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읽기 어려울수록 멋진 책?

김호영 한양대 프랑스언어문화학과 교수
입력 2018.11.08 03:00
김호영 한양대 프랑스언어문화학과 교수
얼마 전 지인이 프랑스 소설 한 권을 번역해 출간했다. 한국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프랑스에서 요즘 가장 주목받는 작가의 책이었다. 대중적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운 작품을 번역한 그의 열정에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

한데 책의 표지 디자인이 너무 발랄해 당황스러웠다. 꽤 심오한 작품이라 들었는데, 겉표지는 빨강, 파랑, 노랑이 색동저고리처럼 어우러져 있었다. 제목의 서체도 매우 독특했다. 열악한 출판 현실에서 독자의 시선을 끌 만한 표지를 선택한 출판사의 고뇌가 헤아려졌다. 하지만 본문을 읽는 순간, 다시 한 번 당혹감에 빠져들었다. 본문 디자인 또한 너무 특이해 독서에 몰입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지면 윗부분에 거의 여백을 두지 않았고, 글자는 작고 촘촘했으며, 소제목과 숫자도 독특한 모양으로 디자인돼 있었다. 과도하게 행간을 띄우고 여백을 잔뜩 두는 책들도 거부감이 들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가독성을 떨어뜨리는 건 매한가지였다.

대학원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우연히 이 책이 화제에 올랐다. 학생들은 곧바로 내 구태의연한 사고를 지적하며, 요즘엔 그런 북디자인이 인기라고 했다. 소셜미디어에 올리려면 책 표지뿐 아니라 본문 디자인도 독특하고 개성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용이 어떤지, 주제가 무엇인지는 나중 문제라고 했다.

어느새 책은 읽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사는 물건이 되어 가고 있다. 새로운 도서 구매자들에게는 표지와 본문 몇 장을 찍어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것이 책값을 지불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다. 활자마저 이미지로 소비되는 시대. 언어를 통해 무한한 상상과 사유의 세계를 탐사하는 일은 정녕 우리 삶과 무관한 일이 되어 버린 걸까? 여전히 한 권의 책을 출간하기 위해 수많은 낮과 밤을 바치고 있을 작가와 번역가들을 생각하니 조금 쓸쓸해졌다.



조선일보 A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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