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ESSAY] 식당 문 닫고 새 길 모색하는 젊은이에게

윤승원 前 대전수필문학회장
입력 2018.11.30 03:10
윤승원 前 대전수필문학회장

그의 식당 앞을 매일 지나간다. 흔히 볼 수 있는 한식집이다. 식당 앞에 쌀 포대나 대파, 양파 자루가 쌓여 있을 때는 안도감이 들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식사 시간인데도 한산했다. 메뉴를 여러 번 바꾸었지만 손님이 늘지 않는 듯했다.

그는 얼마 전까지 내 집에서 월세로 살았다. 단칸방에서 부부가 지냈다. 하지만 방세가 밀려 버티지 못하고 나갔다. 부동산 중개업자는 한 달이라도 밀리면 즉각 독촉하라고 했다. 하지만 30대 후반 젊은이가 휴일도 없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면서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심하게 독촉하기 어려웠다.

오토바이로 음식 배달을 하는 그는 궂은 날이면 더 고생했다. 우비를 입어도 옷이 흠뻑 젖는다. 헬멧을 벗으면 이마에서 땀이 주르륵 흘렀다. 그의 얼굴은 늘 까칠했고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다. 2년 넘게 그와 한 지붕 밑에 살면서 고단한 모습만 보았다.

어쩌다 그와 마주치면 "죄송해요. 방세가 많이 밀렸죠. 요즘 장사가 잘 안돼서요. 하지만 조금씩이라도 입금할게요." 그는 심성이 착한 사람이었다. 집주인이 듣기 거북한 언사를 한 번도 쓰지 않았다.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말했다. "뵐 면목이 없어요. 방을 뺄게요." 그는 "아내와 잠시 헤어지고 어머니와 살림을 합치기로 했다"고 했다. 젊은 부부가 아기를 갖지 않은 게 궁금했는데, 비로소 짐작이 갔다. 어려운 생활 형편 때문이었다. "아내는 떨어져 살면서 다른 직장에 들어가고, 식당 홀 서빙과 주방 일은 어머니와 누이동생이 도와주기로 했어요. 저는 주로 배달을 하고요."

그가 이사 가고 나서 우편물이 쌓였다. 우편물을 갖다 주기 위해 그의 식당에 들렀지만 문이 잠겨 있어 문자를 보냈다. 그러자 답이 왔다. "밀린 방세 오늘 오후에 조금 넣을게요" 우편물 찾아가라는 문자를 '밀린 방세 독촉 문자'로 오해한 듯싶어 오히려 내가 미안했다.

이튿날, 밀린 방세 300여만원 중 20만원이 입금됐다. 며칠 후 식당 앞에서 마주친 그는 "요즘 장사가 조금 되네요. 찾아오는 손님 기다리는 것보다 배달이 나은 것 같아요"라고 했다. 아, 이렇게라도 하면 형편이 나아지겠구나. 빨리 사정이 나아져 떨어져 사는 아내와도 다시 합쳐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겠구나 싶어 그를 위로했다.

그 얘기를 들은 아내가 말했다. "방세 너무 독촉하지 마세요. 내 돈 떼어먹고 도망간 사람이 있으면 감사하게 생각하라는 말이 있어요. 불쌍한 사람 도와준 거라고 생각하면 그게 적덕(積德)인 거죠. 일부러 기부도 하고, 불우 이웃 돕기도 하는데, 우리는 그렇게 남을 도울 일이 자연적으로 생긴 것이니, 방세 못 내고 나간 사람에게 감사하게 생각해요."

하지만 형편이 풀린다던 그의 식당에 갑자기 '임대' 현수막이 내걸렸다. 버티지 못하고 폐업하기로 했단다. 아내는 "착한 젊은이인데, 참 안됐네요. 더 좋은 일자리를 찾을 거라고 믿어요"라고 했다. 나는 힘든 생활 전선에서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그에게 '기적'이 일어나길 기도했다. 절실함이 기적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며칠 후 그의 전화를 받았다. "식당 정리하고 다른 곳으로 이사했어요. 새 장사 시작하려고요. 밀린 방세는 꼭 갚을게요. 그동안 베풀어주신 따뜻한 정과 용기 주신 말씀 잊지 않을게요." 남달리 성실하고 심성 착한 그 젊은이가 새롭게 모색하는 사업이 부디 성공하길 기원한다.



조선일보 A3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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