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국은 사우디 편, 이란이 더 나빠”…‘카슈끄지 피살’ 물타기

박수현 기자
입력 2018.11.21 11:35 수정 2018.11.21 14:01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일(현지 시각)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자국의 반(反)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를 지시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더라도 사우디를 지지한다는 미국의 입장은 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란의 테러 위협과 국제유가 동향을 고려했을 때, 사우디와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미국 국익을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내고 "살만 빈 압둘아지즈 사우디 국왕과 빈 살만 왕세자는 카슈끄지 살해 계획이나 사형 집행과 관련해 아는 바가 없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며 "미국의 정보기관은 모든 정보를 놓고 계속해서 분석하고 있지만, 빈 살만 왕세자는 이 비극적인 사건에 대해 알고 있었을 수도 있고 몰랐을 수도 있다"고 했다.

국제사회와 터키 정부가 카슈끄지 살해 배후로 빈 살만 왕세자를 지목하고 있지만, 사실상 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미 중앙정보국(CIA)이 빈 살만 왕세자가 카슈끄지의 살해를 지시했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언론 보도가 나온지 나흘 만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 말은, 즉 우리가 카슈끄지 살해를 둘러싼 모든 사실을 영영 모를 수도 있다는 뜻"이라며 "어떤 상황에서든 미국은 사우디의 편에 설 것"이라고 했다. 그는 특히 "사우디는 이란과의 아주 중요한 싸움에서 미국의 중요한 동맹이 돼 왔다"며 "미국은 우리나라와 이스라엘, 그리고 역내 다른 파트너국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사우디의 확고한 동반자로 남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미국의 목표는 전 세계 테러 위협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2018년 3월 20일 미국을 방문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접견을 받으며 백악관을 거닐고 있다. / 백악관
‘진짜 적(敵)은 사우디가 아니라 이란’이라고 물타기를 시도했다는 평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성명 시작부터 이란을 겨냥한 원색적인 공격을 쏟아냈다. 예멘 내전이 지속되는 이유를 이란의 탓으로 돌리며, 테러리즘에 대한 공포와 지지층의 친(親)이스라엘 성향에 호소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매우 위험한 세상에 살고 있다"며 "민주주의를 향한 이라크의 유약한 노력을 무너뜨리고, 테러단체 헤즈볼라(레바논의 이슬람 시아파 무장세력)를 지원하고, 시리아의 독재자 바샤르 알 아사드를 지지하기 위해 예멘에서 사우디와 유혈 대리전쟁을 치르고 있는 이란이 한 예"라고 했다.

그는 "이란인들은 중동 전역에서 많은 미국인들과 다른 무고한 사람들을 죽여왔다"며 "이란은 공개적으로 ‘미국에 죽음을!’ ‘이스라엘에게 죽음을!’도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이란은 ‘세계 최고의 테러 후원국’으로 여겨지기도 한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면서 ‘사우디는 다르다’고 주장했다. 그는 "반면 사우디는 이란이 물러나면 기꺼이 예멘을 떠난다는 입장"이라며 "그들은 (전쟁이 끝나는) 즉시 절실히 필요한 인도주의적 지원을 제공할 것이다. 급진적인 이슬람 테러와의 전쟁을 이끄는 데에 수십억달러를 지원하겠다고도 약속했다"고 했다.

2017년 5월 20일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살만 빈 압둘아지즈 사우디 국왕이 회담을 하고 있다. / 백악관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의 대미(對美) 투자가 미국 경제에 가져올 긍정적인 영향도 강조했다. 그는 사우디가 지난해 4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이는 대량의 고용 창출과 경제성장으로 이어져 미국을 부강하게 만들 것"이라고도 역설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과 사우디와의 관계가 악화되면 중국과 러시아에게만 좋은 일을 하는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사우디가 미국에 투자하기로 한 4500억달러 중 1100억달러는 보잉과 록히드마틴, 레이시언 등 미 방위산업 기업들로부터 무기장비를 구입하기로 한 것인데, 이를 깨면 미국과 패권싸움을 벌이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에게 사우디와의 사업 기회가 돌아갈 것이라는 설명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미국이 카슈끄지 피살과 관련해 이미 충분한 조치를 취했다고도 했다. 그는 "카슈끄지에게 가해진 범죄는 끔찍하고 미국이 용납하지 않는 일"이라며 "우리는 벌써 카슈끄지 살해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진 사람들을 대상으로 강력한 조치를 취했다. 상당한 규모의 독자적 조사를 통해 이 끔찍한 범죄의 세부적인 디테일을 알게 됐고, 카슈끄지를 살해하고 그의 시신을 없앤 것으로 밝혀진 17명의 사우디인을 제재했다"고 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카슈끄지 살해는 받아들일 수 없는, 소름끼치는 일"이라면서도 카슈끄지를 ‘국가의 적’으로 간주하고 그가 이슬람주의 단체인 무슬림형제단의 일원이었다고 주장하는 사우디 당국을 인용하면서 여운을 남겼다. 그러면서 그는 "(사우디와의 관계를 유지하겠다는) 내 결정은 사우디 당국의 이런 주장에 기반하지 않는다"고 거듭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7년 5월 20일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의 킹 칼리드 국제공항에 도착하고 있다. / 백악관
트럼프 대통령은 다가올 정치적 후폭풍도 미리 경계했다. 그는 "정치적인 이유나 다른 이유로 나와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싶어하는 의원들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그들의 자유를 존중한다"며 "어떤 의견이 나오든 상관없지만, 미국의 절대적 안보와 안전을 고려하는 경우에만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마지막으로 사우디가 유가를 낮추는 데에도 미국과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며 사우디와의 우호 관계가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의 대통령으로서 나는 매우 위험한 이 세상에서 미국이 국익을 추구하며 우리에게 해를 끼치고자 하는 국가들과 맹렬히 경쟁하고 있음을 확실히 하고자 한다"며 "쉽게 말해 미국이 먼저(America First)라는 소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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