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 1만 마리 살렸다" 버려진 이불로 롱패딩 만들다

김은영 기자
입력 2018.11.27 10:00
중고 오리털 의류와 침구류 재활용해 545벌의 다운 재킷 만들어
공정 60%가 수작업, "왜 이런 짓을 하나?" 핀잔도

베리구스의 충전재는 버려진 패딩 재킷과 이불 속 오리털을 추출해 재활용했다./베리구스
"남들이 안하는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예상한 것보다 더 힘들었어요." 업사이클 다운 재킷 ‘베리구스(Verygoose)’를 만든 서정은 드림워커 대표(34)는 기자를 만나자마자 너털웃음을 지었다.

베리구스는 버려진 다운 의류와 침구류에서 털을 추출해 만든 재활용 다운 재킷이다. 출시에 앞서 크라우드 펀딩으로 판매한 이 제품은 펀딩 시작 3시간 만에 300%를 달성하는 등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 업체는 전국 각지의 중고 의류 수출업체와 업무 제휴해 약 2690kg의 오리털 의류와 침구류를 매입했다. 여기서 채취한 재활용 오리털로 총 545벌의 업사이클 패딩을 제작해 판매할 예정이다.

◇ 게살 발라내듯 손으로 골라낸 오리털…1만1천 마리 분량

15년째 패션업계에 몸담아온 서 대표는 우연히 유튜브에서 오리털을 뽑는 영상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꽥꽥 울어대며 가슴 털을 뽑히는 오리의 모습은 학대 그 자체였다. 우리가 입는 거위와 오리털 패딩은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다. 오리는 생후 10주부터 6주 간격으로 일생 동안 털을 뽑힌다. 패딩 재킷 한 벌을 만드는 데 약 20마리의 거위와 오리가 필요한데, 매년 약 200만 마리의 거위와 오리가 희생된다.

이들의 희생을 줄이는 방법이 없을까? 서 대표는 버려진 오리털 제품을 재활용해 다운 재킷을 만들기로 했다. 파타고니아, 나우 같은 해외 브랜드에서는 시도한 바 있지만, 국내에선 재활용 다운 재킷을 내세운 브랜드가 없었다. "나 같은 사람이 방향성을 제시하면, 다른 기업들도 따라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했어요. 하지만 막상 해보니 하지 않는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경제성이 너무 떨어졌거든요."

매년 많은 옷이 버려진다. 베리구스가 수거한 옷 중에는 한때 ‘고등학생 교복’으로 인기 끌던 고가의 아웃도어 패딩도 상당수를 차지했다./베리구스
털을 재활용하는 과정만 추가됐을 뿐인데, 재킷을 만드는 비용과 시간은 새것을 만드는 것보다 두 배가 들었다. 전문 설비가 없기 때문이다. 추출한 오리털을 세탁하고 가공하기까지 60% 이상의 공정이 수작업으로 진행됐다. "수거된 다운 재킷을 일일이 손으로 분해해 털을 골라냈는데, 마치 게살을 발라내는 것 같았어요. 일과가 끝나도 온몸에서 깃털이 나왔죠. 그래도 ‘오늘은 (오리) 100마리 살렸다’라며 서로를 독려했습니다."

다섯 곳의 의류 수거업체에서 약 2690kg의 의류와 이불을 수거했지만, 쓸만한 털은 고작 20%에 불과했다. 다운 재킷을 만들기 위해서는 솜털과 깃털의 비중이 8:2는 되어야 하는데, 이불의 경우 깃털이 많아 쓸모가 없었다. 100% 오리털이라 표시된 재킷도 막상 뜯어보면 합성 충전재가 섞여 있거나, 깃털 함량이 더 많았다. 다운 재킷의 씁쓸한 진실까지 알아버렸다.

버려지는 옷이 너무 많다는 사실도 실감했다. 한때 ‘고등학생 교복’으로 인기를 끌었던 고가의 아웃도어 패딩 재킷도 대량 수거했다. 그 옷을 찢고 털을 골라내면서 ‘이렇게 버려질 옷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그렇게 추출한 오리털이 재킷 545벌, 오리 1만1000마리 분량이다.

◇ 버려지는 오리털 너무 많아…프로세스 구축하면 재활용할 수 있어

"여기서 사는게 더 싼데 왜 이런 짓을 해요?" 생산처에선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비용 절감을 위해 중국에서 봉제했는데, 무거운 오리털을 보내자니 선적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었다. 검역 과정도 거쳐야 했다.

의류 수거 업체에서 2690kg의 다운 의류와 침구류를 수거해 재킷 545벌 분량의 털을 추출했다. 오리 1만1000 마리 분량이다. 과정은 대부분 수작업으로 진행됐다./베리구스
하지만 이런 과정보다 서 대표를 더 힘들게 한 건 소비자들의 인식이었다. 재활용 다운 재킷을 만들겠다고 하니 유별나게 보는 사람도 있었고, "넌 고기 안 먹냐"며 따지는 사람도 있었다. 정식 판매에 앞서 진행한 펀딩도 목표치를 400% 이상 달성하며 성공했지만, 기대엔 못 미쳤다. 산 채로 오리털을 뽑는 과정은 끔찍하지만, 막상 제품을 살 땐 이런 감정들이 반영되지 않는 거 같았다. 가격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도 있었다. 재활용인데 왜 이렇게 비싸냐는 것. 베리구스의 롱패딩은 25만9000원, 숏패딩은 23만9000원이다.

서 대표는 "생각보다 시장이 작았다. 인식이 확산되려면 자본력을 갖춘 기업이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베리구스의 패딩 재킷은 곧 주요 유통업체에서 판매될 예정이다. 검은색의 롱패딩과 숏패딩을 선보인다. 가장 기본적인 디자인을 채택해 ‘업사이클 패딩’이라는 가치만을 부각시켰다. "유행에 따라 버려지는 패딩을 되살려보자는 취지로 만들었는데, 또 유행 타는 디자인을 만드는 건 모순이라고 생각했죠. 이 가치를 찾는 소비자가 얼마나 되는지 시험해 보고도 싶었고요."

재활용 오리털로 만든 베리구스의 롱패딩. 베리구스라는 브랜드명은 ‘베리 굿’과 ‘구스’를 조합해 만들었다./베리구스
품질 면에서도 재활용이라는 고정관념을 타파하기 위해 신경 썼다. 롱패딩은 500g, 숏패딩은 400g 이상의 오리털을 사용했다. 재활용 털의 품질을 인증해 주는 시험기관이 없어서 필파워(털의 복원력)를 측정할 순 없었지만, 가치가 있는 만큼 양심껏 만들었다는 게 서 대표의 설명이다. 실제로 재킷을 착용해보니 가볍고 따뜻했다. 일반 다운 재킷과 다를 바 없었다.

"업사이클 패딩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시장에 장르가 만들어진다면 그걸로 만족합니다. 내년에는 공정을 제대로 갖춰 옷을 만들어볼 생각이에요. 그러면 가격이나 디자인 면에서도 고객들의 요구를 맞출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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