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재의 외식의 품격] 우리는 왜 떡볶이를 사랑하는가

이용재 음식평론가
입력 2018.11.08 10:00
‘죽고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을’ 정도로 한국인이 사랑하는 이 음식
물컹한 식감, 강한 양념은 서양인 입맛엔 안맞아
쌀떡과 밀떡 접전 팽팽... SNS 설문 결과 60%가 밀떡 선호

떡볶이는 과연 맛없는 음식일까. 그렇다면 떡볶이를 이토록 좋아하는 한국인 모두 미맹일까./조선일보DB
귀여운 상호만으로 떡볶이를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가게가 있다. 분당 정자동의 ‘고양이 부엌’이다. 실제로 떡볶이도 괜찮다. 국물이 많아 다소 찌개 같은 ‘즉떡(즉석 떡볶이)’인데 익으면서 숨이 죽는 콩나물과 가늘고 흐물거리는 ‘밀떡(밀가루떡)’의 질감 대조가 재미있다.

떡볶이의 전형인 매운맛은 참기름 향 물씬 풍기는 주먹밥으로 가셔낸다. 당면을 채운 평범한 제품에 ‘오동통 순대’라고 이름 붙여 입맛을 더 돋워주는, 작명 센스가 좋은 곳이다. 오후 세 시쯤, 하교 길에 들른 중학생 여남은 명이 야외 식탁에서 선 채로 냄비를 둘러싸고 국물에 볶은 밥을 앞다투어 먹는 광경을 보고 또래일 친구의 아이들을 떠올렸다. 힘들게 공부하는데 소소한 즐거움이라도 있어야지. 떡볶이라도 맛있게 먹어야지.

한창 떡볶이가 오명을 누렸다. ‘맛 없는 음식’ 또는 ‘양념 맛으로 먹는 음식’이라는 평가가 돌았다. 덕분에 입맛이 확 돌아 참으로 오랜만에 떡볶이를 찾아 나섰다. 대학을 졸업하고 왕십리를 떠나면서 오랫동안 발길이 닿지 않았던 신당동을 비롯, 서울을 헤매고 다니며 떡을 씹고, 양념에 튀김도 찍어 먹고, 오뎅 국물로 입도 가셨다. 그리고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떡볶이가 세계인 사랑 못 받은 건 ‘우리 탓’

떡볶이에 과가 있는 건 사실이다. ‘한식 세계화’의 대표 주자로 점찍었지만 인기를 얻는 데 실패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건 떡볶이의 잘못이 아니다. 우리는 떡의 쫄깃함을 높게 쳐 주지만 서양에서는 대체로 힘을 주어 씹어야 하거나, 물컹거리거나, 이나 입천장에 달라붙는 식재료를 좋아하지 않는다. 따라서 떡볶이는 애초에 세계 진출에 적합한 음식이 아닌데 우리에게 사랑 받는다는 이유로 밀어붙인 것이다.

떡볶이는 ‘양념 맛으로 먹는 음식’이라는 평가도 일리가 없지는 않지만 큰 의미는 없다. 애초에 탄수화물은 종을 불문하고 맛이 중립적이라 양념의 맛을 적극적으로 흡수한다. 그래서 계속 입에 들어가고 소화도 대체로 잘 되는지라 다이어트에도 탄수화물을 줄이라고 조언한다. 우리의 주식인 밥만 해도 간이 일절 안 된 탄수화물이고 김치를 비롯해 맛의 자기주장이 확실한 반찬으로 간을 맞춰서 먹는다.

빵도 크게 다르지 않아 버터나 잼을 발라 먹는다. 서양의 대표 탄수화물인 파스타도 고기의 단맛이나 소금의 짠맛, 안초비, 버섯, 토마토 등의 감칠맛 등을 적극적으로 흡수해 자신의 맛을 낸다. ‘파스타가 소스를 최대한 잘 빨아들여야 맛있다’는 말도 있고, 이를 돕도록 마카로니 같은 파스타는 표면에 세로로 골도 져 있다. 대량생산 파스타는 밀가루 반죽을 알루미늄이나 스텐레스 소재 틀에 압출하지만, 장인 정신을 살려 소량 생산하는 파스타라면 동 재질의 틀로 뽑아 표면에 미세한 주름이 가야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렇게 탄수화물의 성질을 살펴 보면 ‘떡볶이는 양념만으로 먹는 음식’이라는 비판은 썩 유효하지 않다.

◇쌀떡 vs. 밀떡 선호도 의외로 팽팽

떡볶이에 개선할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강남 교보문고 뒷건물 ‘덕자네 방앗간’은 그날그날 떡을 뽑아 쓴다. 그래서 어린 시절 설날마다 할머니를 따라가 방앗간에서 먹었던, 갓 나온 따끈따끈한 가래떡의 부드럽고도 쫄깃한 질감을 떡볶이로 맛볼 수 있다. 다만 양념의 매운맛이 강하다 보니 떡의 섬세함이 눌린다.

매운맛은 사실 맛이 아닌 통각, 즉 통증이다. 따라서 음식에서 매운맛이 두드러지면 간이 안 맞기가 쉽다. 매운맛이 대세인 한국 음식, 특히 외식에서 늘 체감하는 공통점이고 떡볶이도 자유롭지 않다. 고춧가루를 넣지 않은 백김치가 독자적인 맛의 세계를 확보한 것처럼 떡볶이도 매운 양념의 세계에서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 튀긴 민물 새우의 고명이 바삭바삭한 질감이 쫀득한 쌀떡과 잘 어울리는 신사동 루비 떡볶이의 ‘새우깡 떡볶이’도 고추장 바탕 양념이기는 하지만 떡볶이의 다양성에 일조하는 사례이다.

또한 떡볶이의 지평이 예상 외로 쌀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소셜네트워크(SNS) 트위터로 ‘쌀떡과 밀떡 가운데 무엇을 떡볶이의 재료로 선호하는가’라는 설문을 사흘에 걸쳐 돌렸는데 결과가 놀라웠다. 무려 123,073명이 자발적으로 무기명 설문에 참여했다. 이중 밀떡을 선호한다는 답이 60%였다.

설문 참가자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쌀떡 좋아하는 사람과는 겸상 안 한다’, ‘국물 많은 떡볶이는 흐물흐물한 밀떡, 졸여서 먹는 떡볶이는 쫀득한 쌀떡’, 심지어 ‘둘 다 좋은데 어쩌죠’, ‘지금 당장 먹고 싶어졌네요’ 등 너무나도 다양한 의견을 밝혔다.

과연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제 더 이상 떡이기에 쌀로 만들고, 따라서 떡볶이로 쌀과 떡소비의 돌파구를 찾겠다는 생각이 의외로 설득력이 없다고 봐야 한다. 탄성을 책임지는 단백질인 글루텐의 존재 덕분에 밀은 쌀보다 가공성이 좋아서, 심지어 떡도 쌀 제품보다 더 신축성을 지닌다. 한때 밀떡이 쌀떡에 비해 열등한 재료라는 인식도 있었지만 이제는 전세가 뒤집혔다고 보아야 한다.

우리는 정말 떡볶이를 사랑한다. 그리하여 떡볶이가 싫다고 말한 한 음식평론가가 광고하는, 지극히 모순적인 떡볶이일지라도 우리는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유명한 경구를 응용해서 말하자면 ‘과는 미워하되 떡볶이는 미워하지 말아’야 바람직하다. 한편 파리 구더기로 발효시킨 이탈리아의 치즈 카스 마르주처럼, 만드는 법이 위험을 내포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음식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과연 유효한지도 재고해봐야 한다.

◆ 이용재는 음식평론가다. 음식 전문지 ‘올리브 매거진 코리아’에 한국 최초의 레스토랑 리뷰를 연재했으며, ‘한식의 품격’, ‘외식의 품격’, ‘냉면의 품격’ 등 한국 음식 문화 비평 연작을 썼다. ‘실버 스푼’, ‘철학이 있는 식탁’, ‘식탁의 기쁨’, ‘뉴욕의 맛 모모푸쿠’, ‘뉴욕 드로잉’ 등을 옮겼고, 홈페이지(www.bluexmas.com)에 음식 문화 관련 글을 꾸준히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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