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리뷰] 무대가 '와르르', 배우는 대사 커닝… 그래도 재밌네

양승주 기자
입력 2018.11.08 03:00 수정 2018.11.08 22:29

더 플레이 댓 고우즈 롱

이 연극, 처음부터 뭔가 불안하다. 무대 위 벽난로 선반이 떨어져 스태프가 달려오고, 문이 열리지 않자 배우는 "됐다! 들어왔다!"고 외치며 뻔뻔하게 벽을 돌아 걸어나온다. 눈 뜨고 보기 힘든 '발 연기'에, 대사 커닝까지 난무한다. 하지만 관객들은 숨 넘어갈 듯 깔깔댄다. 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막을 올린 연극 '더 플레이 댓 고우즈 롱(The Play That Goes Wrong)'은 '점점 잘못돼 가는 연극'이란 뜻대로 엉망진창 그 자체이지만 그래서 유쾌하다. 무대 세트가 무너지고 배우가 기절하는 상황에서도 극은 이어지고, 이들의 안간힘에 실컷 웃다 종국엔 묘한 감동마저 느낀다.

단원들은 무대 위 각종 사고에도 뻔뻔하게 연기를 이어나가지만, 연극은 자꾸만 엉망이 돼 간다. 이미지 크게보기
단원들은 무대 위 각종 사고에도 뻔뻔하게 연기를 이어나가지만, 연극은 자꾸만 엉망이 돼 간다. /신시컴퍼니
연극은 '극 중 극' 형식으로 진행된다. 콘리 대학의 드라마 연구회 단원들이 미스터리 연극 '해버샴 저택의 살인 사건'을 공연한다는 설정. 저택 주인인 '찰스 해버샴'이 약혼식 날 밤 독살되자, 범인을 찾는 과정에서 찰스의 약혼녀와 동생, 집사 등 주변인들 사이에 얽힌 비밀이 드러난다.

줄거리 자체는 흥미진진하나, 대학생 단원들이 이 극을 끌고 나갈 수준이 전혀 안 된다는 문제. 배우들뿐 아니라 무대 감독, 스태프도 '함량 미달'이다. 처음엔 사소한 실수들을 어찌어찌 수습하지만, 실수가 커지며 걷잡을 수 없는 상황까지 치닫는다. 하지만 어쩌랴, 이미 관객이 모였으니 연극은 계속될 수밖에!

이 '재난 수준'의 연극은 아이러니하게도 배우들의 탄탄한 내공으로 완성된다. 열리는 문에 맞아 뇌진탕을 일으키고, 대사를 한 줄 건너뛰어 극이 엉키는 등 자칫 유치할 법한 실수가 이어지지만, 이를 매끄럽게 소화해내는 배우들 호흡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의도인지 진짜 실수인지 분간 안 되는 몇몇 장면은 엄청난 연습량을 짐작하게 한다. 김호산, 선재, 이경은 등 11명의 배우는 지난 4월 공개 오디션을 통해 100대1이 넘는 경쟁률을 뚫고 발탁됐다고 한다.

이 연극이 출발한 곳은 2012년 영국 런던의 한 소극장이다. 첫 관객 수는 고작 4명. 입소문을 타고 2014년 웨스트엔드에 입성, 이듬해 영국 최고 권위의 올리비에 어워즈에서 '최우수 코미디상'을 수상했다. 제목과는 정반대로 '점점 잘돼 가는' 길을 걸어온 셈. 국내 초연으로, 원작과 똑같은 연출과 무대를 활용한 '레플리카(replica) 방식'으로 진행된다. 내년 1월 5일까지.


조선일보 A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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