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ESSAY] 6·25 때 200만명 치료한 스웨덴 야전병원의 천사들

김성한 부산 남구청 구보 편집장
입력 2018.11.02 03:10
김성한 부산 남구청 구보 편집장

6·25전쟁 막바지인 1953년 당시 네 살이던 박만수(69)씨는 트럭에 치여 '서전(瑞典·스웨덴의 한자식 표기)병원'으로 불리던 스웨덴 적십자사 야전병원에 급히 이송되었다. 다섯 번에 걸친 대수술 끝에 왼쪽 다리를 절단하고 간신히 목숨을 건진 박씨는 생명의 은인인 스웨덴 의료진을 평생 가슴에 품고 살았다. 그는 자신을 치료하고 나무 의족(義足)까지 깎아 만들어준 여자 의료진의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 의료진은 그를 '사보(sabo)'라고 부르며 보살폈다.

6·25전쟁이 터지자 스웨덴은 의료지원단을 구성해 그해 9월 부산에 야전병원을 열었다. 서전병원은 1957년 4월까지 6년 7개월 동안 부산 서면과 남구에 주둔하며 아군은 물론 일반 시민과 적군도 치료했다. 모두 1200여 명이 파견돼 무려 200만명이 치료받았다. 변변한 의료시설이 없던 전쟁통에 '돈 없거나 못 고치는 병은 서전병원에 가면 낫는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내년 한·스웨덴 수교 60주년을 앞두고 서전병원 활동을 담은 다큐멘터리 '우리 잊지 맙시다(Let us not forget)'가 만들어지고 있다. 다큐 제작자인 라르스 프리스크 한·스웨덴협회장은 2004~2006년 판문점 중립국감독위원회의 스웨덴 대표로 근무하면서 서전병원에 대해 알게 됐고, 2014년 다큐 제작에 들어갔다.

다큐 제작팀은 지난해 11월 부산을 찾아 전쟁 중 이 병원에서 치료받은 환자들을 일일이 수소문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들이 가장 찾고 싶었던 사람은 당시 의료진이 '사보'로 부르던 '의족 소년' 박만수씨였다. 제작팀은 수소문 끝에 경남 밀양에 살고 있던 박씨를 찾았다. 박씨는 사진 속에 목발을 짚고 서 있는 빡빡머리 소년이 자신임을 알아보고 눈물을 흘렸다. 이 사진은 당시 의료진이 찍어 보관하고 있던 것을 다큐 제작팀이 입수한 것이다. 하지만 박씨에게 의족을 만들어주고 살뜰히 보살펴준 간호사 앨리스 올센슨씨는 안타깝게도 지난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큐 제작팀은 60여 년 전 의료진이 촬영한 야전병원과 피란 도시 부산의 모습을 담은 사진 100여 점을 모아 지난해 9월 부산에서 사진전을 열기도 했다. 당시 서전병원 의료진과 가족 등 12명도 부산을 찾아 병원을 거쳐간 사람들을 만났다.

서전병원에서 '두 번째 삶'을 찾은 이들은 60여 년 동안 가슴에 묻어둔 사연을 끄집어내며 눈시울을 붉혔다. 조군자(77)씨는 "16세 때 폐결핵으로 사경을 헤매다 서전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살아났다"며 "이후의 삶은 스웨덴 사람들이 준 선물"이라고 했다. 그는 10여 년 전 배우 록 허드슨을 닮은 금발의 군의관을 찾아 스웨덴을 방문했지만 찾지는 못했다. 세 살 때 앓은 충수염으로 3년간 입원한 류재영(67)씨는 "충수염은 그때만 해도 죽음에 이르는 병이었다"며 "의료진 중 나를 많이 안아준 파란 눈의 '에바' 선생님을 꼭 한번 만나고 싶다"고 했다.

서전병원 사진전을 함께 기획하고 한국인 환자를 찾는 데 참여한 필자도 다큐 감독과 인터뷰를 했다. 그는 "한국전쟁을 흔히 '잊힌 전쟁(The forgotten war)'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필자는 "전쟁을 기억하자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 은혜를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60여 년 전 전화에 휩싸인 한국을 찾아 도움의 손길을 내민 스웨덴 의료진은 결코 잊혀서는 안 된다. 서전병원은 우리가 두고두고 기억하고 그 은혜를 갚아야 할 생생한 역사이다.



조선일보 A32면
조선일보 구독이벤트

오늘의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