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한의 애묘일기] “입장료를 내라옹” 고택을 접수한 길고양이들

이용한 시인
입력 2018.12.04 10:00
"어이 아저씨, 세상에 공짜가 어딨어?"
고택 민박에서 숙박료 받는 고양이, 나그네의 가이드 되다

“이 집에서 자려면 숙박료를 내라옹~”/사진 이용한
몇 년 전 일이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갈 무렵이었다. 지리산을 뒷산으로 둔 한 고택 민박에서 하룻밤 묵은 적이 있다. 뜨끈뜨끈한 아랫목에 누워 등을 지진다는 게 까무룩 잠이 들어 아침까지 자고 말았다. 그런데 아침부터 문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이야옹~ 이야옹~ 그만 일어나라옹!" 고양이 소리였다.

고양이는 내가 묵은 방 바로 앞 툇마루에서 집이 떠나가라 울어댔다. 누가 봐도 그건 방안의 손님을 깨우는 소리임에 틀림없었다. 고양이 소리가 아니었다면 해가 중천에 뜨도록 늘어져 있었을 테지만, 녀석의 소리가 하도 시끄러워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부스스한 몰골로 문을 열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문 앞 툇마루에 고양이가 한 마리 천연덕스럽게 앉아서 나와 눈을 맞추더니 한 번 더 우렁차게 울어댔다. "냉큼 나와서 밥을 대령하라냥!" 언제나 가방 속에 고양이를 위한 간식을 챙긴다는 것을 녀석이 알 리 없을 텐데, 거 참 이상했다. 나는 주섬주섬 가방을 뒤져 고양이용 간식을 꺼내 녀석의 입을 막았다. 그제야 집안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고택을 접수한 길냥이들, 넉살 좋게도 민박에 손님이 들면 밥을 달라고 울어댄다./사진 이용한
"아이고. 당하셨네요." 마침 고택의 주인장이 마당으로 나와 내게 한마디 건넸다. "네, 당하다니요." "그놈 상습범이에요. 손님이 들면 용케 알고 저렇게 방 앞에 가서 숙박료를 받아요." 보기 좋게 녀석에게 당한 것이다.

◇ 고택 민박에서 숙박료 받는 길냥이들

"하하, 그놈 참. 이런 고택에서 고양이와 함께 사는 거, 참 부럽습니다." 주인장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 아니에요. 둘 다 길고양이예요." 둘 다라니. 주인장이 가리키는 손가락을 따라가 보니 아궁이 옆에 한 마리가 더 있었다.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던 고양이보다는 훨씬 작은 고양이였다.

"저 녀석들이 우리 집을 제집처럼 드나들어요. 민박 손님이 많을 때는 아예 여기서 상주하다시피 한다니까요. 여기 오시는 민박 손님들이 가끔 음식을 고양이한테 던져주다 보니까 이제는 손님이 있으면 아예 방 앞에서 밥 달라고 막 울어요. 그럼 또 손님들이 귀엽다고 먹이를 주고. 그러니 저 녀석들이 이제는 민박 주인장이 다 됐어요." "그러니까 저 녀석들이 숙박료를 받는다는 말씀이군요!" 주인장도 나도 한바탕 크게 웃었다.

고택을 제 집처럼 드나드는 고양이들./사진 이용한
고양이와 기와집은 무척이나 잘 어울렸고, 고양이와 원형 장독대, 고양이와 와편굴뚝, 고양이와 옛 세간 또한 기막히게 조화를 이루었다. 모든 것이 부러웠다. 이런 고택을 민박집으로 내놓은 주인장도 부럽고, 매일같이 이 멋진 고택을 드나드는 고양이도 부러웠다. 해서 나는 어느 가을 지리산 가는 길에 한 번 더 고양이가 있는 고택을 찾았다. 고양이가 하룻밤 묵고 간 나그네를 기억할 리 없겠지만, 녀석들은 마치 어제 본 것처럼 달려와 냐앙냐앙 나와 눈을 맞췄다.

"어이, 아저씨! 세상에 공짜가 어딨어? 입장료를 내라옹, 나한테" 이번에도 나는 녀석에게 입장료를 지급하고 천천히 고택을 둘러보았다. 두 마리 고양이 중 한 마리는 내내 가이드를 해주겠다며 내 앞에서 뽈뽈거렸고, 다른 한 마리는 마루에 척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에헴에헴 수염을 쓰다듬고 있었다. 감이 저절로 익어 떨어지는 그런 늦가을이었다.

◆ 이용한은 10년은 여행가로 또 11년은 고양이 작가로 살았다. 1995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했고, 이후 고양이의 영역을 떠돌며 고양이의 이야기를 받아 적고 있다. 저서로는 ‘안녕, 후두둑 씨’, ‘당신에게 고양이’, ‘여행하고 사랑하고 고양이하라’,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 등이 있으며, ‘안녕 고양이’ 시리즈를 원작으로 한 영화 ‘고양이 춤’의 제작과 시나리오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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