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대대적 점검한다"더니 …'벌집같은 고시원'은 넘어갔다

박성우 기자
입력 2018.11.09 20:00
고시원 화재 해마다 50건 발생
불나면 대형참사로 이어지는 ‘벌집형 구조’
스프링클러·화재경보기·안전진단 허술
"모텔형 입주형태가 근본원인" 지적도

사망자 7명 등 18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서울 종로구 ‘국일고시원’은 올해 국가안전대진단 당시 점검 대상에서 제외됐다. 건축대장에 고시원이 아니라 ‘기타 사무소’로 등록된 까닭이다. 정부는 올해 국가안전대진단 때 안전에 취약한 쪽방촌·고시원 등 8300여곳을 점검 대상으로 선정했다.

서울 종로구청 관계자는 "2009년 이전에 지어진 건물은 소방서에서 받은 영업필증만으로 영업할 수 있어 불법은 아니다"면서 "현재 도면도 자료도 남아 있지 않은데다 고시원이 아니기 때문에 안전점검 의무도 없다"고 말했다. 낡은 건물은 누전, 안전 설계 미비 등으로 화재 위험이 더 높지만 ‘안전점검 의무’ 대상에서는 빠진 것이다.

정부가 ‘대대적 점검’을 하겠다고 했지만, 결국 ‘규정 미비’로 점검을 반드시 받아야 할 곳이 빠지게 되는 ‘역설’이 발생한 셈이다.

그래픽=박길우
◇‘벌집형 구조’가 火魔 키웠다
화재 전문가들은 고시원의 ‘벌집형 구조’가 화재를 키웠다고 지적한다. 화재가 난 국일고시원 각층은 140.93㎡(42.6평)다. 이 안에 약1.5평~3평(약 4.9㎡~9.9㎡) 정도 되는 방이 2층에 24개, 3층에 29개가 벌집처럼 다닥다닥 붙었다.

복도는 폭 80cm 정도로, 두 명이 나란히 걷기 힘들 정도다. 대피자가 일시에 방 밖으로 몰릴 경우 꽉 막히는 구조였다. 이날 화재로 숨진 7명은 모두 3층에서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대피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건물은 1983년에 건설된 것으로 확인됐다. 고시원 내부에 스프링클러는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2009년 이후 문을 연 고시원은 스프링클러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지만, 이 고시원은 2007년 문을 열어 의무 설치 대상이 아니었다.

권혁민 종로소방서장은 "화재가 발생한 3층 출입구 인근에서 불길이 거세게 일어 대피하는 데 상당히 어려움이 있었다"며 "폐쇄회로(CC)TV 분석으로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 고시원에서 화재가 발생해 소방당국이 진화작업을 벌이고 있다./ 김우영 기자
화재가 난 건물은 지상 3층, 지하 1층 규모다. 1층은 일반음식점이 영업 중이었다. 고시원은 그 위를 다 썼다. 2층(24실), 3층(29실), 옥탑방(1실) 등 총 54개의 방이 있었다. 2층에는 24명, 3층에는 26명이 거주했다. 국일고시원 총 객실수는 54실로 소방당국의 중점관리 대상(100실 이상 혹은 지하에 위치)도 아니었다.

화재가 난 고시원에는 화재경보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대피한 거주자들은 "비상벨이 울리지 않았다. 고장 났다고 들었다. 나는 ‘우당탕탕’하는 소리에 놀라서 깼다"고 진술하고 있다. 경찰·소방당국은 오는 10일 오전 10시에 합동감식을 벌여 화재경보기가 작동했는지 확인할 예정이다.

◇ 고시원 화재는 왜 대형사고로 이어지나?
고시원이 안전사고에 취약하다는 지적은 그간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소방청에 따르면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발생한 다중이용업소 화재 3035건 가운데 252건(8.3%)이 고시원에서 발생했다. 고시원에서 해마다 50여건의 화재사고가 발생한 셈이다.

고시원 화재는 한번 발생하면 ‘참사’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2004년 경기도 수원시 고시원에서 발생한 화재로 4명이 숨졌고, 2006년에는 서울 잠실 고시원 화재로 8명이 목숨을 잃었다. 2008년에는 경기도 용인의 고시원에서 불이 나 6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고시원이 △한 명이라도 더 받기 위해 미로처럼 복잡한 구조로 지어지고 △영세한 탓에 화재 방지 시스템이 열악한데다 △가연성 물질도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2008년 7월 25일 새벽에 발생한 경기도 용인시 김량장동 고시텔 화재 사건 현장. 좁은 복도와 빼곡이 들어선 방마다 처참한 화재 흔적들이 남아있다. /조선DB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다중이용시설인 고시원은 단위 면적당 거주자가 많아 화재가 날 경우 시야 확보가 어렵고, 탈출도 쉽지 않다"며 "영세한 고시원에는 방염처리가 되지 않은 침대 매트리스, 커튼, 벽지 같은 가연성 물질이 많아 일단 불이 나면 대형참사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박재성 숭실사이버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모텔처럼 사용되는 입주형태’를 근본적인 원인으로 꼽았다. 박 교수는 "고시원 업주, 입주자들 모두 ‘잠깐 머물다 떠나는 곳’이라는 인식이 강해서 안전시설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잇따른 사고에 정부와 소방당국, 지방자치단체 등은 스프링클러·비상경보기 설치 등을 지원하고 고시원 규제를 강화하는 등 대책마련에 나섰다. 매년 고시원에 대한 소방특별조사를 진행하는 한편, 서울시도 지난 7월 노후고시원 22곳에 총 1568개의 간이스프링클러를 설치하는 지원사업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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