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당신도 언제든 검찰에 털릴 수 있다

이명진 논설위원
입력 2018.11.06 03:15

'수사 편의 위해 구속 않는다'는 원칙 무너지고 압수수색 급증
검찰이 국민 삶에 갈수록 깊숙이 개입하는 '괴물' 된 건 아닌가

이명진 논설위원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적용된 '범죄 사실'이 100가지도 넘는다고 한다. 변호인도 세다가 헷갈릴 정도라는 것이다. 특수부 검사 수십 명이 넉 달간 이 잡듯 뒤져 내놓은 결과다. 한 사람 감옥에 보내는데 이렇게 많은 인력과 범죄 사실이 동원된 적이 있었나 싶다.

그런데 법 적용에 무리한 구석이 너무 많다. 돈 받은 비리는 한 건도 없다. 90% 가 '직권남용' 혐의 관련인데, 그중 대부분은 행정처 심의관들에게 '의무에 없는' 보고서를 쓰게 했다는 것이라고 한다. 민변 변호사가 방송에서 "내가 (그렇게 법 적용하라고) 검찰에 코치했다"고 떠벌렸다. 이런 식으로 처벌하면 살아남을 공직자가 별로 없을 것 같다. 일선 법원에 대외활동비 3억원을 나눠준 걸 '공보관실 운영비'로 속여 회계 처리했다고 국고 손실, 허위 문서 작성, 공무 집행 방해로 걸었다.

수사는 '재판 거래' 의혹을 규명하겠다고 시작했다. 그런데 행정처가 시킨 대로 판결했다는 판사는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반대 정황이 적지 않다. 전(前) 정권이 '응징'하려 했던 산케이(産經) 지국장은 무죄판결을 받았다. 전 대법원장 지시로 만든 행정처 의견서를 전달받았다는 재판장은 현 정권에서 대법관 지명을 받자 그 판결이 자신의 대표 판결이라고 했다. 켕기는 게 있다면 그리했을까. 검찰은 자기한테 유리한 증거만 내세웠지 불리한 증거는 쳐다보지 않았다.

행정처 차장은 구속 전 네 차례 소환 조사를 받았다. 스스로 증거물을 낸 적도 있다. 그런데 여당이 '특별재판부법안'을 밀어붙이며 검찰을 측면 지원하자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이 구속의 진짜 목적은 '증거인멸 우려'가 아니라 '윗선을 대라'는 것이다. 수사기관 편의를 위해 구속하지 않는다는 영장 실질 심사 20년 원칙이 무너졌다.

피의 사실 흘리기도 횡행했다. '불법'을 수사 불쏘시개로 써먹은 것이다. 이메일을 압수당한 고법 부장판사가 "위법 압수"라고 하자마자 "그도 중요한 수사 대상"이라는 검찰 관계자 말이 언론에 흘러나왔다. '가만있으라'는 협박이다. 전직 대통령들을 구속하고, 전 대법원장 기소를 목전에 둔 검찰은 누구도 맞서기 힘든 권력이 돼 가고 있다.

최근 고참 법관들이 검찰 수사 방식을 잇따라 비판했다. 이들은 "법원은 검찰에 영장을 발부해주는 기관이 아니다" "밤샘 조사로 만든 조서가 무효라고 선언해야 한다"고 했다. 일부 판사는 '이제 와 웬 뒷북?' '행정처 구하기'라고 딴지를 걸고 있지만 그렇게 넘길 일이 아니다. 압수 수색은 해마다 몇 만 건씩 늘어난다. 검찰과 수사기관들은 그 틈에 몸집을 불리고 국민 삶에 갈수록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

검찰이 작년부터 없애겠다고 한 밤샘 조사를 받은 사람이 올 상반기에만 682명이나 된다. 작년보다 훨씬 늘었다. 이들이 모두 전직 대통령, 전 정권 청와대 수석, 재벌 회장, 행정처 차장, 적폐 세력은 아닐 것이다. 당하고도 가만있으면 검찰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 최인석 법원장 말대로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 누구든 검찰 수사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고, 그 사실을 외면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며칠 전에도 젊은 판사 한 분이 필자에게 카톡 문자를 보내왔다. '저를 포함해 판사들이 너무 쉽게 영장 내주고, 검찰이 알아서 적법 수사 했겠거니 넘어간 것 반성합니다. 이런 반성이라도 하니 그나마 진흙탕에서 건진 연꽃이네요.' 검찰이 괴물이 된 건 판사들이 제대로 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성하고 고백하는 판사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


조선일보 A3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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