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윤의 맛있는 그림일기] 낙지는 중국산이지만… 감칠맛 살리는 매운맛은 여전하네

입력 2018.11.20 03:00

광화문 유정낙지

낙지를 매운 음식의 대명사로 만든 건 서울 광화문 무교동 낙지볶음집들이다. 그리고 무교동을 낙지볶음의 메카로 만든 건 '유정낙지'다. 1966년 김수만(84)씨는 무교동 청계천 주변 노점에서 할머니들이 막걸리 안주로 낙지 파는 걸 보았다. "광화문 일대 회사원, 공무원, 기자들이 퇴근하면서 얼큰한 낙지볶음에 대포 한 잔씩 하고 가더라고."

김씨는 '이거다' 싶었단다. 음식 솜씨 좋은 아내 김순득(79)씨에게 주방을 맡기고 자신은 운영을 하기로 했다. 무교동 현 SK 본사 자리에 있던 한옥집을 임차했다. 작명가에게 돈 주고 '미정낙지'란 이름을 받았으나 구청 직원 실수로 '유정낙지'로 등록됐다. 그래도 공무원이 "그냥 그대로 하세요"라면 별수 없던 시절이었다.

할머니들이 김장 김치 담글 때 쓰는 굵은 고춧가루로 낙지를 볶았다. 김씨 부부는 고춧가루를 가능한 한 곱게 갈았다. 전분도 섞었다. 이렇게 하니 소스가 따로 놀지 않고 낙지에 착 달라붙어 훨씬 맛있었다. 무교동 낙지볶음의 원형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부부의 가게는 '대박'을 냈다. 주변에 비슷한 낙지볶음을 하는 식당이 여럿 생겨났다.

무교동 일대가 재개발되자 낙지볶음집들이 수송동 종로구청 앞, 청진동 등으로 이전했다. 서울 여러 곳에 지점을 두고 있던 유정낙지는 본사를 경기도 성남으로 옮겼다가 낙지가 제철을 맞는 올가을 광화문으로 돌아왔다. 옛 광화문 분위기를 그나마 간직하고 있는 성공회성당 맞은편에 본점을 다시 열었다.

싸고 흔하던 낙지는 귀하고 비싼 식재료가 됐다. 유정낙지에서는 과거 전남 여수에서 올려보낸 국산 낙지를 썼지만, 이제는 중국산을 쓸 수밖에 없다. 그나마 중국산 낙지도 동남아산 등과 비교하면 비싼 편에 속한다. 김수만씨는 맛만큼은 예전대로 지키려고 한다. "낙지볶음이라면 속 쓰리도록 무식하게 맵기만 한 음식으로들 알아요. 낙지의 감칠맛을 살려주는 '맛있는 매운맛'이라야지."



조선일보 A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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