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14개월 만에 경질된 GE 회장

이인열 산업1부 차장
입력 2018.11.01 03:13
이인열 산업1부 차장

126년 역사의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이 흔들리고 있다. '발명왕' 에디슨을 모태로 1892년 설립된 GE는 명실공히 미국 제조업의 상징으로 불려왔다. 한국 기업들도 GE 벤치마킹에 열심이었다. 이는 잭 웰치, 제프리 이멀트 같은 GE의 스타 CEO 때문만은 아니다.

GE는 전기·전자 외에 금융·항공기 엔진·헬스케어·석유화학·발전·운송 사업 등을 하며 175국에서 직원을 30만명 이상 고용하고 있는 기업집단이다. 이른바 동아시아의 '문어발식(式) 재벌' 같은 형태였다. CEO가 이사회 의장까지 겸직하는 강력한 리더십 구조까지 갖추었다.

그런 GE가 올 6월 111년간 지켜오던 미국 다우지수 원년(元年) 멤버 자리에서 퇴출당하더니, 최근엔 존 플래너리 회장 겸 CEO를 14개월 만에 전격 경질했다. 플래너리 회장 직전의 125년 동안 GE에는 CEO가 단 10명 있었다. 이들의 평균 재임 기간은 12년 반이었다. 차기 CEO를 뽑을 땐 후임 후보자들을 정해놓고 수년간 다면 평가·검증을 거쳤는데, 이번엔 1년여 만에 CEO를 바꾼 것이다.

이유는 뭘까. 이미 알려진 주가(株價) 하락이나 우발 채무 발견 같은 설명으로는 충분치 않다. 플래너리는 회장 취임 전부터 GE의 구조조정을 고민했고, 취임 후 엄청난 구조조정을 했다. GE의 표상과도 같던 '전구(電球)' 등 10여 가지 사업을 정리하고 전력 부문에서만 1만2000명을 감원했다. 그것도 모자라 올 초엔 핵심 사업인 전력·항공·헬스케어 등의 분사(分社)를 검토하겠다며 사실상 그룹 해체 계획까지 밝혔다.

그래도 역부족이었다. GE 사정에 정통한 한 전문가는 "모든 조치가 한 발짝 늦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리더란 시장의 요구에 맞추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 요구를 감안해 한 발짝 '먼저' 조치해야 하는데, 그는 그러지 못했다. 결국 시장이 하자는 대로 했는데도 주가는 바닥을 치고, 자신은 쫓겨났다"고 말했다.

지금 글로벌 기업 생태계에서 중요 화두는 '스피드'이다. 무섭게 바뀌는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 속도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GE가 그룹 해체까지 고민한 것도 스피드에 맞춘 의사 결정 구조를 찾으려는 몸부림 성격이 있다. GE와 쌍벽(雙璧)을 이루는 독일의 거대 기업집단 지멘스도 회사 쪼개기에 전력하는 게 이를 보여준다.

그런 속도를 맞추지 못하자 기업이 흔들리고 CEO가 단명(短命)하는 것이다. 광속 시대에 또 하나 중요한 잣대는 냉혹한 판단력이다. 잘못된 판단으로 방향이 어긋난다면 결과는 예상 밖의 끔찍함일 수밖에 없다. 지금 한국 기업들의 '경영 스피드'와 '방향'은 문제없는가.



조선일보 A3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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