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 文 정부는 어떤 상황 되면 '실패' 인정할까

김홍수 경제부장
입력 2018.11.01 03:14

고용·부동산·증시·산업 등 붕괴음 곳곳에서 터져 나와
심판받고 항로 수정 않으면 복원력 잃고 경제 침몰할 것

김홍수 경제부장

문재인 정부 핵심 실세에게서 들은 얘기다. 대선 캠프 인사들이 청와대 정책실장 후보로 장하성 고려대 교수를 추천했을 때 문 대통령의 첫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고 한다.

"노무현 정부 때 교수 출신 이정우 실장을 발탁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다. 돌파력이 기대에 못 미쳤고, 경제 관료들한테 결국 포획되고 말았다"는 우려를 표명했다는 것이다. 캠프 인사들은 "장 교수는 다르다. 재벌 개혁 시민운동을 주도할 만큼 추진력이 있고, 소신이 뚜렷해 관료들에게 휘둘리지 않을 거다"고 설득했다고 한다. 안철수 대선 후보의 경제 교사였던 장 교수는 이렇게 J노믹스의 책사(策士)가 됐다.

장 실장은 지금 추천자들의 기대에 100% 부응하고 있다. 온갖 비판을 일축한 채 소득 주도 성장론을 줄기차게 밀어붙이고 있다. 일자리 정부에서 고용 참사가 발생하자 청와대는 "경제 패러다임 전환 과정에서 치러야 할 성장통(痛)"이라고 했다. 언제쯤 정책 성과가 나오느냐는 물음엔 "연말쯤부터 좋아질 것이다" "내년 상반기 이후 성과가 나타날 것이다"며 성패(成敗) 판정 시점을 계속 미루고 있다. 그러면서 고용이 마이너스(-)가 될까 겁낸 정부는 '대학 빈 강의실 불 끄는 사람' 같은 알바 일자리 5만7000개를 만드는 것을 일자리 대책이라고 내놨다.

다른 경제지표들도 최악이다. '투기꾼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지난해 8·2 부동산 대책을 내놨지만 1년 후 받은 결과물은 '미친 집값'이다. 중산층과 서민들에게 허탈함과 좌절감을 안겨줬지만 사과하는 사람도,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 성장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지표 '투자'는 두 자리 숫자여도 아쉬울 판에 연일 뒷걸음질이다. 산업 현장에선 붕괴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조선에 이어 자동차 산업이 무너지고 있고, 불길은 금융시장으로까지 번졌다. 증시(證市)가 폭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10월 중 외국인은 주식시장에서 4조6000억원어치 주식을 순매도했다. 한국 증시는 10월 중 세계 주요국 증시에서 가장 낙폭 큰 시장이란 오명(汚名)을 얻었다.

상황이 이쯤 되니 내부에서도 경고음이 나온다. 대통령 경제 자문 기관인 국민경제자문회의의 김광두 부의장은 소셜미디어(SNS)상에서 "경제 위기 조짐이 어른거리는데 청와대와 정부에는 전혀 위기의식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차량 공유, 원격 의료 같은 혁신 성장 과제가 번번이 규제 장벽에 가로막히자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장병규 위원장은 "관료들이 '내가 보직을 맡은 1~2년 동안만 문제가 없으면 된다'는 식으로 '폭탄 돌리기'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대통령과 핵심 경제 참모들은 여전히 경제정책 방향이 옳다고 우기면서 귀를 닫고 있다. 이 정부는 도대체 어떤 상황이 되어야 '실패'를 인정할까?

정치인들은 선거로 유권자의 심판을 받는다. 경제 분야에선 심판자가 따로 없다. '경제 성적표'가 그 역할을 한다. 현 경제팀은 계속 답안지 제출을 미룰 게 아니라 낙제 여부를 가늠할 기준을 제시한 뒤 납세자들의 '심판'을 받아야 마땅하다.

이를테면 일자리·혁신 정부를 내세운 만큼 고용률(9월 현재 61.2%)이 60% 미만으로 떨어진다거나 투자가 3분기 연속 뒷걸음질한다면(현재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상태) '실패'로 인정하고 소득 주도 성장의 깃발을 내려야 하지 않을까. 루쉰이 쓴 소설 '아Q정전'의 주인공처럼 '정신승리법'으로 얼마간 더 버틸 수는 있겠지만, 그러는 사이 한국 경제의 복원력은 심대하게 훼손될 것이다. 항로 수정의 골든 타임을 놓치면 한국 경제에 남은 코스는 침몰뿐이다.



조선일보 A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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