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영 김(Young Kim)

최경운 논설위원
입력 2018.11.08 03:16
1992년 미 캘리포니아주 41지구에서 연방 하원 선거에 출마한 김창준(공화당)은 처음에 중도 포기를 고민했다. 그곳엔 공화당 후보만 16명이 나왔는데 그 말고는 모두 백인이었다. 첫 여론조사에서 그의 지지율은 5%. 그러나 김창준은 후보 토론 때 "다른 후보와 달리 나는 미국 사회에서 10여 년간 열심히 노력해 시민권을 땄다. 누가 더 애국자인가"라고 외쳤고 한국계로는 처음 연방 하원 의원에 당선됐다. 김창준 당선 후 우리는 미 하원 의원 한 사람의 힘이 얼마나 큰지 실감할 수 있었다.

▶김창준은 스물두 살 때 미국에 건너가 자리 잡은 이민 1세대다. 연방 의원이 되기까지 31년이 걸렸다. 그러나 그가 3선(選)을 끝으로 1999년 물러난 이후 20년 한인 사회는 당선자를 내지 못했다. 6일 실시된 미국 중간선거 전까지 연방 하원 의원 435명 중 일본계·중국계·베트남계 같은 아시아 출신 의원이 10여 명 있지만, 인구 180만에 이르는 한국계를 대표하는 의원은 없었다. 

▶미 중간선거 캘리포니아주 39지구에서 영 김(56·공화당) 후보가 개표 막판까지 앞서며 선전했다. 그가 당선되면 한국계 여성으로는 처음이다. 인천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마치고 부모 따라 미국에 건너간 이민 1.5세대다. 1992년부터 20여 년간 에드 로이스 하원 외교위원장의 보좌관을 지냈다. 이번에 은퇴를 선언한 로이스의 지역구를 물려받았는데, 영 김은 북한 인권 문제에 관심이 많다.

▶미국에서 소수 인종 출신 정치인은 흔히 '두 선거구를 갖고 있다'고 한다. 지역구는 물론 교민 사회까지 챙겨야 한다. 때론 모국(母國) 정부의 대미(對美) 통로 역할도 한다. 영 김도 로이스의 보좌관 시절 미 한인 사회의 중앙 정계 창구가 되기도 했고, 위안부 결의안 채택과 독도 문제에도 관여했다. 남편 찰스 김은 "뜨거운 국물을 먹고 '시원하다'고 말하는 한국인의 정서를 아는 이민 1.5세대의 숙명 아니겠느냐"고 했다.

▶영 김의 선전은 미국 사회에서 '더블 마이너리티(소수 인종, 여성)'를 극복했다는 의미도 있다. 그가 당선되면 공화당 하원 의원 중 유일한 동양계라고 한다. 이번 하원 선거에는 한국계의 앤디 김(36·민주당)과 펄 김(39·공화당)도 출마해 선전했다. 앤디 김은 오바마 정부 때 백악관 이라크 담당 국장을 지냈고, 펄 김은 검사 출신이다. 두 사람 모두 30대로 그야말로 앞길이 창창하다. 차세대 한국계 미국인들이 미국 사회의 중심에서 존경받으며 더 큰 활약을 펼치길 기대한다.



조선일보 A3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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