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이 만난 사람] "은행에 직접 전화한 건 매우 이례적… 美, 모든 자금 흐름 들여다봐"

입력 2018.10.29 03:12 수정 2018.10.29 07:05

美 재무부는 왜 국내 은행들에 전화했을까… '국제금융통' 신제윤 前 금융위원장

미국 재무부가 지난달 산업은행, 기업은행 등 국내 7개 은행에 '대북 제재 준수를 요구했다'는 보도가 나온 뒤 신제윤(60) 전 금융위원장을 만났다. 자금세탁방지국제기구(FATF) 의장, 국제금융협력대사를 지낸 '국제금융통'이다.

―미 재무부의 테러·금융정보국(TFI) 소속 수석부차관보가 국내 은행 본점의 준법감시인(부행장급)과 '콘퍼런스 콜(전화 회의)'을 했다고 한다. 그는 이란 제재를 담당했던 핵·테러 자금 전문가라는데.

"이 조직은 재무부 장관의 통제도 받지 않는다. 2005년 김정일 정권의 비자금을 관리하던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을 적발한 것도 이 조직이었다. 전 세계에 금융 결제망을 갖고 있는 미국은 모든 자금 흐름을 들여다본다."

―이 시점에 왜 미 재무부가 이런 전화를 걸어온 것인가?

"이 은행들이 준비하는 남북 경협 사업이나 조직 확대와 관련된 언론 보도 내용을 확인했다고 들었다. 그러면서 '현 상황에서 대북 제재를 위반해서는 안 되니 조심하라'고 말했다고 한다. 은행에 직접 이런 전화를 해온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국내 은행들이 북한과 거래한 단서가 포착된 것인가?

"포착됐다기보다 약간의 징후가 있었던 것 같다. 미국 측이 '우리가 지켜보고 있고 만약 그렇게 하겠다면 사전 승인을 받으라'는 경고의 의미로 보인다."

―한전 계열사인 남동발전이 북한산 석탄을 몰래 수입한 것이 드러나 시끄러웠다. 국내 은행의 연루설이 있었는데 이와 무관한가?

"그런 혐의가 있으면 공개 통보 없이 바로 조사에 들어갔을 것이다. 결과에 따른 벌금과 제재 수위를 전해오지 사전에 알려주지 않을 것이다."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은 “돈 많이 벌어 고용 늘리고 세금 많이 내는 것이 애국”이라고 말했다. /김지호 기자
―북한산 석탄 수입 건은 정부 발표처럼 '미국의 양해가 이뤄졌다'고 볼 수 있나?

"어느 정도 소명됐는지 모르나, 조사가 계속 진행 중일 것이다. 미국 금융 당국자를 만나보면 '아주 작은 부분을 놓쳐 9·11 테러가 발생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금융 제재는 우리 상상 이상으로 까다롭다."

―이러면 어떻게 되나? 문 대통령은 '국회 패싱'까지 하며 남북 경협 사업을 위한 평양 선언을 비준했다.

"미 재무부만 그런 게 아니고, 얼마 전 '자금세탁방지국제기구'도 대북 제재 결의를 철저히 이행·준수할 것을 강조했다. 북한은 자금세탁방지국제기구의 블랙리스트에 올라있어 다른 국가들과 금융거래를 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 우리은행과 농협은행이 각각 개성공단과 금강산 지점을 재가동하는 게 가능한지, 어떤 제재에 저촉되는지, 그걸 과연 풀 수 있는지 먼저 점검해봐야 한다."

―문 대통령이 은행들을 앞세워 밀어붙이겠다면?

"일차적으로 어마어마한 벌금이다. 미 달러 시장에서 퇴출될 수도 있다. 이는 파산이나 다름없다. 프랑스의 BNP파리바 은행은 2014년 이란, 쿠바 등 제재 대상국과의 금융거래 혐의로 89억달러(약 10조원)의 과징금이 부과됐다."

―올랑드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을 만나 '없었던 일로 하거나 벌금을 대폭 깎아달라'고 했지만, 내가 알기로는 1억달러를 깎아줬다는데?

"9ㆍ11 테러를 경험한 미국은 이런 점에서 굉장히 엄격하다. 가령 2015년 이란과의 핵 협상이 타결됐는데도 유럽계 은행은 이란에 들어가지 못했다. 미국이 자신의 금융망(달러 결제)을 이용할 수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란에 대해 원유 수출 등 일반 제재만 풀어주고 금융 제재는 풀어주지 않았는데.

"내가 '자금세탁방지국제기구' 의장을 맡고 있을 때였다. 일본 센다이에서 열린 G7 재무장관과 중앙은행총재 회의가 열렸는데, 바로 이 문제로 유럽 국가들이 미국에 세게 항의를 했다. 하지만 미 재무부 장관은 '돌아가서 검토는 해보겠다'고만 했다. 결국 풀어주지 않았다."

―당시 미국의 주도로 영·프·독·중·러 등이 참여해 핵 협상이 타결됐다. 외신(外信)에서는 이란의 경제 제재가 풀렸다고 전했다. 이듬해 이란을 직접 가볼 기회가 생겼다. 맥도널드나 KFC 가게, 미국계 체인 호텔, 외국계 은행은 없었다. 금융 제재가 안 풀렸기 때문이었다. 이란 정부 측 인사마다 "우리는 핵 협상에서 제시된 약속을 다 이행했다. 미국을 믿을 수 없다"며 억울해했다.

"지금 북한이 '테러국 블랙리스트'에 올라가 있는 것처럼, 이란은 핵 협상이 타결된 뒤에도 그 '블랙리스트'에 들어있었다. 이 때문에 이란이 석유를 팔아먹는 것은 봐주지만, 국제 무역·금융 거래의 수단인 달러로 대금을 결제하는 것은 허용해주지 않았다. 실질적인 경제 봉쇄나 다름없다."

―미국 국내법에서 이를 풀어주지 않은 걸로 알고 있다.

"정상회담에서 합의가 되거나 미국 정부가 승인하면 다 된 것처럼 보여도, 미국 연방법과 주법에 의한 규제가 살아남아 있다. 미국만 그런 것이 아니라 EU나 일본도 마찬가지다. 금융 쪽은 굉장히 보수적으로 움직인다. 가령 장관이 사업을 승인해줘도 실무자가 사안을 하나하나 따지는 것과 같다."

―우리나라 은행들이 대(對)이란 금융 제재 위반으로 적발된 사례가 있다는데.

"우리은행과 기업은행이 이란과의 거래에서 제재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으로 미국 조사에서 드러났다. 현재 벌금과 제재 수위에 대해 조정 중이다."

―현재 청와대의 전대협 출신 참모들은 '남북 관계 개선을 미국이 막으면 우리 민족끼리 하겠다'고 나설 기세인데.

"현실적으로 우리 민족끼리는 불가능하다. 미국과의 관계는 국익 차원에서 정말 중요하다. 2008년 리먼 사태에 의해 글로벌 금융 위기가 터졌을 때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뻔했다. 당시 미국이 원화를 달러로 바꿔주는 스와프를 해줘서 극복할 수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 한·미 관계가 좋아 가능했다고 본다."

―북한의 현행법과 제도하에서 남북 경협이 가능한가. 무엇보다 외국 자본이 투자하겠나?

"경협은 북한의 개혁·개방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북한의 합영법, 중앙은행법, 상법, 회사법을 먼저 바꿔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외국 자본의 투자가 불가능하다."

―김대중·노무현 시절 북한과 했던 것은 경협이 아니었나?

"그건 경협이 아니었다. 인도적 지원과 교류였다. 중국의 1979년 개혁·개방과 베트남의 1986년 도이모이 개방처럼 이뤄져야 한다. 적어도 경제 노선은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를 받아들여야 경협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문 대통령의 구상에는 북한의 법과 제도를 바꾸는 것이 들어있지 않다. 같은 민족으로서 물자를 지원하고 철도를 놓아주는 식인데.

"지금은 마중물을 붓는 단계로 볼 수 있다. 북한의 반응이 싸늘해지면 무산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점차 북한의 제도를 개혁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얼마나 이행하느냐와 맞물려 있지만, 경협은 한국 경제의 돌파구가 될 수 있는 것은 틀림없다."

―박근혜 정부 시절 당신은 금융위원장으로 일했다. 그때도 북한 비핵화 문제는 있었다. 하지만 '통일 대박' 선언이 나오자 북한 경제 개발에 필요한 재원 조달 방안과 경제 통합에 필요한 금융 시스템의 구축 방안에 대해 발표했다. 그때와 지금은 어떻게 다른가?

"북한 경제를 살리려면 정부 재정이나 국제 원조 자금보다는 민간 자금이 주류가 돼야 하고 이를 위해 북한의 금융 시스템이 개혁돼야 한다는 청사진을 발표한 것이다. 민간 상업은행 역할을 하고 있는 중앙은행제도를 개편하고, 일정 기간 고정환율제도를 실시하며, 정책금융기관을 신설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외국인의 토지 소유를 전면 허용하는 합영법 등의 법 제도도 언급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야 '통일 대박'이 될 수 있다."

―문 대통령이 북한에만 신경 써 우리 경제가 지금 어떤 지경인지 모른다는 말도 있다. 최저임금 인상 등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을 어떻게 보는가?

"소득을 올려 성장을 높이겠다는 정책은 역대 어느 정부에나 있었다. 최저임금의 인상과 주 52시간제는 정책 타기팅이 잘못됐다. 인상된 최저임금을 주는 쪽은 편의점이나 음식점 점주 등 대부분 영세한 자영업자다. 주 52시간으로 혜택받는 쪽은 주로 대기업 노조다. 노동시장에는 작은 임금이라도 오래 일할 사람이나 비정규직의 수요가 있다. 이런 다양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미숙련 노동자나 자영업자 등 어려운 사람들이 가장 피해를 본 것이다."

―그렇다고 경제 전반이 이렇게 허물어질 수가 있나?

"생산 인구가 주는 것이 큰 요인이고, 현 정부가 기업 부문을 위축시키는 게 가장 문제다. 기업 하는 사람을 부패나 갑질, 금수저 논란으로 몰아간다. 누가 기업 할 마음이 생기겠나. 정부·기업·가계 등이 있다면 돈을 버는 쪽은 결국 기업이다. 돈 많이 벌어 고용 늘리고 세금 많이 내는 것이 애국이다. 기업을 성장시켜 가계소득을 늘려야 소득 주도 성장도 되는 것이다."

―미·중 무역 전쟁이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은 어떤가?

"이게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리스크다. 지금은 무역 관세로 총질하는데 결국 환율·금융 전쟁으로 간다. 중국의 위안화 가치는 계속 떨어지고 있다. 중국과 제품 가격 경쟁을 하는 우리는 힘든 시기를 맞게 됐다. 미국이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하면서 대미 흑자를 내는 우리에게도 같은 조치를 취하면 최악이다."

―중국은 미국의 경쟁자이지만, 한국은 소위 동맹국인데.

"경제에는 동맹국이 없다. 철저한 이해 당사자다. 오바마 대통령도 당선되자마자 다 합의 끝난 FTA에서의 자동차 부문을 재협상토록 했다. 경제를 우선으로 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약간 더 심할 뿐이다. 경제 우선주의자에 대해 '철학과 이념, 가치, 정의감도 없다'고 말하는데, 그건 최형 같은 언론인이나 따지는 것이고, 경제는 이와 관련 없다. 경제야말로 냉정한 현실 그 자체다."



조선일보 A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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