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한국계 美 하원의원 2명 시대

임민혁 논설위원
입력 2018.11.09 03:16

1990년대 대만이 원전 폐기물 수천 드럼을 북한에 넘기려 했다. 김정일 정권은 수천만 달러를 탐내 이를 북한 땅 어디에 묻으려 했다. 제대로 묻을 리도 만무했다. DMZ에 묻을 수도 있었다. 대만·북한의 거래는 국제 사회 관례상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김영삼 정부는 한국계 미 하원의원 김창준에게 SOS를 쳤다. 김창준은 당시 미국 정계의 실력자이던 깅그리치 하원의장을 움직였다. 미 하원에서 핵폐기물 거래를 반대하는 결의안이 통과됐다. 대만은 그날로 대북 폐기물 흥정을 중단했다. 우리 정부는 미 하원의원 한 사람의 힘을 실감했다.

▶미 연방 상원은 주(州)마다 2명씩 균일하게 뽑지만 하원은 지역별 인구 비례로 선출한다. 하원의원 한 명은 지역구민 72만명쯤을 대표한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은 의원 한 사람에 인구 9만9000명쯤이다. 미국에서 하원은 돈(예산)에 관한 권한을 갖고 상원은 인사 권한을 보유한다. 하원 협조 없이 대통령이 벌일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방 하원에 한국계 2명이 동시 진출한 건 115년 한인 이민사(史)에서 일대 사건이다. 이번 중간선거에서 캘리포니아주 39지구 영 김(56·공화)에 이어 뉴저지주 3지구 앤디 김(36·민주)도 당선이 확실시된다. 하와이 사탕수수밭에서 가축 취급을 받으며 중노동했던 초기 이민자의 피땀 위에 한인의 위상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이 쌓였다.

▶미국에서 한인들은 특유의 성실함과 교육열을 바탕으로 빠르게 주류 사회에 정착했지만, 유독 정계 진출은 미미했다. 한인회장 출신인 한 교포는 "중국계는 차이나타운에 모여 살아 표가 결집된다. 그런데 한인은 돈은 소수인종 지역에서 벌고 살기는 학군 좋은 백인 지역에 흩어져 살기 때문에 표가 모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다보니 선거에 대한 관심도 높지 않았다. 한인들의 투표권 등록률은 55%에 불과해 아시아계에서도 낮은 편이다. 백인의 등록률은 75%, 흑인은 65% 정도 된다. 하지만 이번 '하원 두 명 당선'으로 한인들의 선출직 도전이 더 활발해질 것 같다.

▶'한국계'라고 하지만 이들은 미국인이고 미국을 위해 일하는 미국 의원이다. 그러나 피는 속일 수 없다. 두 의원은 어떤 결정적 순간에 어머니·아버지·할머니·할아버지의 나라를 위한 통로가 돼 줄 수 있을 것이다. 지한파 미 의원들 모임인 '코리아 코커스'에 이 두 명이 가세하게 됐다. 민주·공화 양당에 1명씩 포진하게 돼 더 값져 보인다.


조선일보 A3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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