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프랑스에 대북 제재 완화 요청했다 거부당한 문 대통령

입력 2018.10.17 03:20
문재인 대통령은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적어도 북한의 비핵화가 되돌릴 수 없는 단계에 왔다는 판단이 선다면 UN 제재의 완화를 통해 북한의 비핵화를 더욱 촉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전체 핵 규모를 공개하고 상당 정도의 핵무기를 폐기하는 데까지 갔다면 비핵화가 되돌릴 수 없는 단계에 왔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실제 그 정도까지 진도가 나가면 문 대통령 제안처럼 점진적인 제재 완화라는 당근을 북에 주는 것이 완전한 핵 폐기를 촉진하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비핵화는 되돌릴 수 없는 단계는커녕 출발점 부근에서 맴돌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최근 방북한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에게 '핵 리스트 신고 거부' 의사를 밝히면서 오히려 종전 선언과 제재 완화를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미 국무부는 이 보도를 부인하는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북한이 보유한 핵무기와 핵시설, 핵물질을 신고하는 것이 비핵화의 입구다. 북한의 핵을 완전히 없애려면 북한이 핵을 어디에 얼마나 갖고 있는지부터 알아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다. 그런데 북은 그 첫 발자국 떼는 조치를 '강도적 요구'라며 반발하고 있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비핵화가 상당 정도 진전된 것처럼 말한다. 지난달 말 한·미 정상회담 때는 "이제 북한의 핵 포기는 되돌릴 수 없을 만큼 공식화됐다"고 했다. 그런데 미국 북핵 전문가들은 풍계리 핵실험장과 동창리 미사일 발사대 폐기 조치에 대해 실질적인 핵 폐기가 아니라고 본다.

문 대통령은 한두 달 내에 북핵 폐기가 되돌릴 수 없는 단계에 이를 것처럼 보고 있다. 그렇게 보고 싶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제재 완화를 통해 비핵화를 촉진하자"는, 국제사회 인식과는 동떨어진 제안을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마크롱 대통령은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를 할 때까지 대북 제재를 계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재 완화에 대해 거부 의사를 밝힌 것이다.

한·프랑스 정상회담 공동선언 첫머리엔 '한반도의 비핵화가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구절이 담겼다. CVID는 북한이 몸서리치게 거부감을 보이는 표현이어서 미국조차 잘 쓰지 않는다. 아마도 마크롱 대통령이 강력하게 주장해서 선언문에 담겼을 것이다.

정부는 미국이 대북 제재 완화에 대해 유연성을 보이지 않는 것처럼 말하지만 "실질적인 비핵화가 될 때까지 대북 제재가 유지돼야 한다"는 게 프랑스를 포함한 국제사회 전체의 공감대인 것이다. 그래야만 비핵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과 정부는 지금 북핵 폐기를 향해 가는지 그 반대로 가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조선일보 A3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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