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꽃미남, 그의 이름은 '靑春'이었다

표태준 기자 이영빈 기자
입력 2018.11.05 03:00

[신성일 별세]
신성일 별세, 빈소에 조문 줄이어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의 신성일 빈소에는 동료 영화인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1960~70년대 활동했던 원로 영화감독과 배우의 조문이 4일 오후 이어졌다. '밀회' 등 신성일과 20편이 넘는 작품을 함께한 정진우 감독은 "배우 학원에서 만난 신성일의 눈빛에서 불량스러움을 봤고, 젊은이의 고뇌를 그릴 최적의 얼굴이라는 느낌이 들었다"며 "당시 그는 완벽한 흥행 보증 수표이자 영화 감독에게는 가장 쓸모있는 배우였다"고 했다.

이날 가장 먼저 빈소를 찾은 배우 최불암은 "우리 또래 연기자로 더 남았으면 좋았을 텐데, 반짝 별이 사라졌다"며 "생전 농담을 아주 좋아하고 솔직해 가끔 나보다 철이 없어 보일 정도로 순수한 사람이었다"고 했다. 배우 이순재는 "1960년대 영화 발전에 획기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라며 "그가 남긴 자료가 영화를 공부하는 후학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지난달 4일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레드카펫 행사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신성일.이미지 크게보기
지난달 4일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레드카펫 행사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신성일. /송정헌 기자
후배 영화인들은 '스타들의 스타'였던 그의 죽음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반응이었다. 빈소에서 눈물을 흘리며 나온 배우 김수미는 "얼마 전 같이 찍은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를 내 유작으로 하려 했는데, 선생님의 유작이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며 "불과 한 달 전 통화할 때 '암을 이겨낼 수 있다'며 자신 있어 했는데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공동장례위원장을 맡은 배우 안성기는 "1960~70년대 수많은 스타가 있었지만 신성일이라는 별빛을 따라갈 이는 없었다"며 "갑자기 떠나셔서 허망하다"고 말했다. 배우 박상원은 "배우가 스타라 불리며 대중의 주목받는 영광의 시대를 연 선배"라며 "추억이 있는 고향을 잃어버린 심정이다"고 했다.

1990년대까지 꾸준히 영화에 출연했던 신성일은 2000년 16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작품 활동을 거의 접었다. 2013년 18년 만에 영화 '야관문'에 주연으로 출연했지만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다. 거센 비난을 받으면서도 아내 엄앵란과 별거하는 동안 다른 여자를 만난 사실을 떳떳이 공개하기도 했다. 16대 국회의원을 지낸 소설가 김홍신은 "당시 성일이 형은 저와 함께 국회 회의 시작 전 도착해 끝나야만 일어나는 '국회 바보클럽' 일원으로 유명했다"며 "남한테 욕먹고 비난받을 것을 알면서도 바보처럼 자기 줏대를 꺾지 않는 이 시대의 걸물(傑物)이었다"고 했다.

신성일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은 다소 엇갈리지만, 그가 1960~70년대 한국 영화 전성기의 핵심이었다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다. '별들의 고향'을 연출한 이장호 감독은 "신성일은 한국인이 한국 영화를 보게 만든 배우"라며 "외국 영화와 비교해서 한국 영화는 질적으로 뒤처진다 여겼던 당시 대학생들도 '신성일 나오는 영화는 봐야 한다'며 영화관을 찾았다"고 했다.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신성일 회고전을 열었는데, 작품이 500개가 넘어 선정하는 데 진땀을 뺐다"며 "전 세계 영화사에도 이런 기록은 없다"고 했다.

유족들은 고인이 마지막 순간까지도 영화 얘기를 했다고 전했다. 신성일은 내년 이장호 감독과 안성기와 함께 영화 '소확행'을 제작할 예정이었다. 아내를 잃은 남자(안성기)와 옛날 물건에 집착하며 아날로그를 고집하는 장인어른(신성일), 그리고 이와 반대로 디지털 세대를 사는 딸의 세대 갈등을 아내의 목소리로 만들어진 AI 프로그램을 통해 풀어간다는 내용이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복수하고 잔인하게 서로 죽이는 막장 영화가 아니라 따뜻한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다"며 기획을 시작했지만, 결국 출연하지 못하게 됐다. 지상학 한국영화인총연합회 회장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본인이 직접 시나리오를 보고 각색까지 참여하셨다"며 "근래 몸을 제대로 못 가누는 동안에도 영화 얘기만 계속했을 정도로 마지막까지 열정적이었다"고 했다.

장례는 영화인장으로 치러진다. 발인은 6일 오전 11시. 유족으로 아내 엄앵란, 아들 석현·경아·수화씨가 있다. (02)3010-2230



조선일보 A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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