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 스토리] '78세 노장' 낸시 펠로시…美 하원의장으로 귀환하나

이선목 기자
입력 2018.11.09 06:00
‘미국 의회 역사상 첫 여성 의회 지도자’

78세 노장 여성 정치인, 낸시 펠로시 미국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가 하원의장직 귀환을 눈앞에 두고 있다.

펠로시 대표는 미국 정계의 ‘유리천장(여성에 대한 보이지 않는 차별)’을 깬 인물로 꼽힌다.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그는 47세에 캘리포니아 하원의원으로 미 정계에 발을 들인 후 30년 넘게 이 지역에서 의원직을 지키고 있다. 펠로시 대표는 2002년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하원 민주당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정계에 입문한 지 19년 만인 2006년에는 첫 여성 하원의장직에 올랐다.

차기 미국 하원의장 유력 후보로 꼽히고 있는 낸시 펠로시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 /미 민주당
민주당은 6일(현지 시각) 치러진 미국 중간선거에서 8년 만에 하원 장악에 성공했다. 중간선거는 집권당과 현 정부를 심판하는 잣대로 여겨지기 때문에 민주당의 하원 탈환은 의미있는 결과다. 민주당의 부활과 함께 8년 전 공화당에 하원 다수당 지위를 뺏기면서 의장 자리를 내줬던 펠로시 대표의 복귀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 정치 명문가 출신 가정 주부…47세 정계 입문

펠로시는 1940년 미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이탈리아계 이민자 가정의 5남 1녀 중 외동딸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볼티모어 시장과 민주당 하원의원을 지냈으며, 오빠도 볼티모어 시장을 역임했다. 아버지를 지켜보며 정치에 꿈을 키운 펠로시는 워싱턴 트리니티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펠로시는 당시 대니얼 브루스터 상원의원실에서 인턴을 지내기도 했다.

그러나 펠로시는 대학 졸업 이후 곧바로 결혼해 평범한 가정 주부로 지냈다. 그는 금융업에 종사하는 남편을 따라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로 거처를 옮긴 뒤 가사와 다섯 자녀 양육에 전념했다.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과 함께 있는 젊은 시절의 낸시 펠로시(왼쪽)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 /비즈니스인사이더
펠로시는 가정주부로 지내면서도 민주당에 가입해 샌프란시스코 지역사회 자원봉사자로 활동했다. 그는 자녀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적극적인 정계 진출을 모색했다. 1987년 샌프란시스코 연방 하원의원이었던 샐라 버튼 의원이 암으로 숨지자 펠로시는 미국에서 진보색채가 강하다는 제8선거구(캘리포니아) 보궐 선거에 출마했다. 당시 하원의원에 당선해 정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였다. 당시 그의 나이 47세였다.

펠로시는 민주당 하원의원으로서 정치적 입지를 다져나갔다. 2001년에는 하원 민주당 서열 2위인 원내총무로 선출됐고, 2002년에는 하원에서 민주당 원내대표에 당선됐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양대 정당의 여성 대표가 탄생한 것이다. 펠로시는 민주당을 대표하는 얼굴이 됐다.

펠로시는 민주당 내에서도 진보적 성향이 강한 의원으로 통했다. 그는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이라크 전쟁을 반대하고, 이라크 미군 철수를 강력 요구했다. 사회보장제도 강화와 감세정책 반대를 주장해 공화당과 대립각을 세웠다. 펠로시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알려졌지만, 동성 간 결혼이나 낙태도 적극 찬성했다.

◇ 美 역사상 ‘최초’ 여성 하원의장

이라크전이 주요 이슈였던 2006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은 하원을 장악했다. 당시 11선에 성공한 펠로시는 2007년 미 역사상 최초로 여성 연방 하원의장직에 올랐다. 미국에서 연방 하원의장은 대통령과 부통령 다음으로 권력 서열 3위에 해당하는 직책이다. 펠로시는 2007~2011년 하원의장직을 지키며 ‘미국 정치권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른 여성’이란 수식어를 얻었다.

2015년 4월 2일 한국을 방문한 낸시 펠로시(앞줄 왼쪽부터 세 번째)대표와 미 하원 대표단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사진을 찍고 있다. /펠로시 의원실
펠로시는 한국과도 인연이 있다. 펠로시는 2007년 하원의장으로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 촉구하는 결의안 통과를 적극 주도했다. 이 결의안은 그해 7월 30일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2015년에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미 상·하원 합동 연설을 앞두고 하원 대표단 자격으로 한국을 방문해 위안부 문제와 관련, "아베 총리가 어떤 형식으로든 사과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펠로시는 2008년 대통령 선거에서 버락 오바마 당시 민주당 후보를 적극 지지했다. 오바마 정부 시절 민주당 내부 반발을 잠재우고 공화당을 설득해 ‘오바마케어(전 국민건강보험법안)’을 통과시켰다. 펠로시는 특유의 친화력과 활동력으로 정치자금 모금에도 뛰어난 능력을 보여왔다. 미 폭스뉴스에 따르면, 펠로시는 2002년부터 지금까지 민주당을 위해 약 5억달러(약 5590억원)를 모금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낸시 펠로시(앞줄 왼쪽부터 네 번째) 미국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와 그의 가족들. /유튜브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유능한 정치인으로 평가받는 펠로시는 다섯 자녀를 둔 ‘어머니’이기도 하다. 그는 매우 가정적인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다. 2006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펠로시에 중동 순방길에 동행하자고 제안했다. 외교분야에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런데 당시 만삭이었던 펠로시의 막내 딸은 순방이 시작되는 날 아침 진통을 시작했다. 펠로시의 선택은 딸이 있는 애리조나로 가 새로 태어나는 손주를 보는 것이었다.

또 펠로시는 명품 옷을 즐겨 입는 ‘부유한 정치인’으로도 유명하다. 미국 정치매체 롤콜에 따르면, 펠로시 가족의 자산은 부동산과 주식 등 3290여만 달러 규모로 집계됐다. 대부분은 남편 명의의 자산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펠로시의 순자산 규모도 1600만달러(약 178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미국 의회 전체 의원 중 30위, 캘리포니아주 의원 가운데 5위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 하원의장 귀환 유력…‘미 정계 분열’ 우려 목소리도

오바마 전 대통령 임기 중 치러진 2010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은 하원 다수당 지위를 공화당에 넘겨줬다. 이와 함께 펠로시도 하원의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대신 그는 하원 민주당 대표로 다시 선출돼 그 자리를 유지해왔다.

펠로시는 78세의 노장 정치인이 된 이후에도 활발하게 정치 활동을 이어왔다. 2017년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그는 대통령과 공화당에 대립각을 세워왔다. 지난 2월 펠로시는 ‘1분 자유 발언’을 위해 하원 연단에 올랐다. 그는 당시 드리머(Dreamer·불법 이민자 부모와 함께 미국에 정착한 불법 체류 청년)를 추방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에 맞서자고 호소하며 ‘8시간 6분’ 동안 연설했다. 미 하원 역사상 가장 긴 연설 기록이다.

지난 6일 치러진 미 중간선거에서는 민주당이 8년 만에 하원을 장악했다. 펠로시는 이번 선거에서 84.5%의 지지율로 캘리포니아 하원의원직을 유지했다. 이로써 현 하원 민주당 대표인 펠로시는 하원의장직을 회복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달 28일 비공개로 실시하는 민주당 지도부 선거에서 과반수 표를 확보하면 하원의장이 될 수 있다.

2018년 11월 6일 치러진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하원을 장악한 가운데, 낸시 펠로시 미국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가 7일 워싱턴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CNN
미 조야에서는 펠로시의 하원의장직 복귀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펠로시는 트럼프 대통령과 가장 대립하는 인물 중 하나로 꼽힌다. 그가 하원의장직을 맡을 경우 이민자 문제, 세금 인하 등 민감한 정책을 둘러싼 미 여야 간 대립이 더 치열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심지어 민주당 내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나온다. 미 역사상 최초의 무슬림 연방 하원의원인 라시다 탈리브 의원(미시간주)은 민주당 지도부 세대 교체를 주장하고 있다.

펠로시는 이런 우려를 의식한 듯 민주당의 하원 장악을 자축하는 연설에서 "우리는 책임을 지고 분열이 아닌 초당파주의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분열은 지금까지로도 충분했다"고 말했다. 이날 가진 기자회견에서는 "나는 통합과 협상을 진전시킬 수 있는 최적의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연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펠로시는 똑똑한 사람"이라며 "아름다운 초당주의를 희망한다"고 했다.

그러나 ‘펠로시의 하원’에 대한 우려는 여전하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참모를 지낸 더글라스 쉔 정치 컨설턴트는 이날 폭스뉴스에 실은 기고에서 "이미 분열이 극심해진 상황에서 민주당이 펠로시를 차기 하원의장에 올리는 건 큰 실수가 될 것"이라며 "민주당은 새롭게 얻은 정치 권력을 미국이 통합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트럼프 대통령은 공화당이 펠로시가 자신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이상한 말을 했지만, 그는 곧 (현 하원의장인) 폴 라이언 때보다 훨씬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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