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을… 술에 취하고 香에 취하다

송혜진 기자 최보윤 기자
입력 2018.11.06 03:01
[우리 술 칵테일] 난 오늘 '담양' 한 잔을 기울인다

"외국인 손님들에게 종종 '한국을 대표하는 칵테일은 뭐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아요. 그때마다 생각해보면 소맥보다 한국인이 사랑하고 즐겨 마시는 칵테일도 없더라고요. 그래서 이걸 만들었죠."

임병진 바텐더가 만든 우리 술 칵테일. 왼쪽부터 댓잎주와 매실원주를 섞은 '담양', 쌀 증류소주에 여주 땅콩시럽을 넣은 '여주', 제주 전통술로 만든 '제주'. /이태경 기자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라운지&바에서 일하는 김대욱 바텐더가 '이것'이라고 말한 술은 고급 쌀 증류 소주를 섞은 칵테일이다. 말 그대로 소맥이다. 이름은 '조선 하이볼'. 프리미엄 증류식 소주인 '화요' 30㎖에 국산 맥주 120㎖를 섞고 여기에 비터 오렌지(bitter orange)즙 한 방울을 떨어뜨려 향을 끌어올린다. 이른바 서울식 칵테일이다. 김대욱 바텐더는 "맛이 깨끗하고 심플한 데다 뒷맛이 청량해서 외국인들이 무척 좋아한다. 요즘엔 위스키·진으로 만든 칵테일보다 더 많이 찾는다"고 했다.

우리 술 칵테일이 인기다. 증류 소주나 문배주, 통영 고구마술, 함양 솔송주 등으로 완성한 칵테일이다. 한동안 먼 외국에서 공수해 온 수제 맥주보다 '남산 IPA' '강릉 페일에일'처럼 우리 지명을 붙이고 그곳 특유의 분위기를 표현한 맥주가 더 잘 팔렸던 것처럼, 요즘엔 우리 술 칵테일이 새로운 '로컬 드링크'로 떠오르고 있다.

포시즌스호텔 서울의 바텐더 안티노리가 소주에 오미자 시럽을 섞은 '세일러 피즈'.
2015년 월드 클래스 바텐더 대회에서 우승한 임병진 바텐더도 우리 술 칵테일을 개발하는 데 푹 빠진 사람 중 하나다. 그는 최근 서울 서촌에 있는 한옥을 개조해 '참(Cham)'이라는 바를 냈다. 외국 술로 만든 칵테일도 내놓지만, 경기도 여주의 쌀 증류 소주, 제주의 고소리술 같은 우리 술로 만든 칵테일도 만든다. 담는 잔도 신경 쓴다. 흔히 칵테일을 담는 데 쓰는 크리스털이나 유리잔 대신 우아한 도자기 잔을 사용한다. 임 바텐더는 "우리 술의 맛과 여운을 살리려면 백자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대신 잔을 미리 냉장고 등에 넣어 차갑게 온도를 맞추고 얼음을 적절히 활용해 맛을 유지하도록 애쓴다"고 했다.

우리 술과 전통주 매출이 점차 늘어난 것도 우리 술 칵테일의 인기를 부추긴다. 신세계백화점에 들어선 전통주 전문 가게 '우리 술방'은 해마다 70~80%씩 매출이 늘고 있다. '화요'의 매출 역시 2015년 100억원에서 지난해 144억원으로 뛰었다. 하이트 진로가 내놓은 '일품 진로'는 2013년 9만2000병 팔렸던 것이 2016년엔 200만 병이 팔렸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외국인 바텐더 중에서 우리 술 칵테일에 매료되는 이도 생겨나는 추세. 포시즌스호텔 서울의 바 '찰스 H'에서 헤드 바텐더로 일하는 이탈리아인 로렌초 안티노리씨는 요즘 안동소주와 화요, 복분자 등으로 칵테일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한국 술은 은은한 향과 맛을 낸다. 그 특유의 매력을 살려 서울식 칵테일을 만들어내는 게 즐겁다"고 했다.


[프레데릭 말] 씻어라, 뿌려라… 그리고 느껴라

'신(神)의 코'라고 불리는 남자 앞에 서려니 신경이 쓰였다. 샤워도 하고, 로션도 다시 발랐다. 인터뷰 장소로 향하는 차 안에서 가방을 뒤졌다. 상비하던 '프레데릭 말'이 보이지 않았다. 마침 비슷한 추출물의 향수가 손에 잡혔다.

프레데릭 말은 컨디션 유지를 위해 술·담배를 하지 않고, 과식하지 않는다. 그는“배가 부르면 냄새에 둔해진다”고 했다. /오종찬 기자
"내가 만든 향은 다른 향과 독보적으로 구분되는데, 오늘은 다른 걸 입고 오셨네요." 세계적 조향사이자 향수 브랜드 '프레데릭 말'을 탄생시킨 프레데릭 말(56)이 인사를 건넸다. "직업병이랄까요. 수천 가지 향기를 구분할 수 있거든요." 1960년대 프랑스 누벨 바그 시대를 연 루이 말 감독의 조카여서인지 푸른빛 앤더슨&셰퍼드 슈트를 입고 등장한 그는 말투며 제스처 하나하나가 마치 옛날 영화 영사기를 돌리는 듯 고혹적이었다. "열다섯에 만난 소녀의 향에 취한 날, 향수의 세계에 빠져들었지요. 향수는 침묵의 언어라고 생각해요. 소리를 내지 않았을 뿐 그녀는 자신만의 향을 통해 스스로의 매력을 분출하고 있었어요. 그날로 수많은 여성 뒤를 쫓아다녔지만, 지금은 '포트레이트 오브 어 우먼'이란 향수를 쓰는 아내의 향을 유일하게 사랑합니다."

이미 두 살 때부터 향수에 노출된 생이었다. 디자이너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친구였던 그의 할아버지는 디오르 향수를 세상에 처음 내놨고, 어머니는 디오르 향수의 아트 디렉터로 일했다. 세계적 조향사이자 겔랑 화장품을 만든 장 폴 겔랑이 살던 아파트가 곧 그들 가족 소유가 됐다. 벽에 밴 겔랑 향수 냄새를 덮기 위해 페인트칠을 여러 번 했던 어머니는 "세상엔 무엇으로도 덮을 수 없는 '향'이란 세계가 존재한다"며 "고유의 향을 갖는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해왔다.

완벽한 향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에서처럼. 최상의 향을 찾기 위해 365일 15℃로 맞춘 냉장 기법을 개발하기도 했다. "묘한 우연이라면, 제가 소설 속 주인공과 생일이 7월 17일로 같다는 겁니다. 하지만 단언하건대 완벽한 향이란 존재할 수 없어요. 향은 그 사람 체취와 어우러져 재해석되기 때문이지요. 그 어떤 완벽에 가까운 향수를 사용한다 해도 그 사람 내면에서 풍기는 악취는 덮을 수 없더군요."

그는 "향수를 뿌리는 법칙은 없다"면서도 "아침에 가장 정신이 맑아지는 향을 고르라"고 말했다. 중년 남성들에게 어울리는 유혹적인 향을 골라달라 하니, 제라늄 추출물이 들어가면 섹시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여성들은 튜버로즈(수선화)·아이리스가 들어가면 매혹적이란다. "삼촌이자 소설가인 장 도르메송은 구십 평생 똑같은 넥타이만 매고 다녔어요. 저는 서로 다른 100여 개 넥타이를 기분에 따라 바꿔 매지요. 향수도 마찬가지예요. 가장 중요한 거요? 좋은 비누로 우선 깨끗이 씻으세요!"

◇프레데릭 말이 전하는 향기 팁

1. 이성을 유혹한다는 ‘페로몬 향수’란 단어에 속지 말 것. 마케팅 용어일 뿐.

2. 사향노루에서 추출한 머스크 향이 페로몬과 유사할 수 있다. 중요한 건 배합.

3. 코의 건강이 안 좋으면 소금물로 코 샤워를 한다.

4. 원숙하고도 사랑스러운 향을 원하면 로즈와 샌들우드가 섞인 향으로.

5. 천연 나무 향의 베티버(vetiver) 성분 비누를 쓰면 심적인 진정 효과도 있다.

조선일보 A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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