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탕집 성추행 판결' 맞불집회 '썰~렁'… "남자라서 유죄" VS "저런 게 2차 가해"

박소정 기자 최지희 기자
입력 2018.10.27 16:44 수정 2018.10.27 20:59
당당위 "사법부가 남성에게 '유죄추정 원칙’ 적용'"
남함페 "당당위 집회 자체가 피해자에게 2차 가해"
양측 모두 참가자 너무 적어 집회 시작 늦춰져

‘곰탕집 성추행 사건’ 법원 판결에 대한 찬반(贊反) 집회가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역 일대에서 동시에 열렸다. 당초 양 집회 주최 측은 각각 1만5000명(‘당신의 가족과 당신의 삶을 지키기 위하여’, 당당위), 2000명(‘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남함페)이 모일 것이라고 경찰에 신고했으나, 이날 집회는 눈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 많지 않은 인원이 참석했다.

27일 오후 1시 30분쯤 서울 종로구 혜화역 인근에서 열린 ‘당당위’ 집회 참가자들이 도로에 앉아 있다. 참가자들은 주최 측이 나눠준 ‘헌법 수호! 유죄추정 반대!’라는 팻말을 들었다./ 최지희 기자
‘곰탕집 성추행 사건’은 지난달 강제추행 혐의로 1심에서 징역 6개월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남편에 대한 판결이 부당하다며 아내가 국민청원을 올리면서 공론화됐다. 판결을 비판하는 네티즌들이 당당위라는 인터넷 카페를 만들어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된) 남성에 대해 유죄 추정 원칙을 적용한 사법부를 규탄한다"며 먼저 시위를 예고했다. 그러자 이에 반대하는 페미니즘 소모임 남함페가 "당당위 집회는 성추행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라며 맞불 집회를 열겠다고 나섰다. 혜화역은 지난 5월 초 홍익대 몰래카메라 사건 수사가 성차별적이었다고 비판하는 ‘생물학적 여성’ 중심의 대규모 시위가 수 차례 열렸던 상징적 장소다.

당당위 측 집회는 예정보다 30분 늦은 1시 30분에 시작했다. 참가자가 워낙 적어 사람이 더 오기를 기다리다가 늦어졌다. 이날 오후 2시 30분쯤 집회에 참가한 사람은 120여명이었고, 참가자 중 여성도 일부 있었다. 당당위 김재준(27·남) 운영자는 "남성에게 사법부가 ‘유죄추정의 원칙’을 적용하는 것을 비판하기 위해 모였다"며 "유죄 증거를 찾는 것보다, 내가 죄가 없다는 증거를 찾는 게 훨씬 어렵다. (무고) 피해자 가족들은 생업을 멈추고 뛰어다니지만, 천운이 따라야 무죄 증거를 겨우 찾을 수 있다"고 했다.

당당위 김재준 운영자가 27일 오후 서울 혜화역 인근에서 열린 집회에서 시위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최지희 기자
집회에 참가한 김모(61·남)씨는 "당당위 카페에 들어가보니 곰탕집 사건과 비슷한 사례가 많더라. 형벌이 가혹한 것 같다"며 "증거가 없는데 사법부가 일방적으로 판결을 몰아가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 자원봉사자로 참가한 최영민(22·남)씨는 "곰탕집 성추행 사건처럼 재판에서 남성이라고 불이익을 당하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했다. 집회 참가자 박진주(21·여)씨는 "곰탕집 성추행 사건은 남성과 여성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가족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며 "사회 전반적으로 자신의 성별과 관계 없이, 남녀 간에 불공정한 부분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했다.

이날 당당위 집회 측은 ‘거짓 성추행 신고’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전북 부안 상서중학교 고(故) 송경진 교사의 아내 강하정씨와 ‘양예원 사진 유출 사건’에 연루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스튜디오 실장의 여동생 A씨가 보낸 원고를 대독했다. 강씨는 글에서 "경찰은 남편에 대해 혐의 없음 의견으로 내사 종결했지만 학교에서 직위해제를 당했다. 교육청은 형사처분과 행정처분은 별개라며 애당초 남편을 성추행범으로 단정지었고, 항변은 묵살됐다"고 했다. A씨는 "무고 혐의를 받고 있는 ‘피의자’ 양예원에 대하여 공정한 수사를 통해 죄가 있다면 사법부가 그에 합당한 판결을 했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27일 오후 서울 혜화역 인근에서 열린 ‘남함페’ 측의 집회에서 사회자가 ‘당당위’의 집회 포스터를 찢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주최 측의 요청으로 사회자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했다./ 박소정 기자
남함페 측도 참가자가 적어 예정보다 늦은 오후 1시 36분에 집회를 시작했다. 오후 2시 30분 현재 참가자는 41명 뿐. 이 중 남성이 29명으로, 전체 참가자의 70%를 넘었다. 남함페 운영진 남모(23·남)씨는 "당당위가 곰탕집 성추행 사건 관련 집회를 연 과정 자체가 2차 가해라고 생각한다. 사법정의를 외치려면 대법원 앞에서 집회를 열어야 한다"라고 했다.

남함페 회원으로 닉네임 ‘은결’을 쓰는 A(20)씨는 단상에 올라 "당당위는 2차 가해를 지금 당장 중단하라. 전형적인 가해자 옹호 논리다"라고 했다. 닉네임 ‘회색세포’를 쓰는 손모(22·남)씨는 "곰탕집 성추행 사건은 CCTV 증거가 있다. 그럼에도 피해자를 비난하는 한국 사회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고 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니 손이 떳떳해야 니 가족이 당당하다" "니가 진짜 당당하면 뭐가 그리 불안하냐" "오랜만에 옳은 판결 니가 뭔데 부정하냐"는 구호를 함께 외쳤다.

27일 오후 서울 혜화역 인근에서 열린 ‘남함페’ 집회/ 박소정 기자
집회에 참석한 문모(33·남)씨는 "남성들이 성평등에 대해 학습하지 않아 약자에게 분노를 쏟아내는 데 익숙하다. 성희롱을 남성들이 쉽게 저지를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범죄라는 사실도 남성들은 인식하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김모(21·남)씨는 "(불법촬영 반대) 혜화역 시위에도 가고 싶었지만 생물학적 여성만 참가 가능해 가지 못했다"라며 "강남역 살인 사건을 보고 이런 이슈에 관심을 갖게 됐다. 죄책감이 들어 뭐라도 해야겠다 싶었다"라고 했다.

단 몇 명만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당당위 집회와 달리, 남함페 집회 참가자들은 남녀 가릴 것 없이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참석했다. 한 여성은 자유 발언을 신청해 "(우리를 비판하는 쪽에서는) 당당하면 마스크를 쓰지 말라고 한다. 자기들은 기득권 층이니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대규모 시위가 예상되면서 경찰은 이화사거리에서 혜화동로터리까지 1.1㎞ 구간에서 4차로에 걸쳐 차량 통행을 막았다. 그러나 신고에 크게 못 미치는 인원만 참석해 썰렁한 분위기가 연출됐고, 차들은 열려 있는 2차로로 통행하느라 교통 정체가 빚어졌다.

서울 은평구 증산동에 거주하는 김진태(38·남)씨는 "날이 화창해 아내와 함께 유모차를 끌고 대학로에 나왔는데 길이 너무 막히고 시위 소리로 시끄러워 무슨 일인가 싶었다"며 "(집회에 참가한) 사람은 앞 부분에만 모여있는데 왜 길 전체를 다 막느냐, 주말에 거리를 시민에게 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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