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경제 단체'가 안 보인다

이인열 산업1부 차장
입력 2018.11.08 03:12
이인열 산업1부 차장
"우리가 다루던 분야는 아니지만 원론적인 입장을 밝힌다. 기본적으로 반대한다." 7일 오전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의 이사회가 열린 서울 시내 한 호텔 로비에서 경총의 고위 임원이 기자들에게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질문은 전날 정부와 여당이 협력이익공유제 도입에 합의한 데 대한 반응이었다. 협력이익공유제에 대해 경영계 내부의 반발은 한마디로 "이게 말이 되느냐"는 수준일 정도로 심각하다.

그런데 이 현안에 대해 경총은 물론 모든 경제 단체가 극도로 몸을 사리고 있다. 기자들이 전화를 걸어 물으면 마지못해 답하고 그나마 강한 톤은 주저한다. '반대한다"는 입장문이나 성명서는 아예 전무(全無)하다. 그러면서 "속으로 부글부글 끓는다"는 비(非)보도 전제의 발언만 내놓는다.

이번 정권에서 적폐로 몰린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아예 코멘트조차 손사래를 친다. 대신 산하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이 응할 뿐이다. 재계의 맏형격인 대한상의는 관련 임원 코멘트로 대신하고 입장문 등은 내놓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번 협력이익공유제는 입법화하겠다는 발상의 무모함은 차치하고 현실적인 실현 가능성이 매우 낮아 논란이 불가피하다. 개별 협력사나 개인의 기여도를 계산하는 게 매우 어려운 게 첫 번째다. 글로벌 소싱 시대인 요즘 외국 협력사가 많은데, 이들이 문제 제기를 하면 통상 이슈가 될 수 있다. 또 업종과 개별 기업, 프로젝트마다 개별 기업의 기여도를 산출하는 것이 너무 복잡하다. 이걸 노사 자율도 아닌 법으로 정해서 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경제 단체들은 성명서 하나 못 낸다. 물론 여기에는 짐작되는 이유가 있다. 현 정권 초기 경총의 고위 임원이 "세금을 쏟아부어 일자리를 만드는 건 임시방편에 불과하다"고 했다가,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성찰과 반성이 먼저 있어야 한다"는 공개 면박을 당했다. 이어 여당과 국가기관인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까지 나서서 그 임원을 맹공했고, 그는 사퇴 후 재임 시절 개인 비리로 검찰 수사를 받는 처지에 놓였다.

최악의 고용과 꺼져가는 투자·소비 같은 경제 상황에 대해 현장의 목소리를 가감 없이 전하는 게 주 임무인 경제 단체들이 통 보이지 않는다. 노동자와 기업인의 권익 대변은 각기 노동조합과 경제 단체의 몫이다. 어느 한쪽이 선(善)이고 다른 쪽이 악(惡)은 아니다. 새의 양 날개처럼 균형을 맞춰야 사회적, 경제적 균형점도 찾을 수 있고 조기 경보 기능도 가동된다.

하지만 지금 그 균형이 무너지고 있다. 협력이익공유제 도입을 주도한 중소벤처기업부는 6일 보도 자료에서 "대·중소기업을 대상으로 64회의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쳤다"고 했다. 의견 수렴 방법도 궁금하지만 '경제 단체 패싱'이 뼈아프다. 경제 단체는 이럴 때 의견 수렴 창구라도 되라고 존재하는 게 아닌가.


조선일보 A38면
네이버구독하기

오늘의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