의 명물인 병천순대로 만든 ‘청화집’ 의 순대국밥/강정미 기자
병천순대는 충남 천안 병천장의 명물. 아우내라고도 불리는 병천은 경상도와 서울을 잇는 길목으로 교통의 요지였고 조선시대부터 큰 장이 열렸다. 장날이면 가마솥을 걸고 순대국밥을 파는 국밥집이 늘어서곤 했다. 병천순대가 전국적으로 알려진 건 1960년대 인근에 햄 공장이 들어서면서부터. 햄을 만들고 남은 돼지 내장으로 순대를 만드는 시장 상인이 늘면서 순대국밥집이 하나둘 문을 열고 순대 거리가 형성됐다. 병천순대는 돼지 내장 중에서도 소창을 사용해 크기가 작고 누린내가 적은 게 특징. 당면을 아예 쓰지 않거나 적게 넣고 선지와 찹쌀, 야채로 소를 채워 담백하다. 1㎞에 이르는 아우내순대길에 20여 곳의 순대 전문점이 모여 있다. 매달 1, 6일 오일장이 열리는 날이 아니라도 인파로 붐빈다. 청화집은 1968년부터 3대째 지금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가장 오래된 순대국밥집. 사골로 끓인 진하고 깔끔한 국물이 돋보이는 '순대국밥'엔 병천순대와 돼지뽈살이 푸짐하게 들어 있다.

알고 먹으면 더 맛있는 지역 국밥

함경도 음식인 '가리국밥'은 좀처럼 접하기 힘든 이북 음식이다. '가리'는 갈비의 함경도 사투리로 갈비로 만든 국밥을 말하는데, 함경도에서도 함흥의 부유한 집안에서 먹던 귀한 음식이다. 가리국밥은 갈비와 양지로 진한 육수를 내고 밥 위에 손으로 찢은 양짓살과 데친 선지, 무, 두부, 파와 달걀 지단을 올린 뒤 육수를 부어 만든다. 갈비탕이나 소고기국과 비슷하지만 데친 선지와 두부, 야채의 식감과 맛이 더 살아 있다.

(사진 위)대구 '국일따로국밥'의 따로국밥. (사진 아래)서울대치동 ‘반룡산’의 가리국밥. /양수열·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서울 대치동 반룡산에서 '가리국밥'과 함경도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상호로 쓴 반룡산은 함흥의 주산(主山). "어머니가 함흥 출신, 아버지가 이원 출신이셔서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함경도 음식을 먹고 자랐습니다." 정상혁(58) 대표가 2007년 가게 문을 열자 실향민들이 고향의 맛을 찾아 모여들었다. 최근엔 이색 음식을 찾아오는 20~30대 젊은 고객도 늘었다. 담백한 가리국밥은 동향의 매콤한 '가자미식해'와 궁합이 좋았다. 가리국밥 국물에 국수를 말아 먹는 '녹말국수'(농마국수)도 별미다.

육개장 같은데 육개장은 아니고, 선지국밥 같은데 선지국밥도 아니다. 대구에서 탄생한 '따로국밥' 얘기다. 밥과 국을 따로 내준다고 따로국밥이란 이름이 붙었지만 대구만의 독특한 국밥을 부르는 이름이기도 하다. 사태와 양지 등을 이용해 육수를 내는 육개장과 달리 따로국밥은 사골 육수를 쓰고 선지가 들어간다. 무, 파, 고추기름을 쓰는 건 선짓국보다 육개장을 닮았다. 대구는 원래 육개장으로 유명한 도시다. 6·25를 거치며 탄생한 따로국밥이 재료는 달라도 육개장을 더 닮은 이유다.

대구 중구 중앙네거리 인근에 오래된 따로국밥집이 모여 있다. 1946년 영업을 시작한 국일따로국밥의 역사가 가장 깊다. '따로국밥'은 첫인상부터 강렬하다. 고추기름을 넣어 시뻘건 국물과 큼직하게 썬 파와 무, 다진 마늘이 시선을 압도한다. 커다란 선지와 숭덩숭덩 썰어 넣은 살코기는 씹는 맛이 살아 있다. "대구 사람들처럼 화끈하고 시원하다 아입니까. 한겨울에도 따로국밥 한 그릇 먹으면 땀이 뻘뻘 납니다." 30년 단골이라는 전영수(48)씨가 웃으며 말했다.

해장으로도 든든한 국밥

충북 영동 ‘안성식당’의 올뱅이국밥.
1급수에만 산다는 다슬기의 이름은 지역마다 다른데 충청도에선 올갱이, 올뱅이로 불린다. 충북 영동에선 다슬기가 올뱅이다. 다슬기는 아미노산이 풍부해 숙취 해소에 좋다. 황간역 앞에 올뱅이국밥 가게가 모여 있다. 1953년부터 2대에 걸쳐 올뱅이 요리를 해온 안성식당엔 아침부터 어제의 기억을 지우려는 듯 "국밥 하나요"를 외치는 사람이 줄줄이 이어진다. '올뱅이국밥'에 들어 있는 올뱅이 살이 탱글탱글하다. 국물은 시원하면서도 달다. 이따금 씹히는 수제비는 쫀득하다. 황수호(58) 대표는 "충청도에서도 영동 올뱅이는 여울에 살아 알이 단단하고 맛이 좋다"고 했다. 가게에서 나오자마자 다리 아래 올뱅이를 잡는다는 하천이 있다. 영동에선 이맘때 자연산 능이버섯도 맛이 좋다. 겨우내 내놓은 '능이버섯올뱅이국밥'도 별미다.

수은주가 영하 10도 아래로 내려가는 12월 하순부터 일교차가 심한 미시령, 진부령, 대관령 고개엔 황태 덕장이 하나둘 들어선다. 겨우내 추위를 견디고 눈을 맞으며 명태는 황태로 변신한다. 황태 덕장이 모여 있는 강원도 인제와 평창 등에선 '황태국밥'이 겨울 추위를 달래주곤 한다. 강원도 인제 용대리엔 황태마을이 있다. 미시령과 진부령 사이 황태 덕장과 황태 요리 전문점이 모여 있는 곳이다. 용바위식당에서 황태국밥을 주문했다. 잘 말린 황태는 따로 양념이나 재료를 넣지 않아도 진한 국물이 나고 살이 부드럽다. 강원도 원주에서 온 박용현(56)씨는 "날씨가 추워지면 황태국밥 생각이 간절해지곤 하는데 진한 국물에 속도 풀리고 몸이 따끈해져 땀이 날 지경"이라며 웃었다.


조선일보 B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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