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색무취’ 옷으로 해외 시장까지…30주년 맞은 '데무' 박춘무 디자이너

김은영 기자
입력 2018.10.31 10:00
남대문에서 장사하다 만든 ‘데무', 이젠 세계 40여 개 매장에서 팔려
검은색, 해체주의적인 옷…‘이게 옷이냐’ 혹평, 결국 ‘코리아 아방가르드' 성취

패션 디자이너 박춘무가 데뷔 30주년을 맞아 그동안의 활동을 정리한 회고전을 열었다./데무 제공
"우리 옷이 강하다고요? 실제론 순한 사람만 입는데(웃음)…. 저는 튀는 게 싫어요. 첫눈에 화려한 옷보다, 보면 볼수록 은근한 멋을 내는 걸 좋아하죠."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리는 특별한 전시가 화제를 모은다. 2019년 봄/여름 헤라서울패션위크의 명예 디자이너로 선정된 패션 디자이너 박춘무(64)의 데뷔 3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다. 전시 명은 ‘무(無)로부터’. 24일 전시장에서 박춘무 디자이너를 만났다. 짧은 머리에 검은색 코트를 입은 모습에서 강한 카리스마가 풍겼다. 마치 그의 옷처럼. 1988년 데뷔해 30년간 여성복을 만들어왔지만, 그의 옷에선 흔히 볼 수 있는 리본이나 레이스, 꽃무늬 장식을 볼 수 없다. 색상도 검은색과 회색, 흰색 등 무채색이 대부분이다.

이번 전시에는 협업 작품을 제외하고는 과거에 선보였던 옷을 그대로 걸었다. 세탁비만 1000만원이 들었다. 놀라운 건 각기 다른 시기에 제작된 옷들이 마치 한 시기에 만든 것처럼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는 것이다. 옷마다 달린 시즌 태그가 아니었다면 눈치채기 어려울 만큼. 눈 깜박할 사이에 유행이 지나는 패션계에서 수십 년간 일관된 감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일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반복하다 보니 그런 것 같다." 그다운 간결한 답변이었다.

◇ "이게 옷이냐?" 혹평에도 자기 스타일 고수해

박춘무는 아동복 사업을 하는 집안에서 자랐다. 미술학도가 되고 싶었지만, 가세가 기우는 바람에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옷 장사에 뛰어들었다. 남대문 시장에서 옷을 떼다 명동 소매점에 팔았는데, 장사가 잘됐다. 나중엔 가게를 세 개나 늘렸다. 젊은 나이에 큰돈을 벌었지만, 정작 본인은 행복하지 않았다. 그는 "나의 20대는 돌아가고 싶지 않을 만큼 지독히 힘들었다"라고 회고했다.

무채색의 의상들과 구조적인 설치물이 조화를 이룬 ‘무(無)로부터’ 전시./데무 제공
뒤늦게라도 하고 싶은 걸 해야겠다는 생각에 1987년 잘되던 사업을 접고 국제복장학원에 들어갔다. 이듬해 동료 디자이너 2명과 데뷔 패션쇼를 열었다. 꽃무늬가 들어간 화려한 여성복 사이에서 색도 장식도 없는 그의 옷은 파격 그 자체였다. 오죽하면 패션 잡지 ‘멋’은 ‘무색무취(無色無臭)의 옷이다. 이건 옷도 아니다’라는 악평을 실었다. 그런데도 박춘무는 자신의 스타일을 고집스럽게 밀어붙였다. "옷 장사를 그만둔 이유가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서였는데, 타협할 바엔 안 하는 게 나았다."

1988년, 34세의 나이에 압구정동에 데무(DEMOO)라는 옷가게를 열었다. 자신의 이름 끝 자에 ‘~부터’라는 뜻을 지닌 프랑스어 ‘드(de)’를 붙여,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된다는 포부를 담았다. 브랜드명을 함께 지은 이는 세계적인 설치 미술작가 최정화(58)다. 당시 매장 인테리어 업체 담당자였던 최 작가는 데무의 처음을 만드는 데 많은 힘을 보탰다. 그때만 해도 두 사람은 30년 후 각자의 자리에서 대가가 될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 ‘~척’하는 것 질색…꾸밈없이 담백한 ‘데무 스타일’

옷은 생각보다 잘 팔렸다. 기존의 여성복과는 달랐지만, 중성적이고 독특한 콘셉트에 신선한 매력을 느낀 여성들이 모여들었다. 남성복 같은 여성복, 지퍼로 구조를 자유자재로 바꾸는 옷, 밑위가 긴 배기바지 등 실험적인 옷들이 불티나게 팔렸다. 처음엔 혹평을 보냈던 비평가들도 그의 옷에 ‘코리아 아방가르드’라는 근사한 별명을 붙여줬다. 1999년에는 프랑스 파리 컬렉션 무대에 올랐고, 2010년부터는 뉴욕 컬렉션에 참가했다. 한복의 동정과 깃을 응용하거나 수묵화를 입체적으로 표현한 옷을 선보여 호평을 얻기도 했다. 그의 옷은 국내 매장 외에도 해외 40여 개 매장에서 만날 수 있다.

그동안 데무가 선보인 의상들. 출시 시기는 다르지만 하나의 컬렉션처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김은영 기자
그는 관습에 얽매이거나 꾸미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옷도 화려해서 튀는 것보다, 입는 사람을 돋보이게 해야 한다는 게 지론이다. 무채색을 주로 쓰는 것도 그 때문이다. 데무의 옷은 개성이 강하다 보니 유행에 맞을 때는 잘 팔리다가도, 유행에서 멀어지면 매출이 뚝 떨어진다. 그런데도 흔들리지 않고 30년을 버틴 원동력은 무엇일까? 박춘무는 "취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잘 나간다고 오버하면 안 된다. 1990년대 장사가 잘될 때도, 광고 한 번 하지 않고 알뜰하게 살림을 꾸렸다. 그래야 힘들 때 변하지 않고 버틸 수 있으니까. 패션은 예술이 아니다. 직원이 100명이면, 딸린 식구까지 수백 명이 먹고 살아야 한다." 예술적인 옷을 지으면서도, 긴장을 늦추지 않는 사업가의 면모가 느껴졌다.

◇ 30년 장수 비결은 "취하지 않는 것"

박춘무는 지난 30년간의 작업을 생생히 기억했다. 60대라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그의 행동과 말투는 젊고 힘이 넘쳤다. 오가닉 의상만 모아놓은 전시물 앞에서는 "친환경적인 옷을 다시 하고 싶다"고 했고, 한복을 응용한 옷을 선보인 뉴욕 컬렉션 영상을 보면서는 "한국적인 디자인을 더 해보고 싶다"며 의욕을 드러냈다. 그에게 은퇴란 아직 먼 미래 같았다.

무채색을 사용해 구성주의적인 회화 작품을 선보인 박춘무. 간결하면서도 강한 선이 그의 옷과 닮았다./김은영 기자
이번 회고전에서는 박춘무가 취미 삼아 그려온 크로키와 회화 작품도 만날 수 있다. 작품을 전시하기로 한 후 그는 어떤 패션쇼보다도 긴장감에 시달렸다. 매일 그림을 그렸고, 어떤 날은 일과를 마치고 새벽 5시까지 작업했다. 다행히 반응이 좋았다. 인터뷰 당일 아침에는 그림을 팔라는 제안도 받았다.

"구조적이고 정밀한 느낌을 좋아해 구성주의적인 작품을 주로 그리는데, 내 옷과 닮았다고 한다. 처음 옷 장사를 시작했을 때는 대학 4년 등록금을 버는 것이 목표였는데, 그걸 40년 넘게 하고 있다. 큰돈을 버는 건 아니지만, 당장 그만둬도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있다. 내가 하고 싶은 옷을 아직도 하고 있고, 물감 살 돈도 충분하니까." 비로소 화가의 꿈을 이룬 박춘무의 얼굴이 발갛게 상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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